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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에 한번 말고 자주 나타나줘, 영화 <뮬란>

by havefaith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의 영화나 책을 한 편씩 꼽자면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다. 영화는 <뮬란>, 책은 <말괄량이 길들이기>. 사실 대충 컨셉만 기억하지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는데도 답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지금은 걸크러쉬라고 말할 만한 자유롭고 당당한 여자 캐릭터.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캐릭터가 귀한 편이다. 왕자님이 구해줄 때까지 전전긍긍하며 기다려야 하는 공주들은 그리 내 취향은 아니었다. 아마 그 친구들은 왕자가 죽으면 따라죽을지도 모를 정도라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혹시나 왕자가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다른 사람이 좋다고 떠나면 평생을 울고만 있을 친구들이다. 다른 왕자가 나타날 때까지.


그러니까 뮬란은 그런 아름다운 조각상 같은 공주님들에서도 가장 선머슴같고 가장 말이 많았다. 어쩌면 내 인생의 방향을 잡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내가 태어난 때만 해도 지금처럼 딸을 좋아하기보단 아들을 훨씬 더 선호했고, 심지어 나조차도 아들을 낳으려고 했는데 뜻밖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지 못해서, 아들이 아니라서 느낄 수 있었던 차별과 눈초리, 말 한마디가 모여서 무척이나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 때도 두고 보자, 내가 아들보다 잘났음 잘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확실해졌다. 그래, 이렇게 살아야겠다. 이렇게 멋지게. 빛나게. 성별에 상관없이. 물론 그 핑계로 어설프게 덜렁거리고 선머슴같은 것도 멋진 거라면서 퉁 치기도 했었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이고, 조용한 딸도, 신붓감도 아니던 뮬란. 갑자기 훈족과의 전쟁으로 각 집마다 장병을 차출하자 아버지 대신 남장을 하고 전쟁터로 나간다. 고난 끝에 결국은 좋은 성과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 뮬란은 중국에 전해내려오는 <목란사>에 나온 화목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남북조시대에 활약한 것으로 전해지는 설화 속 화목란은 12년이나 전쟁터를 누볐고, 집에 돌아와 꾸미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녀가 여자인 것을 몰랐다고. 그러나 영화에서는 중간에 부상을 당하면서 여자라는 존재가 금방 밝혀지게 된다. 공적도 여자인 채로 쌓고 그 모습 그대로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무려 궁에 들어가서 황제를 구하는 '전술'은 동료 군인들이 후궁으로 여장을 하고 감시를 피하는 것이니 그 점이 독특하다.


그 땐 모르고 봤지만 참 영화가 한중일을 섞어놓은 듯한 이상한 동아시아 느낌이 난다. 원래 각 국의 전통복식이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러울 만큼. 중국만의 문화를 깊이 있게 다뤘다면 고증 상으로 더 완성도가 높았겠지만 어쩌면 내가 친밀감을 느꼈던 건 그 요상한 한중일 덩어리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얀화장보다는 피부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단장 전이 예쁜 건 내 개인적 취향이다. 모든 건 중매쟁이한테 퇴짜맞고 흘러나온 명곡 Reflection과 함께 얼굴을 반반 지우며 자아성찰와 고뇌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던 건 아닌가 싶다. 확실히 반쪽은 하얗고 반쪽은 본인 피부톤이라 기억에 많이 남았다.


이상하게 한국에는 뮬란(화목란)과 같은 설화는 익숙하지 않다. 우리나라만 유독 없었던 게 아니라 잊혀졌을 것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거나 남편의 내조, 외조로 유명한 비운의 여성들은 생각보다 기억이 많이 난다. 소서노, 평강공주, 신사임당, 허난설헌... 아마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분법은 기준은 참 쉽고 적용 대상들에겐 어렵다. 순종적이고 조신한 아내, 담대하고 씩씩한 남편이런 고정적인 기준에 억지로 맞춰가며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뮬란이 있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가족들 덕분이었다. 천방지축이고 덜렁거린다고 해도 그녀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중매쟁이에게 글러 먹은 신붓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풀이 죽은 뮬란에게 조금 늦게, 더 아름답게 피는 꽃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전쟁터에서 그녀가 가져온 전리품보다 그녀의 무사귀환을 좋아한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성과 여성, 남성적-여성적이라는 표현 뒤에 내재되어 있는 것들뿐만 아니라 개성이나 다양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까지도. 뮬란이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어땠을까. 아직도 많은 문제들이 땅 속에 깊은 단층처럼 박혀있지만 중요한 건 단층이 흔들리고 깨지는 틈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녀를 두고 천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신붓감이라는 말이 대수롭지 않게 들렸다. 그렇게 전설처럼 귀하게 나오는 게 아니라 돌담에 핀 들풀처럼 피어올랐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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