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vefaith Aug 27. 2019

언젠가는 통기타 쳐봐야지- 옛사랑 (1)

코드 G, D, Am, Em

   

  레슨에 처음 늦었다. 젠장. 주섬주섬 안경을 쓰고 하기가 싫어서 일회용 렌즈를 이용하는데 준비를 다 해놓고 렌즈를 까먹었다. 그날따라 마을버스는 늦었고 게다가 기다린 보람도 없이 꽉 차서 탈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얼른 탈까 고민하다 말았는데 탈 걸 그랬다. 감을 믿지 그랬어! 그래도 말씀드린 대로 딱 5분 늦었다. 게임을 한 판 하시려던 선생님을 김빠지게 하긴 했지만.


  날짜를 보다가 벌써 한 달이 가네요,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에이, 아직 배운 지 한 달 밖에 안됐다고 하셨다. 그냥 한 달이 지나간다는 말씀이었는데 역시 선생님의 관심은 기타 레슨에 있었다. 맞다, 한 달마다 더 배울지 말지를 결정한다고 했었으니 그러실만도 하다. 다만 나는 한 달이 지나가는 걸 한 번씩 이렇게 느끼고 가지 않으면 후루룩 지나가 버리는 게 싫어 그렇다고 했다. 누군가는 반복되거나 무료한 삶일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도 한다. 어느 쪽인 걸까?


  큰 형부가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고 있다고 유투브에 영상도 있다고 하니 잠깐 보고 가게 됐다. 정말 처음 배우는 게 맞냐며 신기해하시고 요즘은 아마추어만이 낼 수 있는 울림이 좋다고도 하셨다. 음악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곤 한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있겠지. 모르는 게 나은 게. 형부의 영상에 간혹 음질이 살짝 아쉬운 것도 있지만 아주 잘 하고 있다 하니 칭찬은 형부에게 전달드리기로. 형부처럼 1년 정도 기타를 쳤을 때 나는 어느 정도가 되어있을까? 레슨을 받은 김에 이왕이면 형부보다는 쪼금 더 잘하면 좋을 것 같다. 기타를 잘 모르는 입장이지만 듣기 좋았으니까.


  형부랑은 어색한 사이인데 기타를 배운다고 하니 얘기할 거리가 생겨서 괜찮다. 선생님은 형부와 처제가 의외로 어색한 사이란 것에 한 번, 형부가 처제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두 번 놀라셨다. 내가 수완이 없는 걸 수도 있고 마음으로는 처제라고 형부 지갑에서 당연히 용돈이 나오길 기대하는 건 좀 그런 것 같았다고 그럼 이해를 하시려나. 다들 먹고살기 바쁜 세상이니까요.


  좋아하는 곡을 20곡 정도 찾아와서 연습하자고 해서 신나는 마음에 엄청 빨리 보냈었다. 목록을 보내고 보니 세상 느리고 잔잔하고 약간 우울한 것도 같다. 그렇게 말씀드리니 '감성적인 걸 좋아하는 걸로' 보자고 선생님은 그러시더라. 내게 오래, 자주 찾아듣게 되는 곡은 가사가 좋은 곡이다. 레슨을 처음 시작할 때 고민하다가 음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가사를 먼저 두었듯이. 물론 멜로디는 동물적인 감각이니 귀를 이끌기 때문에 아무리 가사가 좋아도 멜로디를 무시할 순 없다.


  에픽하이나, 하온, 빈첸, pH-1의 곡도 좋아하지만 기타로 연습하기엔 지금은 무리일 것 같아서 뺐다고 말씀드렸다. 어느 레슨생 분은 '으르렁'을 엄청 좋아하셔서 3주 내내 그것만 치셨다는데. 나는 그 정도의 '최애곡'이 있나 싶다. 20곡 안에는 김광석, 유재하, 이문세, 변진섭, 성시경, 10cm, 조원선, 선우정아, 곽진언, 김수영, 스탠다드 재즈곡과 팝송, 주변에게 받은 신청곡 등이 들어가 있다. 막상 내고 보니 좀 뻔한 거 아닌가 싶지만 뻔해도 좋으면 그만이려니.


  선생님과 함께 형부의 연주 동영상과 내가 좋아하는 가수 동영상을 살펴 보니 벌써 레슨 시간이 반이나 훌쩍 지났다. 진도는 4비트를 다음의 8비트. 2,4번째 박자에 악센트를 주는 4비트와 달리 8비트는 3, 7번째 박자에 악센트가 들어간다. 그리고 만난 새로운 코드 네 친구 G, D, Am, Em. 다른 건 괜찮지만 G부터 저런, 소리가 나온다. 새끼손가락이 말을 안 듣지만 우여곡절 버퍼링 끝에 누르니 좋은 음이었다. 걱정하지 마시라! 이렇게 손가락이 말은 안 듣지만 좋은 음을 내는 코드가 잔뜩일테니까.


  제출한 곡 목록을 보다 보니 배운 코드+a로 할 수 있는 첫 연습곡을 받았다. 이문세의 <옛사랑>. 좋아하는 곡이다. 가을겨울 느낌도 나고 아련한 멜로디에 좋은 가사, 좋은 목소리. 코드 전환이 쉽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코드 진행이 많아서 그나마 낫다. 원곡도 느리긴 하지만 거의 2-3배속은 느리게 치고 있다. 레슨받을 때 노래도 같이 부르라고 하시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가창 시험도 그렇고, 누군가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역시 머쓱하고 민망하다. 감성도, 호흡도, 힘도, 기교도 부족하고 썩 잘 부르는 건 아닌 걸 알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자네가 지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할 타이밍이 아닐세. 기타를 치라우! G-D-Em-B7-C-G-A7-D7 =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난주 첫 코드를 배우고 동요 연습곡과 함께 하면서 '곰 세 마리'를 연습하는 데 코드를 두 개 밖에 쓰지 않는데 전환이 쉽지 않아 자괴감이 +1 되었다. 옛사랑도 세월아 네월아지만 연습하고 나면 덜 헛돈다. 좋아하는 곡을 연습하는 차이라 자괴감이 아직 안 찾아온 모양. 악기를 배우는 건 이런 일희일비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걸 배우면서 뭔가 되긴 되나 보다 하는 신기함, 마음먹은 대로 몸으로 출력되지 않는 자괴감, 그 와중에 천천히 되지 않던 게 조금씩 잘 되는 뿌듯함. 일희일비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마음이 한결 같았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작은 언니의 기타는 트래블 기타라 작은 것 같다고 다른 통기타를 쓰는 게 좋겠다고 한다. 건너건너 쓰던 통기타를 전달받았다. 입문용 크래프터 기타. 줄이 오래되어서 갈고 나야 소리를 제대로 알 수 있을 듯 하다. 무거운 악기를 하다가 아주 가벼운 기타를 만나, 줄빨로나마 울리는 소리가 싫지 않다. 요즘은 집에 가면 기타를 들게 된다. 30분은 꼭 연습하자. 왼손은 단단해지고, 해는 짧아지고 있다. 해가 지기 전에 얼른 서두르자.

매거진의 이전글 언젠가는 통기타 쳐봐야지 - 코드와 굳은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