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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Sep 02. 2019

언젠가는 통기타 쳐봐야지 - 옛사랑 (2)

          

  한 달째의 레슨은 빠르게 끝났다. 새로 바꾼 크래프터 기타의 줄을 가는데 시간이 왕창 갔기 때문. 그 와중에 선생님과의 만담은 길어졌다. 오늘의 의상을 보더니 흠? 하시는 표정이길래 결혼식 갔다가 기타만 들고 바로 왔다고 말씀드렸다. 옷이 나뭇잎 같고 좋네요, 하셔서 네 나뭇잎 무늬 원피스죠, 감사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대화인가. 줄빨을 위해 엘릭서 기타줄을 선택했다. 고정 핀을 뽑을 때 역시 이번에도 이빨 뽑는 것 같다고 하셨더니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 신다. 정말 그러도 나니 핀이 너무 조여져 있었는지 두 개나 부러져서 새 걸로 갈았다. 예전엔 이를 빼고 나면 옥상에 던지면서 얘기하던 풍습이 있었다던데.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새 이빨 같은 고정 핀을 두 개 얻었다.


  책꽂이를 보다가 노자와 장자와 류시화의 책이 들어왔다. 오, 저도 노자와 장자를 좋아한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렇다고 찾아 읽어본 건 별로 없지만 수능 볼 때 윤리를 공부할 때 가장 공감을 많이 했다고 말이다. 물론 문제를 풀 때 제일 좋은 건 칸트에요. 그 사람은 답이 정해져 있으니까 답을 찾기가 수월하다고. 실제로도 산책하는 시간이 딱 정해져 있었을 만큼 규칙적이고 확실한 면도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류시화의 책은 인도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보셨다고 한다. 그분이 그 분야의 책을 주로 번역하기도 했고.


  선생님께서 다른 직업을 선택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으시길래 음, 변호사라고 대답했다. 주위에 아는 변호사가 있으면 환상이 많이 깨질 거라고 해서 특별히 아는 변호사는 없지만 사실 환상이 있어서는 아니라고 했다. 엄마는 TV에서 9급이나 7급에 지원하는 변호사를 보면서 "얘, 너는 변호사가 안되길 천만다행이다"라고 하신다. 드라마에서 고생하고 시달리는 변호사를 보고도 그리 말씀하신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 속에 있으니 싫어하시기도 하시고. 네가 변호사가 됐으면 정말 '꼴통'같은 변호사가 됐을 거라고도 하셨다. 마인드가. 타협도 없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그 말을 할 때마다 변호사가 되지 않아 안도하시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복잡하다. 뭘 그리 걱정하시는 겐가. 엄마 딸이 무척 정의롭고 소신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걱정하시는 걸까, 아니면 능력이 너무 없어서 이름만 번지르르한 걸 걱정하는 걸까. 전자도, 후자도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엄마는 엄마 딸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까. 아직도 조금은 변호사에 대한, 20-30대에 대한 환상이 안개처럼 퍼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선생님께는 무슨 직업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질 않았네. 이건 다음 주에 물어보자.


  선생님은 수많은 레슨생을 만나면서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 겸손하기보다는 모든 일에 자신이 전문가인 것처럼 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진짜 전문가가 되면 오히려 아직도 내가 이만큼 밖에 모르는구나,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생각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새로 준비하시는 일에서 본인이 나중에 지금 자신이 비판하는 사람들처럼 될까 걱정하시길래 그럼 제가 정신 차리시게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음, 명치를 한 대 쳐드리거나 너무 폭력적이면 죽비같이 소리만 크고 아프지 않은 걸로 탁 한 대만 쳐드린다고. 나도 누구한테 정신 차리라고 한 대만 때려주게 부탁이나 해둬야 할 까보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


  공부와 운동만 한 것 같은 공무원에 합격한 친구가 짧게 레슨을 배우러 왔다 한다. 한 번도 누굴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굴 만나본 적도 없는 것 같다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신다. 아직 만난 지 한 달 밖에 안됐는데 그런 얘기를 선뜻 꺼내겠냐고 말씀드렸다. 생각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고요. 특히 마음속으로 혼자 좋아했다면 더더욱. 누군가에게 꺼내놓기도 아깝고 말로 하기도 조심스럽지 않겠나. 왠지 그렇게 꺼내놓으면 그 마음이 별게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 같고. 여튼 지켜보시지요, 했다.


  결혼식이 다시 지겨워졌다. 축하할 일이고 보기 좋은데도. 결혼식장의 패턴이 지겨우면서도 마치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해도 왠지 저는 못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고 하니 선생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고 한다. 다들 그러려나 정말. 그러기엔 올해 매 달마다 결혼식이 있는걸. 주변을 보니 더 위화감이 든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했다. 내가 그냥 있는 사이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하고 엄마 아빠가 되고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언니의 시어머니께서는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내 안부를 물으며 이리저리 재지 말고 사람을 많이 만나라고 하셨단다. 전해 듣고 거 참 피곤한 양반이시라고 했다. 별 걱정을 다, 라고 말씀드리긴 하지만 이건 취업과는 좀 다르게 불안한 문제다. 저런 말 한마디만 들어도 찜찜하다. 걱정 받는 존재가 되고 싶지도, 재고 따지느라 멈춰있는 헛똑똑이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다.


  우여곡절 끝에 줄을 갈았다. 갈고 나니 장력이 세고 미끌미끌해서 잘 눌러지지 않는다. 연습할 땐 그래도 제법 됐는데 아쉽다. 8비트를 4비트씩 나눠서 치고 코드가 바뀌는데 4번째 박자가 끝나고 코드를 뗐다가 다시 잡으라고 하셨다. 지금도 하고 있긴 하지만 좀 더 명확하게. 옛사랑을 불러보라고 하시는데 듣는 사람이 하나인데도 긴장이 된다. 기타 코드는 남자 키 기준이고 노래 목소리는 좀 높고. 짚을 줄 아는 코드는 몇 개 안 되고. 어찌 맞출지 아리송하다. 혼란하다 혼란해.


  버벅거리며 미끌거리는 새 줄에 노래 코드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다음 주에 녹음을 해보자고 하신다. 네?? 녹음이요? 저런. 기타 레슨을 시작하고 나서 그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저런. 선생님은 신기해하신다. 누구나 뭘 탓할 수 없지만 아득할 때 하는 소리다. 황망함의 저런이라고요. 여기 레슨생분들은 자주 녹음을 하시는 것 같다. 녹음을 한다고 하면 열심히 연습할 테니 그 동기부여를 위해서일텐데 것보단 걱정이 앞선다. 버벅거리는 반주에 키가 잘 맞지 않는 노래라. 자괴감이 폭발하는 건 아닌가. 그러나 이건 음원도 아니고 뭐 어떤가. 해보고 싶은 직업에 가수는 없었고 할 수 있다 생각도 해보지 않았으니 마음을 내려놓자. 그냥 부끄러움의 몫이 주로 내게 올 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기대가 하나도 안 되는 건 아니다. 휴대폰으로 녹음해서 들어보던 것과 얼마나 많이 다를지 궁금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아련하고 쓸쓸한 옛사랑. 의도치 않게 약간은 설레고 아주 많이 긴장되는 곡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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