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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경 Oct 08. 2020

프롤로그 : 졸업

책 <암병동 졸업생>

나는 설암 4기 암 환자다. 혀에 암이 생겨 설암 판정을 받은 나는 넓은 범위의 목 임파선 전이로 1~4기 중에서도 4기에 해당한다. 수술로 혀 절반을 절제하고, 허벅지 근육을 떼서 혀 절반을 만들었다. 혀의 반은 진짜 혀, 나머지 반은 단순 근육인 가짜 혀다. 목 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임파선 선을 다 제거해 목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가로로 긴 선이, 그리고 쇄골 사이에 짧은 선이 붉게 수술 흉터로 남아있다. 몸에 붙는 바지를 입으면 오른쪽 허벅지가 손바닥만큼 움푹 파여있는 게 보이기도 한다.


암을 선고받았을 때 대학원 졸업과 원하던 직장 입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치료로 인해 졸업도 취직도 하지 못한 나는 스스로에게 암 환자라는 직업을 주었다. 매일 아침 학생이 등교를 위해, 직장인이 출근을 위해 준비하는 것처럼 나는 암 환자로 출근하기 위해 아침마다 준비한다.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딱딱해진 목과 부풀어 오른 혀를 확인하는 것이다. 굳은 목 근육을 푸는 데 30분, 목소리를 안 아프게 낼 수 있도록 목을 푸는 데 30분, 말이 엉기지 않도록 혀를 푸는 데 30분. 한 시간 반에서 길게는 세 시간까지 조금이나마 평범함을 갖기 위해 매일 하는 오전 루틴이다. 이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양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 


가장 큰 업무는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다. 이비인후과, 방사선종양학과, 혈액종양내과, 재활의학과, 정신과, 피부과 등 여러 진료과의 외래 스케줄을 꼼꼼하게 살피고 소화해내기. 절반의 혀와 절반의 침으로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기. 무엇을 먹든 바로 양치하고 정각마다 소다 가글하기. 약 잘 챙겨 먹기. 근육이 딱딱해지는 섬유화를 막기 위한 스트레칭과 합병증 예방을 위한 운동하기. '오늘 하루는 말을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부터 '언젠가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어 암 병동에 다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까지 다양한 불안감을 온전히 잘 견뎌내기. 암 환자에게 주어진 업무로 바쁜 하루를 보낸다.  


암 환자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나에게 해야 할 일이 주어지고 그 일들이 오늘을 살게 하고 더 나은 내일이라는 희망을 준다면 그게 직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면서 소속감을 느낀 나는 더 이상 잉여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운이 났다. 졸업도 취업도 보류 중이던 20대지만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나는 환자가 해야 하는 생활을 업무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만나는 좌절도 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루는 외래 진료 대기실 TV에서 나오는 장기 대국 중계를 멍하니 보다 졸(卒)이라는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장기는 초(楚)와 한(漢) 두 편으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초는 졸(卒)을, 한은 병(兵)을 가지고 시작한다. 장기나 전쟁 중 최전방에서 싸우는 지위가 가장 낮은 병사를 졸병(卒兵)이라 부른다. 한자의 뜻만 가지고 풀어본다면 졸병은 죽어도 되는 병사라는 뜻일까. 어쩌면 죽어야만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약해진 몸으로 암과 맞서 싸우는 내 처지가 꼭 졸병 같았다. 


'마치다', '죽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졸(卒)이라는 글자가 작고 연약해 보였다. 졸병(卒兵), 졸도(卒倒), 졸서(卒逝). 안 좋은 단어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홀로 의복을 입고 관 속에 누워있는 저 한자가 죽을 사(死)랑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졸(卒)이 사람이 옆에 붙어있는 사(死)보다 외롭고 초라해 보였다.


그러다 졸업(卒業)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내가 하고 싶었던 졸업. 졸(卒)이라는 한자를 쓰는 다른 단어들과 다르게 졸업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마침표와 시작이 함께 떠오르는 이 단어에는 뿌듯함과 설렘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입학과 동시에 오랫동안 꿈꾸는 대상이 된다. 


졸업은 일정되어 있던 시간의 종료를 선포하며, 노력했던 기간을 인정해주고, 부여했던 과업의 마침을 안내한다. 그렇다면 나도 졸업생(卒業生)이라 할 수 있겠다. 암 치료라는 일정한 과업을 마치고 살아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나는 죽지 않고 내게 주어진 치료를 수행하며 살아있다. 


그런 맥락에서 암 병동에는 ‘졸업생’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가장 약해진 사람들이 암이라는 적군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 누군가는 혀 반쪽, 폐 하나, 위 전체를 잃기도 한다. 암 병동에서 주어진 치료 기간을 마치고 졸업생이 되면 병동에 들어오기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사회에 나간다. 


약물 치료로 인해 머리가 다 빠져 모자나 가발을 쓰고 다니기도 하고, 폐 절제술을 받아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 수도 있다. 철저한 식단 관리로 외식이 어려울 수도 있고, 몸에 큰 흉터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정복되지 않는 암 치료의 특성상 재발이나 전이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정신과 약을 먹고 지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암 병동 졸업생들은 수술과 치료로 다양한 후유증과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사회 속 졸업생들이 편견과 기대를 만나는 것처럼, 암 병동 졸업생들도 편견과 기대를 마주친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보호와 응원을 받지만, 그 속에서 종종 유리 천장과 유리 송곳을 만난다. 암 환자는 어쩌면 몸이 약해 보호받고 집에서 쉬어야 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집에서 쉬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고 직장에 나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또는 불운한 끝을 기다리는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일 수 있다. 우울하다고 말하자니 언제나 사람을 축축 처지게 하는 것 같고, 신나고 행복하다고 말하자니 환자의 신분을 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암병동 졸업생들은 편견의 울타리 속에 숨어서 사는 사람이 많다. 내 나이 스물여덟, 설암 4기를 선고받았을 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고, 암의 끝에는 죽음만 있다고 생각했다. 암에 대한 정보와 사람들의 태도 모두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는 도망쳐보기도 하고 우울과 불안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20대의 암이라는 것이 생소하기도 했지만, 암 환자로 살아가는 데 지녀야 하는 불편함, 사회 속에서 느끼는 장벽들, 그리고 그것들을 넘어 사회에서 공존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설암 4기라는 가늠하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쳤을 때 나의 생각들, 고통과 고난을 지나온 암 병동 생활, 암 병동 졸업생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암 병동 졸업생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지나온 날들을 이 책에 담았다. 


처음 설암 4기를 진단받을 때 설암이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20대도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예전의 나. 암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내 주변 사람들. 두경부암을 치료받는 환우들. 암 병동을 졸업한 졸업생들. 암은 숨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 속에서 숨어 사는 환우들. 그리고 그 환우들의 가족들. 나아가 이어지는 야근에 힘들어 요양 병원에서 지내는 나를 잠시 부러워하기도 했던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내 이야기가 암과 암 환자에 대해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많은 위로와 응원이 고통의 시간을 버티게 해 주었던 것처럼, 이 책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란다. 




책과 함께하는 동안

불안과 고난을 조금 덜어내고

안정과 행복이 그 자리를 채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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