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vefaith Sep 16. 2019

언젠가는 통기타 쳐봐야지 - 옛사랑(3-4)

옛사랑을 사골처럼 오래 우려먹고 있다. 지겨울지도 모르니 글은 하나로 합쳐버리자. 물론 연습하는 건 지겹지 않았다. 좋아하는 곡을 하라는 이유가 그래서인가 보다. 도통 지겹진 않단 말이지. 특별하게 많은 코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몇 개의 코드로 만들어진 노래가 사람들의 귀에, 마음에 인상을 남기고 찾아듣게 한다니. 내게는 손으로도 많은 기억을 남긴 곡이다. 왼손은 코드가 고정되어 있지만 오른손을 다르게 배웠다. 4/4박자 8비트 슬로우 고고로 새로 연습했다. 별로 다른 게 없는 거 같지만 마음에 들었다. 딴딴딴딴 딴딴딴딴이 딴딴딴따다 읏따다딴따다가 되는 즐거움? 칠 때는 좀 귀찮고 잘 안되긴 하겠지만 박자가 쪼개지면 음악도 더 섬세해지는 기분이 든다.


피크는 여전히 약간은 어색하고 줄은 한 번에 예쁘게 쳐지진 않는다. 한 번에 잘 치라면서 스트럼을 예쁘게 쳐보자!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무엇보다 피크로 칠 때는 소리가 훨씬 크게 나기 때문에 혼자 있지 않을 때는 연습을 그냥 손으로 했다. 작은언니가 아이를 낳기 전에 집에 와서 내 방에 함께 머물고 있다. 말은 쳐도 된다고 하지만 피크로 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더라. 언니는 열심히 하는 게 신기했던지 자기는 악기에 재능도 흥미도 별로 없는데 너는 열심히 한다고 했다. 매일 운동 가기 전후로 운동하는 마음으로 기타를 잡을 뿐 재능과 흥미가 샘솟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내가 듣기에도 내 소리가 듣기 좋은 소리가 나는 날이 오는 날이 온다면! 그때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담아뒀다.


지난 주 선생님은 노래를 녹음하자고 하셨지만 다행스럽게도(?) 잊어버리셨고 나는 굳이 상기시켜드리지 않았다. 노래를 누군가 앞에서 녹음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긴장됐다. 좋습니다! 녹음 가시죠! 완전 준비됐어요! 라는 마음은 들지도 않았고. 그렇게 한 주는 넘겼고 지난주에는 녹음을 피할 수 없었다.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근데 저번 주에 하는 게 차라리 나을 뻔했다. 감기와 함께 하는 역대급 추석 기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기침병이라도 난 것처럼 기침을 쿨럭거리다가 레슨 때는 그래도 잠잠했는 데 감기 걸린 목소리로 녹음이라니! 그 와중에 녹음 장비는 좋더라. 선생님은 잘 할 필요 있냐고 하셨지만. 그게 그렇게 생각하면 참 좋을 텐데요. 제가 제 목소리를 너무 듣기 싫더라고요. 심지어 그 좋은 녹음 장비로!


하지만 포기하고 내려놓으면 편하다. 고집을 부려서 목소리 녹음만은 피하려고 했지만 하기로 한 날인 건 사실이니까. 환자라서 몸이 헤롱하니 선생님께서 약을 간단하게 주셨다. 덕분인지 기운도 나고 기침도 잠시 멈췄다. 중간중간 선생님의 눈치를 보면서 열심히 녹음을 끝냈다. 내가 연습한 키와 내 목소리의 키가 좀 많이 차이 나서 기타와 노래를 따로 녹음했다. 그래도 노래할 때는 기타 반주를 선생님께서 멋지게 쳐주셨기 때문에 오, 기타 좋다 이러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코드는 이미 다 외웠지만 몇 개 코드는 명확하게 울리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첫 술에 배부르랴. 그러다 늘 매번 부족한 수저질만 선보이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든 많든 모이면 든든한 한 그릇이 되겠지. 그저 그때 그때 좋은 한 술을 뜨도록 노력할 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녹음 파일은 이미 전달받았지만 판도라의 상자 같아서 들어보질 못했다. 언제쯤 이걸 열어볼 용기가 날까. 다음에 더 좋은 기타와 목소리로 녹음하고 나서가 좋겠다. 예상을 해보자면 내가 녹음할 때 들었던 목소리 같으려니 하고 있다. 연기를 해보고 나면 모든 연기자가 대단하고, 노래를 불러보고 나면 모든 가수가 대단해 보인다. 모든 악기 연주자도 마찬가지고. 비평이야 자유로운 것이나 내가 직접 해보면 쉬운 게 하나 없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남겨두고,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이 녹음 파일도, 지금의 기타 소리도 남겨두고 내버려 두기로. 감기를 동무 삼았던 추석도, 광화문에 흰 눈이 덮여갈 겨울도, 방 안에 놓여있는 기타도, 예전보다 많은 것들이 옛사랑이라는 노래를 떠오르게 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젠가는 통기타 쳐봐야지 - 옛사랑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