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니고 나서 이상하게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찐다 싶었는데 고스란히 앉아 있는 시간이 복병이었다. 온종일 앉아있으니 하루 세 끼는 과하다 해서 두 끼 정도 먹어야 하나 싶으면 놓치는 건 저녁식사다. 저녁에 안 먹는 게 좋다는 얘기도 있고, 부모님은 이미 6시가 되기도 전에 이른 저녁을 드셨고. 이런저런 핑계로 저녁밥을 거르거나 간단하게 때울 때가 많지만 덕분에 놓칠 수 없는 메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야 늘 엄마 밥은 맛있고, 주는 대로 먹는다. 음식 맛은 지극히 상대적이겠지만 어머니의 음식 맛은 자신 있게 대변할 수 있다. 한 가지 음식만 쓰기는 아깝다. 사계절 잃어버린 입맛을 찾게 해 주시니까.
1. 봄에는 쑥을 캐서 쑥국을 끓여먹지
봄에는 산에 들판에 쑥이 새초롬히 자란다. 쑥색이라고 부르는 묘한 초록색도, 화하지도 쓰지도 않은 묘한 쑥의 향도 좋다. 맛도 맛이지만 쑥 캐던 때가 떠올라 더 맛있는지도 모르겠다. 추억의 노동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벌초를 하러 가는 겸 쑥을 한 가득 캐오곤 했다. 많이 자라면 쑥이 크고 질겨지니 적당할 때를 찾아서 가야 한다. 중간 정도 자란 쑥을 뿌리까지 캐지 않고 한 마디 정도 남겨두고 톡톡 잘라서 비닐봉지에 넣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쑥을 캐고 있자면 허리가 아플 때쯤에야 시간이 가는 걸 알게 된다. 사방에는 온갖 풀이 가득하고 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고라니가 들렸다 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 번 제대로 보면 좋으련만 싶었다.
그렇게 쑥을 한 아름 안고 집에 와서 다시 정리를 하면 다양한 쑥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다들 들어봤을 쑥개떡. 반죽을 해서 동글동글하게 조물거리다가 동그랗게 만들어서 찌고 참기름까지 바르면 완성이다. 쑥과 참기름의 조합도 조합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얇게 만든 쑥개떡을 식혔다 먹으면 그 맛이 좋더라. 달달한 쑥을 맛보고 싶다면 쑥버무리. 백설기 반 쑥 반 같은 느낌의 쑥버무리는 개떡보다 더 좋아하는 떡이다.
떡을 잔뜩 나눠서 이웃집에 나눠주고 남는 쑥은 이제 쑥국행이다. 엄마는 늘 별 거 없다고 하셨다. 별 게 없는 거 치곤 무척 맛있단 말이지. 후루룩 끓인 쑥국은 국물이 보약이니 남기지 말고 먹으라는 말씀은 잊지 않고 하신다. 봄에는 아름답게 피는 수많은 꽃이 있지만, 식탁 위의 봄기운은 쑥이 몰고 온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국 냄비를 열었을 때 쑥국만 보이면 더운 밥을 말아 후루룩, 국물을 남기지 않고 마시게 된 건.
2. 여름엔 시원한 열무김치에 강된장이면 그만
뜨겁고 기운 없는 여름이다. 마당에 바짝 드러누운 강아지도, 2살 배기 조카 녀석도, 60대 언덕에 있는 부모님에게도 이번 여름 역시 쉽지 않았다. 작년같이 온도가 폭발하지도 않았지만 올해는 습한 날씨 때문에 고역이었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더위에 온 가족이 식욕을 잃었다.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 내가 해놓고도 이게 무슨 맛인지,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입맛이 없으니 뭘 먹어도 시큰둥한 건 마찬가지다. 여름이야말로 입맛과의 전쟁이다.
그러나 어떤 더위가 와도 나는 물론, 우리 집 모두의 숟가락을 들게 하는 건 바로 열무김치와 강된장이다. 결국 모든 요리는 제목에 있는 재료가 제일 중요하지 않던가. 거사로 치르고 나면 뚝딱 익어가는 열무김치, 옥상 장독대를 비우고 채우는 엄마표 된장이 일등공신인 셈. 열무와 된장이 다 한다고 봐야 한다. 어머니는 아이구야, 내가 이 고생을 왜 하나 모르겠다고 하시지만 고생이 들어간 만큼 맛이 나는 건 사실이라고도 하셨다.
밀가루 풀을 넣어 시원한 맛을 더한 올해 열무김치는 예년보다 고춧가루 뒤끝이 매콤하다. 냉면에 열무김치 국물만 넣으면 훌륭한 열무냉면이 되고, 밥과 나물과 함께 하면 열무 비빔밥이 된다. 강된장에 두부와 표고버섯, 애호박, 된장 등의 재료 외에 어머니께서는 북어를 넣으시는데 깔끔하면서도 씹는 맛이 있다. 보리밥과 먹으면 또 일품이라고! 어머니께서 젊었을 때 보리밥을 해 먹겠다고 준비를 하고 있으면 외할머니는 '제가 먹고 싶으니까 시키지 않아도 하고 있네'라면서 놀리셨다고 한다.
잘박 잘박 끓인 강된장을 뚝배기에 담고, 열무김치를 반찬으로 꺼내면 언제 입맛을 잃었냐는 듯 한 상에서 숟가락이 분주하다. 쌍둥이를 가지고 한동안 밥을 통 먹지 못하던 언니의 밥그릇도 비우게 한다. 단짝 친구 호박잎과 함께 하면 까슬까슬한 맛이 매력이요, 밥에 슥슥 비비면 짭조름하면서도 입맛을 다시게 하는 밥도둑이 탄생한다. 돌이켜보면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뜨거운 여름에 비 소식이 반갑다면, 지친 입맛엔 열무김치와 강된장이 반가울 것이다.
3. 가을이 오면 돼지고기 찌개를 맛보시오 콩비지찌개든, 고추장찌개든
처서인 오늘. 가을이 성큼 왔다. 서늘하고 시원해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겠나. 추석에 든든하게 먹기 때문에 맛있는 집밥을 바로 떠올리기가 힘들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말도 하지 말라신다면, 눈물 젖은 콩비지찌개를 먹어본 적 없는 자 역시 아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회사에 들어가 한두 해가 되었을 때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복잡한 시기가 있었다. 휘청거리며 돌아온 그 날 저녁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비지찌개를 보고선 홀린 듯이 밥을 공기에 담았다. 밥 같은 건 먹지도 않을 참이었는데 마음의 허기가 몸의 허기인 것처럼 밥과 함께 한 움큼 넣은 하얀 비지찌개가 따뜻했다. 하얀 콩비지도, 돼지고기도, 역시나 하얀 김치도. 아무 조건 없이 먹으라며 놓여있는 찌개가, 아무 조건 없이 반겨주는 식탁이 뭉클하고 애틋했다. 휑한 마음에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기분이었다. 엄마에게는 그랬다곤 말하지 않았고, 다만 비지찌개가 참 맛있었다고만 했다.
비지찌개는 하얗고 순한 순도 100% 건강식이라면 고추장찌개는 빨갛고 칼칼한데도 제법 건강한 느낌이 나는 친구다. 정확하게 부르자면 표고버섯 돼지고기 고추장찌개라고 부르고 싶다. 그도 그렇게 표고버섯이 한몫 제대로 하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이 어디 멀리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처음 맛본 게 이렇게 집에서도 끓여 먹게 됐다고 한다. 표고버섯과 돼지고기가 보글보글 끓고, 된장 못지않은 엄마표 고추장이 묵직하게 중심을 잡는다. 약간의 달큰함은 뭉텅뭉텅 썰어 넣은 애호박의 몫이기도 하다.
조금 졸아들수록 진국인 돼지고기 고추장찌개. 처음부터 깊은 맛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 삼삼하게 첫 끼를 먹고, 알맞게 두 번째 끼를 먹고, 아쉬운 듯 살짝 간간하게 마지막 끼와 함께 한다.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 부모님이 어느 산 밑에서 먹은 고추장찌개가 나에게로 전해지고, 아마 내가 좋아하니까 또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곤 전래동화처럼 말하는 걸 상상하곤 한다. 이 찌개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 우리 부모님이 맛보시곤 만들어주신 거라고.
4. 겨울나기는 김치만두와 시래깃국으로
이쯤 되면 신기할 수도 있겠다. 이 집은 케케묵은 집인가. 뭘 이렇게 많이 직접 담가먹고 만들어 먹는다는 건가. 매실청, 오미자청은 물론, 열무김치, 총각김치에 된장, 고추장을 담근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말이다. 놀라지 마시라, 예전엔 송편도 반 말은 빚었다. 그리고 김장김치도 담근다. 무려 배추를 절구는 것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별 능력이 없는 나는 힘쓰는 조수 역할을 하러 휴가를 쓴다. 배추를 절구고, 속을 넣으면 허리가 아프다. 젊은 내 허리도 아픈데 어머니 허리는 어쩌겠나 싶어 끙 참을 뿐이다.
한 해 김장이 끝나면 겨울에는 우리 집표 월동준비를 한다. 김치를 많이 다져 넣고, 두부 많이, 돼지고기 조금, 숙주와 당면 등을 넣고 김치만두를 빚어서 냉동실에 가득 채워 넣는 것이다. 아버지는 반죽을 치대고, 반죽은 큰 언니가 밀고, 엄마와 작은 언니, 내가 만두를 빚는다. 처음엔 만두를 잘 못 빚어서 한 소리 듣곤 했는데 10년 정도 되니까 작은언니보다는 내가 빵빵하게 만두를 잘 빚는다. 느이 언니 만두는 배가 고파서 돌아가시겠다 그러고, 네 만두는 빵빵해서 터지겠다고 하시기도 하고.
동그란 모자 만두보다는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서 쪄먹고, 끓여먹고, 튀겨먹기도 한다. 먹을 게 없을 땐 점심은 만두만 한 게 없다. 만두가 내 입맛을 바꿔놓았는지 밖에서 김치만두를 먹으면 '아, 우리 집 김치만두가 참 맛있는데.' 그 생각을 먼저 한다. 우리 집은 돈 벌기 힘들면 만두 장사를 하자는 얘기를 농담 삼아했지만 우리 집 만두 공장은 겨울에만 짧게 운영되는 실정이다. 장사는 아무나 하겠나.
밀가루는 물린다 싶으면 시래깃국으로 속을 따뜻하게 채운다. 해장국을 먹어도 고기보다는 시래기가 늘 아쉽다. 그 아쉬움을 채워주는 게 겨울 시래깃국. 대롱대롱 매달아뒀던 시래기를 콩가루를 묻히고, 간장 양념으로 간해서 먹으면 봄철 쑥국과 막상막하다. 간장 맛이 살짝 더해질 때 완전한 느낌이 난다. 간장을 꼭 심심해서 넣어먹는 것만은 아니라니까. 시래기와 콩가루, 된장의 조합은 대체 누가 처음 생각해냈을까? 하얗게 소복소복 내린 눈을 보고 콩가루를 넣었을까? 든든하게 영양을 채우려고 그랬을까?
집에선 먹을 수 없는 다양한 음식을 밖에서 먹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려고 나가 먹고, 새로운 맛집을 탐방하겠다면서 나가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거나 헛헛할 때 혹은 편하게 찾으러 오는 것은 결국 어머니의 밥, 익숙한 식탁 앞이었다. 어머니는 화려한 '요리'를 하지 못하고 맨날 비슷한 음식만 하게 된다며 걱정하곤 하신다. 오늘 뭐 먹지, 내일 뭐 먹지 고민하시고 늘 하던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을 배우려고 TV를 보며 새로운 레시피를 적고 도전하시곤 한다. 길들여졌는지 모르지만 그 방식보다 늘 어머니의 맛이 더 좋긴 했지만 가타부타하지 않고 맛있다고 답한다. 짜면 밥을 많이 조금씩 먹고, 심심하면 듬뿍 먹으면 된다. 그게 만들어준 사람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이라 본다.
집밥은 어느 가게의 셰프들처럼 늘 최상의 재료를 쓸 수도 없고 그 재료로 인해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수많은 사람이 맛집이라고 몰리지도 않고, 유명하지 않더라도 제철 요리로 가득 찬 작은 식당 같다. 늘 비슷하다고 불평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도전해보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고 '그' 맛이 잘 나지 않을 테니까. 어머니 덕분에 사시사철 입맛이 없는 게 불가능하다. 마음도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