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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Aug 08. 2019

뜨겁고 습하고 의욕 없는 여름

                


               

"내 얘기를 책에 써도 돼."

"책은 금기어야 한동안."

"뭐?"

"지금은 별로 안 괜찮아. 책 얘기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 얘기 안 했음 좋겠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며?"

"...... 신기하네. 매번 괜찮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보통의 기억력을 갖고 있지만 잊고 싶은 것에 대한 기억력은 유달리 좋은가보다. 그 날의 기억이 그 날의 감정마저 불러오기 때문이다. 괜찮다, 걱정하지 말라 하는 게 지겨워서 저렇게 말해봤는데 상대방이 놀라더라. 솔직하게 말해달래서 솔직하게 말했고, 안 괜찮으니까 안 괜찮다고 한 거였는데 당황스러웠나 보다. 나도 툭 나온 말이라 안 괜찮은지 그 때 알았지만. 늘 별 일 없이 잘 지낸다고 답했는데 사실 뭐가 잘 지내는 건진 모르겠다. 행복의 기준이 평온함이라면 행복한 걸테고. 불행의 기준이 쓸쓸함과 막막함이라면 불행한 걸테다. 대체로 마음은 평온하다. 태풍의 눈처럼 혼란하지만 그렇다고 비구름이 몰려오는 건 아니다. 생각없이 하는 건 괜찮다. 운동은 가면 지시에 따라서 하다보면 어느새 끝나있고, 침대에 누우면 어느새 아침이다. 꿈은 언제나 그랬듯이 뜬금없는 얘기다. 양말을 세 겹이나 누가 벗겨주는 꿈이었지. 한 쪽 발에 양말을 두 개나 신다니. 어제는 꿈에서 여섯 마리 이무기를 화장실에서 만났다. 파란 친구가 주인공이라던데. 무슨 소리인가 대체. 별 꼴이지 참.

                    


의욕을 잃긴 했다. 흔한 의욕부진이라기보단 이유는 명확한 편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끌려다니고 있는 게 원인이다.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선생님이 있어서일테고, 책은 나올 때쯤 되서 기껏 자랑하고 다녔는데 없던 일이 되었으니 민망스럽고, 무엇보다 예정에도 없이 서울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어서일거다. 두 개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하나는 앞으로 닥쳐올 일이다. 일단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계속 하던대로 살고 있다. 한 번도 집을 떠나본 적은 없었는데 그 때의 내가 궁금하다. 집밥을 못 먹어서 아마 마르거나 혹은 포동포동해지거나 하지 않을까. 혹은 아주 외롭거나 혹은 아주 자유롭거나. 엄마는 경기도로 내려가게 될 나를 핑계로 집을 떠나와 볼까 농담을 하셨다. 당장은 익숙한 동네, 따뜻한 집밥과 아끼는 가족들, 누리를 자주 볼 수 없을 거란 게 벌써부터 아쉽다. 하다못해 하던 운동마저도 자리를 바꿔야 하겠지. 타의로 잃은 의욕을 자의로 채워넣어야 한다는 게 구슬프다.


집을 떠나려면 아직 반년은 남았지만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건 출장같은 게 아니니까. 마음도 이사를 갈 시간을 줘야지. 그 일환으로 기타 레슨을 시작했다. 이번주가 첫 시간이다. 주기적인 기타 배우기 뽐뿌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고 색소폰을 거기서 불기는 힘들테니까. 방안에서 도란도란 뚱당거릴 수 있는 악기가 필요했다. 혼자 무반주로 흥얼거리던 노래에 반주라도 얹으면 모양새가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색소폰 선생님의 말씀도 한 역할을 했다. 선생님이 기타는 외로운 악기라고 말씀하셨었는데. 대수롭지 않은 말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정말 외로운 악기일까. 설마 사람만큼 외롭겠나 싶기도 하고. 큰 마음 먹고 도착한 기타 레슨실. 색소폰을 했다니 흥미롭게 보였는지 기타 선생님은 왠지 내가 오래 다닐 것 같다고 하시더라. 기초부터 탄탄히 잘 다질 만큼 인내심 있어보였나보다. 사실 얼마나 오래 할지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는데. 제가 오래 하게 될까요? 라고 이상한 뉘앙스로 답변했다. 손가락이 많이 아프겠다는 각오는 했지만 실전은 다를 것이다. 한 곡을 다 하게 되면 무척 뿌듯하기를. 아팠던 만큼. 

                            

요가 선생님은 외롭거나 쓸쓸할 때 스스로가 어떤지 알고 있냐고 했을 때 머쓱하게 웃긴 했지만 알고 있다. 어디다 말하기 힘들면 이렇게 글을 쓴다. 가끔은 목소리가 듣고픈 사람들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사람에게 연락을 하는 건 점점 어려워진다. 나는 지금 당장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만 그게 되냐는 말이지.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방법이 익숙해진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서 대체 네 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냐 들여다보기도 하고 옥상방에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소리가 어떻든 뱉어내는 건 가사뿐만이 아니다. 답답하게 얹혀있던 외로운 공기도 함께다.


옛날엔 어땠나. 술도 마셨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날도 있으니까. 술 때문에 발갛게 빨개지는 얼굴처럼 답답했던 생각도 잠시 빨간불이 들어온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서 귀찮다. 빨개지는 얼굴과 몸처럼 제동이 걸린다.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실수하고 싶지 않다. 발음은 꼬일지언정 길은 일자로 반듯하게 걸어 집에 가려고 줄을 맞춰 걷고, 술김에 전화를 걸었다고 진심이 아닌 것처럼 보일까봐 전화를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풀어지려고 마시는 건데 풀어지는 걸 느끼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니. 뭐하러 술을 마셨나 싶지만 여튼 공기는 따뜻하고 세상이 몽글해보이는 걸로도 충분하다. 내가 설사 비틀거리고 걷는다고 해도, 횡설수설하며 눈이 풀려 있어도, 모든 게 술 때문이라고, 술 마신 사람이라는 걸로 퉁칠 수 있으니까. 적당히 즐겁게 마시면 그 뿐.


아, 추가적으로 만화책이나 웹툰을 본다. 자극적인 거 말고 집밥처럼 순하고 느릿느릿한 작품을 본다. 며칠간 그렇게 기운을 얻었다. 나도 저렇게 사람을 대하고 싶고 또 저렇게 나를 대해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완벽하면 좋겠지. 얼굴도, 몸매도, 성격도, 머리도, 다 좋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런가. 나조차도 내가 마음에 쏙 들기는 어려운데 다른 사람에게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거짓부렁이 같고. 그러면서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었으면 싶은 투정이 샘솟는다. 아주 요지경일세. 그래도 등장인물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진다.


훈훈하군. 훈훈해. 하면서 스크롤을 넘기다 여지를 준다는 말에서 멈췄다. 네가 여지를 줘서 그런거잖아. 오해하게 한 거잖아. 여지를 준다는 말은 대강 부정적인 의미다. 내 생각, 말이나 행동이 다 당신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말이다. 물론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다. 어디까지가 당연히 오해할 수 없는 선인지는 불분명하니까. 그래도 저 말은 돌려말하는 거 아닌가. 내 마음에 당신이 들어왔다는 걸 퉁명스럽게 말하는 거지. 근데 그건 나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잘해주지 않았더라면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을거야. 양심에 손을 얹고 정말 그런가? 야속한 거지. 내 마음 속엔 온통 당신이 있는데 당신 마음엔 내가 없으니까. 듣는 사람은 거미줄에 걸린양 사사건건 모든 행동이 여지가 될까 안절부절하게 될 수 있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여러모로. 그런데 지금 보니까 말하는 사람도 실은 좋아하는 말은 아닐거다. 어떻게 해서라도 변명거리가 필요했던 거니까.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건 당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거라고 생각해야 할 만큼.

                            


날이 더워서인지 요가원에 선생님과 나혼자만 덩그라니 있어서 서로 당황스러워했다. 다행히 늦게 몇 분 함께 해서 1:1 수업을 면했다. 어제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래도 오길 잘했다 싶었다. 내가 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오지 않았으면 선생님은 혼자였을 거다. 그 사람들이 늦게 도착할 때까지 불안해 했겠지. 좀만 기다려보죠, 하면서 몇 마디 나눴는데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있으시더라. 요가원에서 하는 필라테스 수업.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면서.


말씀을 드리진 않았지만 애당초 운동은 결국 힘이 들기 마련 아닌가 싶었다. 지금 난이도가 그렇게 센 편도 아니고. 그냥 요가와 다른 호흡과 동작이 익숙하지 않을 뿐. 처음 필라테스를 시작해서 복근 운동이 끝나면 배를 부여잡곤 했는데 지금도 부여잡는다. 그러다 안 되던 동작이 되고 조금 덜 부여잡고 견딜만 해진다. 그 때 힘들지 않고서야 운동이라 할 수 없나보다 싶었다. 무리하고 다치는 수준은 물론 아니고. 물론 운동이 왜 꼭 힘이 꼭 들어야만 하나를 고민한 적도 있다. 건강에 좋은 자세가 편한 자세면 좀 좋아. 그러나 좋은 약이 입에 달지 않듯이 그렇단다. 조금 불편하고 달진 않더라도 다른 좋은 걸 얻으라고 그랬을지도 모르지. 재밌긴 하다. 게임을 잘 해도 이런 기분이었거야.


별 생각 없는 진득함이 필요하다. 힘든 순간은 온다. 1시간 남짓한 시간 속에도 꼭 고비가 있다. 몸이 아우성치고 숨이 뒤처지는 순간엔 기억하거나 세지 않는다. 무사히 지나가보자고 어디 한 군데를 열심히 뚫어져라 보고 있다. '빨리 끝나라'를 외치면서. 그래도 정말 끝나면 또 괜찮다. 괜찮다는 걸 확인받는 시간인가봐. 고민스러워하시는 선생님께 구구절절한 말은 못했다. 날이 더워서 사람들이 좀 늦거나 안 나오는 건가보다. 지금 수업도 좋습니다. 라고만 했다. 정말 혼자일 뻔한 건 처음이라 놀란 마음을 다독이면서.


나만 집중을 못하는 건지 사람들 마음도 어수선한건지 분위기가 붕 떠 있는 것 같다. 늘 하던 동작도 몸이 무겁고 덥고 땀이 송글송글 흘러내린다. 친구는 내가 무척 고맙고 소중한 친구라면서 다가오는 내 생일도 잊어버리고 자기 걱정에 파묻혔다. 간만에 얼굴 보자고 할까 했는데 얘기를 못하겠다. 몇 년째 동기들은 했던 질문을 또 하고 또 한다. 너가 무슨 운동을 했더라. 강아지는 자랑을 많이 했더니 내 안부 대신 강아지 안부를 물어보더라. 직장 동기들은 나더러 기운이 넘친다거나 혹은 힘들게 사는 사람이라 하던데 기운 없고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인 건 모르는 모양. 아무래도 단짝처럼 친해지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서운하지 않다. 서운할 의욕도 사라져버린 것처럼. 그래도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걸면 들려오는 목소리가 반갑고, 동기들과 좋은 날 모여 술 한 잔 하니 좋았다면 그 마음을 알려나. 그리고 나는 건강하고 걱정 없이 살고 싶은 사람일 뿐인데.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떻나. 뜨겁고 습하고 의욕 없는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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