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강한 자 혹은 살아남은 자를 위주로 기록된다고들 한다. 힘의 서사는 늘 그런 식이었다.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강한 자, 주도하는 자가 되기 위해 애썼다. 중간만 가면 편할 수도 있는데 기를 아득바득 써서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았던 이들은 자리에서 내려올 때 기분이 비슷했으리라 상상해본다. 나를 치고 올라오는 저 이의 형형한 눈빛은 과거엔 나의 눈빛과 같았을 거라고. 묘한 동질감은 있지만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어쨌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입장은 나니까. 가진 자가 불리한 건 손에 쥔 것보다는 좀 더 오래 있을 줄 알았던 방심때문은 아닐까.
그런 일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 쉬운 예가 우리 곁에 있다. 세대 차이. 새로운 재능과 실력자. 시간 하나면 우리도 이런 엄청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나는 조금은 젊은 축에 들 수도 있지만 아주 어린 친구들에게는 언니는 커녕, 이모나 아주머니라 들을 날이 머지 않았다. 요즘 나의 친구들조차 이런 고민을 한다. 전역을 하고 30살이 가까워지는 시점이 아저씨가 된 것 같다고. (더 나이드신 분들이 생각하면 다소 어처구니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며 털어놓는 친구가 많았다) 받아들이긴 해야 하지만 겁이 나고 무서울 때가 있다. 우리는 점차 젊음이라는 단어와 멀어질 것이고, 새로운 줄임말 같은 유행에 뒤쳐지게 될 것이다. 앞으로드이 날들은 또 과거엔 알 수 없던 새로운 추억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어리다고 용인되던 책임의 프리패스는 없다. 지금은 닮고 싶어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혹은 변형된 모습으로 갖춘 채 자기부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곧 만나게 될 연극 <단편소설집>이 기대되는 점은 이 세대차이의 고민을 다뤄준다는 점이다. 유명한 소설가이자 스승 루스와 앞날이 창창한 새로운 제자이자 또 다른 소설가 리사가 정면으로 부딪힐 예정이다. 세대차이에 대한 간단한 결말로 이들의 사이를 상상해보자. 나쁜 경우 먼저. 모양새가 나빠지면 루스는 자신의 힘과 위치를 이용해서 리사를 구속하려 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방법은 가장 결말이 좋진 않다. 리사는 압박하기만 하려는 루스에게 분노와 반발심만 쌓일 것이고, 결국은 더 극적인 방법으로 루스에게 상처입히고 망신을 줄 수도 있다. 다음은 대부분의 경우이자 보통의 결말.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것,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자며 있는 듯 없는 듯 서로를 무시하면서 지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상적이고 좋은 결말. 잘 된다면 반대로 서로의 기운을, 존재감을 인정하고 각자 자신의 소설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일은 프로젝트나 계약 등 업무나 자리를 얻는 것보다는 조금은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반드시 경쟁이 필요하지만은 않다는 점이 둘의 갈등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이 제로섬 게임이지만 이 일을 그보단 덜할 수도 있다. 함께 빛날 수 있고 함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여기서 흥미로운 설정이 몇 가지 더 있다. 먼저 리사와 루스가 둘다 여성이라는 점.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남자들도 서로 부딪히는 점이 있을 텐데 여자들의 갈등 구도는 더 인상깊게 평가될 때도 있다. 여자는 젊은 여자, 예쁜 여자, 능력있는 여자를 싫어하는가? 하다못해 남자로 인해 문제가 생겨도 여자들끼리 싸우더라. 그런 설정의 드라마나 영화도 많이 봤다. 그러나 아름다움, 젊음, 유능함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 사이에 갈등이 있다면 나와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입장이거나 내가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여겨서겠지, 상대방 때문 이 아니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생각을 담고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자라서 서로를 이해하면 했지, 미워하는 이유가 되길 바라진 않는다.
두 번째. 루스와 리사는 가족이나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이 아니다. 이들은 소설가다. 리사가 루스의 사생활을 담아 소설을 내려한다는 점이 가장 날카로운 문제점이다. 스승이건, 같은 '업계' 종사자이든 어떻게 남의 이야기를 쓰냐고? 예전에는 그런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사연을, 자신의 주변 사람 이야기를 써서 책을 파는 건 소재거리가 빈약해서는 아닐까 싶기도 했다. 실력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면 내 얘기, 내 '아는 사람' 얘기를 쓰기 쉽다. 내 얘기, 아는 사람 얘기는 멋지게 말하면 '영감'이고 흥미로운 소재가 된다. 들으면서 떠올렸던 생각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역시 이 부분에서 고민했고, 하는 중이다. 대체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 걸까. 드러낼수록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더 공감하긴 할 것이다.내 얘기라서 잘 표현할 수 있다. 결국 개성 역시 그런 곳에서 나온다.
막상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을 쓰기는 힘들다. 내가 이렇게 상상력이 부족했다니 싶을 정도로. 내가 지금 막상 소설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겪어보지 않고 접해보지 않은 것과 익숙해지는 것은 얼마나 어렵나. 어느 날 소설을 한 편 써봐야지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생각하다가 시작부터 막혔던 게 기억난다. 하다못해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조차 막막했다. 겁이 날 정도였다.
리사가 루스의 이야기를 가져다 쓰는 것을 '그럴 수도 있지!'라며 편들 생각은 없다. 일단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 꼭 그 이야기를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 역시 설득력은 떨어진다. 너무나 다루고 싶은 이야기인데 싫다고 하면 계속 아른 거릴 것이다. 하지만 그 얘기가 아니면 할 이야기가 없을 만한 사람도 아닐테고. 그냥 단순한 소설집이 아니다. 이미 그 둘이 가진 영향력도 있겠지만 플랫폼이 달라지지 않았나. 소설은 더 이상 소설로만 남아있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하며 독자들 역시 책을 읽고 영상이나 글을 통해 또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안일하게 너랑 나랑만 아는 이야기니까 허구인 척 하면 아무도 모를거라는 입장은 곤란하다. 아는 사람들도 그 책을 볼테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카더라로 시작하는 소문에는 또 열광할테고.
지켜볼 생각이다. 둘 중 누구의 생각과 입장이 와닿는지, 연극의 결말은 어떻게 진행될지 말이다. 글도 사람도, 그것을 다룬 이 연극도 설득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어찌 보면 그렇게 큰 일이 아닌데 싸우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승과 제자라면서 서로 알아온 세월이 있으니 잘 얘기하면 풀리지 않으려나? 쉽게 생각하면 그렇다. 글을 쓴다 해도 나 역시 소설은 읽을 줄만 알지 쓰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잘 모른다. 무언가 소설가로서 서로의 경계를 침해받았다는 느낌을 주었을 수도 있다. 궁금하다. 무엇이 스승과 제자를, 두 소설가를, 두 여성을 부딪히게 만들까?
연극 <단편소설집>
□ 일시: 2019. 5. 3 ~5.12 / 평일 7시30분/ 토 3시, 7시 30분/ 일 3시
□ 장소: SH아트홀
□ 주요 출연진: 원작 도널드 마굴리스 / 연출 이곤 / 번역, 드라마터그 마정화 /
출연 : 전국향(루스 역), 김소진(리사 역)
□ 관람료: 30,000원
□ 관람연령: 13세 이상
□ 소요시간: 150분(인터미션 15분 포함)
- 이 프리뷰는 문화의 소통을 강조하는 아트인사이트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