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름을 넣어 낸 <악당출현 Vol.1 PSYCHO>가 완판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사실은 다 팔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친분과 지갑이 열리는 건 별개의 문제고, 친분이 열어주는 지갑이란 한계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많이 고생했으니, 나보다 더 많이 고생한 사람이 많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다 팔렸으면 좋겠다고 난데없는 기도를 했다. 여러번, 정말 완판은 욕심인가요, 라며 기도를 했었다.
옳거니, 기도가 통했다고 보기에는 그리 신통한 기도도 아니었다. 결과론적인 것이다. 기도를 했는데 마침 책이 다 팔렸으니 무슨 말인들 못해보겠는가. 친구들의 영업력과 다양한 플리마켓 공략이 훨씬 설득력 있을 것이다. 직장인인 나는 글 쓰기에도 버거웠지만 유통과 판매가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알지 못한다. 이 모든 건 역시 여러모로 책 뒷표지에 이름을 올린 친구들의 힘이다. 멋진 친구들.
고작 몇 백권일 수도 있지만 신기한 일이다. 첫 편이라 아는 사람들이 많이 사기도 했다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사가서 좋았다.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 같다며 다음 편을 준비하자는 빛나는 눈을 뒤로 했다. 미안. 쉬어가기로 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쉬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악당’을 다룬 ‘잡지 제작’에 참여한 소감이 어떠냐 물으면 차례로 답하겠다. 악당에겐 길들여졌다. 수많은 악당을 보니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만드는 게 점점 익숙해지는 게 느껴졌다. 무려 대부분의 글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변호하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든 내게 칼를 꽂거나 뒷통수를 칠수도 있는 싸이코패스지만 언제부턴가 심리적으로는 왠지 모를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잡지 제작은 후달렸다. 짧은 기간에 내 딴엔 많은 영화를 보고 글을 쓸 때면 오랜만에 과제를 하는 듯해서 그립다가도 피로에 절여지기도 했다. 마감이란 어쨌든 약속이고, 나의 글은 다른 이들보단 말도 많고 분량도 길어서 줄이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이름이 붙어서 나간다니까 잘은 써야겠는데 막판엔 에라 모르겠다 완성도를 따지지 말고 완성이나 해라 싶을 때도 있었다. 글 쓰는데도 짬밥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고갈되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 상태로 글을 쓰는 건 자만은 아닐까 싶어 고민을 했다. 다른 데 쓰는 건 몰라도 이건 돈 주고 파는 책인데. 어쩌지와 될대로 되라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했다. 곳간은 비었는데 주걱질만 연신 해댄 것처럼.
어쨌거나 마음 속의 고민을 밖으론 궁시렁거리지 않으려 애썼다. 글은 쌓였고 책이 만들어졌다. 글을 읽은 한 친구는 각각 음성지원이 된다고 감상을 말해주었다. 잘 썼든 못 썼든, 각자 색깔이 뚜렷하게 느껴진다면 일단은 충분한 듯 싶다. 알고 보니 나도 다른 친구들도 개성이 꽤 있었던 거야! 다행스러워하며.
이렇게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한 소중한 기회를 준 친구에게 특히 감사하다. 아주 오랜만에 연락해주어서. 내 글이 좋다며, 같이 잡지를 만들어보겠냐 하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것들에게 또 감사하며. 쉽지는 않았지만, 매순간 즐거운 것만도 아니었지만, 많이 피곤하고 지치기도 했지만, 혼자서는 하기 어려웠을 것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