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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May 29. 2023

<헤어질 결심>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서늘할 때 보면 좋을 영화 <헤어질 결심>. 마침내, 단일한 같은 문어체 대사가 매력적이다. 해준과 서래를 보면 지독하고 어렵게 사랑하는 느낌이 든다. 볼수록 확실하게 느껴진다. 아, 망한 사랑이다. 그리고 망한 사랑일수록 오래 마음에 남는다.



간단히 보면 경찰 해준과 피의자 서래의 사랑 이야기다. 해준은 한 아이의 아빠이자, 정안과 16년 8개월째 결혼했고 최연소 경감이다. 서래는 중국에서 온 간호사다. 한국으로 밀입국했으나 독립운동가 계봉석이 외조부이기에 한국에 정착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족은 없다. 출입국사무소의 기도수와 첫 번째 결혼을, 주식 애널리스트 임호신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두 남편 모두 죽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한국에 있는 호미산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녀는 호미산에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들 수 있게 하려고 한국에 왔다. 무거운 유골함을 들고.


서래가 기도수를 죽인 범인이라는 건 눈치챘다. 간병인이 어르신을 대신해서 전화를 답을 한다는 간병업체. 월요일이 가끔 빨리 오는 것 같다는 이해동 할머니. 결정적으로 해준이 서래의 손끝을 만지며 거칠다고 할 때. 범인이구나 싶었다. 남편이 산에서 추락사했는데 그 아내의 손끝에 굳은살이 있다면? 의심해 볼 만하다. 간병인에게 신기할 만큼 굳은살이 생길만한 일이 있을까? 클라이밍 비슷한 걸 취미로 하지 않는 이상.


마침 그 장면은 구소산 변사 사건(기도수 사건)이 자살로 수사 종결된 시점. 해준이 서래의 손을 잡고 비가 내리는 절을 함께 걸어 다닌 날이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한국 여자들은 손이 참 보드랍죠?”라고 얼버무렸을 뿐. 다행히도 아직 해준은 눈치채지 못했다. 서래는 그때라도 용의주도했어야 한다. 이미 수완이 경고하지 않았나. 굳은살도 굳은살이지만, 월요일마다 간병하는 이해동 할머니의 핸드폰 어플을 정리하거나 아예 초기화쯤 시켜뒀어야 한다. 그녀는 해준이 끈질기고 민첩한 경찰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그가 할머니와 마주칠 일은 만들지 않았어야 했다. 적어도 그와 좀 더 함께이고 싶었다면.




해준은 서래로 인해 붕괴되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는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고 품위를 지킬 줄 알았다. 범인을 잡기 위해 올바르게 보려 노력하고 벽에 사건 현장 사진을 붙여놓고 고민했다.


그러던 그가 그녀가 범인이란 걸 알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해준은 왜 완전히 붕괴된 걸까? 서래를 만나기 전에 그가 여태까지 맡은 사건에서 수사를 망친 적이 없어서? 수사를 하다가 난항이 생기고 잘못된 길로 흘러가 사건을 종결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위에선 기도수의 죽음같이 규모가 작은 건은 빠르게 마무리하고 큰 사건을 해결하길 바라지 않나.


그의 집 벽에 여전히 미결 사건의 사진이 붙어있다는 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놓쳤거나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반증은 아닐까. 실제로 서래는 쉽게 질곡동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홍산오가 어디 있을지 빠르게 윤곽을 잡았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라는 명대사와 함께. 죽을 만큼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면 무슨 상태든 그녀와 있을 거라는 게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타였다. 해준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이었다. 그는 그렇게 사랑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가 수사를 망칠 수도 있는 경찰이라고 치자. 그가 이전에도 붕괴된 적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서래가 불러일으킨 붕괴는 무엇이 다른가. 왜 ‘완전히’ 붕괴됐다는 걸까. 경찰로서의 해준의 원칙이 무너졌다. ‘여자에 미쳐’ 판단력을 상실해서 범인을 놓쳤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으니 넘어가자. 문제는 범인인 줄 알면서도 잡고 싶지 않아 졌다는 점이다. 범인을 잡고 싶고, 잡아야 하는 게 경찰인 그의 일인데도 그는 범인이 잡히지 않도록 돕고 있다. 유력한 증거로 수사를 하기는커녕 깊은 바다에 빠뜨리라고까지 하면서. 사건의 범인이지만 그가 사랑하는 서래를 위해 정반대의 일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 그의 원칙과 함께 붕괴된 것은 서래에 대한 믿음이다. 서래의 감정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못된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상황을 안쓰러워하고 왜 그런 남자들과 결혼한 건지 답답해하니까.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그녀에게 쉽사리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그녀는 상대가 원하던 대로 혹은 예정된 대로 죽음을 선사해 주었다. 편찮으신 어머니가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게 해 드렸으며, 산을 좋아하는 첫 번째 남편 기도수가 산에서 죽을 수 있게 했고, 두 번째 남편 때문에 돈을 잃은 철썩이의 어머니 역시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게 했다.


혹여 의도가 나쁘지 않았더라도 그녀가 사람을 죽게 했다는 것에 변함은 없다. 살인이 흡연 같아서 습관적으로 저지른 것은 아니다. 서래는 사철성 (철썩이) 어머니의 죽음은 앞당길 계획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돌아가셨을 분이고, 철썩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임호신을 죽일 예정이었으니까. 남편 임호신이 해준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파일을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협박 같은 것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어차피 자신이 죽을 목숨인 건 알고 있어서 잃을 게 없었다지만 명을 재촉할 줄은 몰랐다. 물론 철썩이도 서래가 이용당하는 척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몰랐지만.



또렷한 눈빛과 낮은 목소리, 흥미로운 화법. 서래의 이미지를 지우고 행동을 생각해 보자. 그녀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랑 없이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다. 그녀를 보고 냄새를 맡고 말을 들어준다는 이유만으로 뇌물을 받고 폭력을 휘두르는 나이 많은 기도수와 결혼했다. ‘사랑해'를 '고마워'처럼 영혼 없이 쓰면서 남의 돈을 떼먹고 자기애에 취한 임호신과 결혼할 수 있었다.


서래에겐 거짓말도 결혼도 어렵지 않지만 사랑은 어렵다. 해준과 같은 바람직한 남자가 자신을 만나 주지 않는다는 말은 농담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그녀의 남편이 죽지 않았다면 그들은 만날 일이 묘연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괴롭고 불행하게 한다면 남편을 죽음으로도 몰 수 있다. 손등의 상처는 남편과 산에 가는 문제로 다투다 생긴 게 아니라 남편을 산 정상에서 밀치면서 생긴 것이었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며 병원에서는 웃기만 하는 여자, 자해를 하면서 산에 가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여자, 몸에 기도수의 이니셜 KDS가 새겨진 여자. 그것만으론 서래를 설명할 수 없다. 그건 서래가 처한 상황이니까.


거짓말과 왜곡은 그녀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래는 기도수를 죽이기 위해 고소공포가 있지만 138층 높이의 구소산을 올라가기 위해 연습을 했고, 뇌물을 받는다는 협박편지와 그 편지에 자살을 암시하는 답장도 준비했다. 해준에겐 기도수 씨는 자살이라 말하기까지. 철저하게 계획적인 살인이었다. 술에 취해 그녀의 집에 찾아온 수완이를 보고 집안을 어지럽히고선 짐짓 그의 탓인 척하고, 해준이 미안해하며 청소하는 걸 지켜보는 자잘한 거짓말은 문제도 아니다.



해준이 아는 서래는 어디까지 진실일까. 해준은 서래가 그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했다. 말씀이 아니라 사진을 보겠다고 해서. 흡연도 바다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고.


그래서 그는 서래에게 초밥을 주문해 주었을 것이다. 경비처리도 안 되는 비싸고 맛있는 시마 초밥을. 그녀가 젊고 예쁘고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살인자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종족이라고 생각해서. 고풍스러운 우리말 단어를 쓰는 호기심, 타국에서 폭력적인 남편을 만난 그녀에 대한 연민도 포함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를 위해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밀려오는 사람이 있다’고 대변해 주면서.


해준은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가 뿌린 향수를 맡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그녀의 대답에 웃기도 했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어려운 말은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잠복을 하며 한동안 밤마다 지켜보면서 그녀를 걱정했으며, 사건이 종결되고선 아이스크림으로 저녁을 때우는 그녀에게 직접 식사를 만들어주었다. 그가 아는 단일한 중국식 요리에 가까운 볶음밥으로.


그녀를 이렇게 대해 준 사람은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스스로를 채우기에 바쁘니까.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그녀의 거짓말을 깨달은 그의 얼굴이 괴로움으로 일그러지고 나서야 그녀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이포에서 다시 만난 그는 전과는 다르게 그녀를 대했다. 그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도 피의자로 만난 그녀를 믿을 수 없어 핫도그를 주문해 주었다. 다시는 거짓말에 속지도, 믿지도 않겠다는 결심처럼.


그녀는 첫 남편은 자살이고 다음 남편은 타살이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그와 헤어질 결심을 하느라 결혼했다는 이야기, 그녀의 상황을 들으면 공교롭다는 생각이 아니라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할 것 같다는 말을 할 때 눈빛이 흔들렸다. 핫도그로 무심함을 표현하려던 게 무색하게도 그는 모질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의심받지 않을까 봐 굳이 일어나서 카메라에 그녀가 비치지 않게 했다. 그녀가 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해준은 서래를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던 건 아닐까. 남편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말씀이 아닌 사진을 선택한 건 그녀가 해준의 실망한 반응을 보고 답을 바꿔서는 아닐까. 해준이 잠복을 하면서 ‘우는구나. 마침내’ 란 말을 녹음한 순간,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가 실제로 눈물을 흘린 건 잠복 중 녹음한 그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해준은 호미산의 낭떠러지에 서 있을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서래의 처분을 기다렸다. 마치 그녀가 자신을 죽이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그녀가 그를 안았을 때 그의 놀란 숨소리가 기억에 남았다.


해준은 서래를 좋아하는 이유가 몸이 꼿꼿해서라고 했다. 해준 역시 몸이 꼿꼿하다. 그게 그들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은 걸 설명할 수 있을까? 그녀가 자신과 같은 결의 사람이라는 느낌뿐인 것만은 아니었을까.


해준은 살인과 폭력 밖에서 사건을 해결하지만 서래는 살인과 폭력 한가운데에서 사건을 저지를 수 있다. 해준은 그러면서도 살인과 폭력을 기다리고 반가워한다. 서래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해준을 위해 또 다른 살인 사건을 만들 수 있다.


얼핏 보면 수요와 공급을 채워주는 듯 보인다. 범죄가 있어야 해결할 사건도 생기고 경찰이 삶의 활력도 되찾으니까. 그럼에도 서래와 해준의 사이는 서로에게 파괴적이다. 해준은 살인자를, 범인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살인 사건을 환대할 수 있지만 범인을 마음 놓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는 없다. 홍산오에게 너는 쓰레기가 아니라고, 너는 진짜 사랑하지 않았냐고, 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를 때린 남편을 죽이고 싶다고 얘기하는 데는 진심도 있지만 결국은 산오를 방심하게 하고 검거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는 기도수를 죽인 서래에게 왜 경찰을 믿지 않았냐고 했으니까.


해준은 평상시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서래와 함께 있을 때만 깊게 잠든다. 서래의 집에서 잠복하면서 잠들고, 홍산오가 죽고 난 밤 그의 집에 찾아온 서래의 숨소리를 듣고 잠들고, 수갑을 찬 서래 옆에서 곤히 잠들었다. 이 정도면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만나도 되지 않을까 싶게 안 됐다. 자부심인지, 품위인지, 원칙인지, 강박일지 모르는 마음이 그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잘 이해되지 않았던 건 아내 정안이었다. 16년 8개월을 부부로 살면 뭐 하나. 정안은 해준을 무서워하고 믿지 못한다. 해준이 경찰로 타인을 의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임호신을 죽인 범인인 것처럼 오해하고, 살인과 폭력 사건을 필요로 하는 그를 이상하게 여긴다. 샘이 많은 이 주임과 함께 집을 떠나기까지 한다. 밉고 싫을 때도 건강을 위해 매주 섹스는 해야 한다면서 믿을 수는 없다? 그녀 옆에서 시들어가는 그를 보며 무기력에 빠졌을 수는 있어도 과하게 느껴졌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함께 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




이포로 내려오기 전 서래는 계속 해준의 목소리를 듣고 탁자엔 시마 초밥 상자가 열려 있었다. 해준과 먹을 때는 맛있게 비웠던 초밥이 그대로 있던 건 아마도 그가 떠올라서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래도 좋다. 정안도 집을 나가는 마당에 해준과 서래가 함께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잠시나마 한 건 사실이다. 해준은 깊은 잠을 자고, 서래는 이상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서래는 해준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그녀는 계획적이었다. 전날엔 유골함을 비웠고 해준에게 재수사를 하라며 폰을 다시 건네주었다. 미리 꽂아둔 것 같은 긴 막대기를 뽑고 모래를 잔뜩 퍼내고 그 안에 들어가 앉았다. 파도가 밀려올 시간에 맞춰서. 이윽고 파도는 밀려왔고 모래는 무너져 내렸다. 사라진 서래에게도, 서래를 찾아 파도를 헤매는 해준에게도 안타까운 마음이 왈칵 몰려온다. 아예 예상하지 못한 일이 아니었는데도, 정말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놀라면서.


해준은 사건을 마주할 때 인공눈물을 넣는 습관이 있다. 기도수가 죽었을 때, 임호신이 죽었을 때, 자라가 도난당했을 때, 그리고 서래가 차를 버리고 바다로 사라졌을 때. 그녀가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 이포에 왔다는 말을 기억해서였을까.


서래의 사랑은 아름다울지언정 지독하다. 그녀는 그와 헤어질 결심은 했지만 그가 그녀와 헤어지길 바라진 않는다. 그가 서래를 계속 생각하길 바라기에 그녀는 삶을 내놓았다. 그녀가 살기 위해 이상한 남편들을 만나 결혼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가 언제 사랑한다는 말을 했냐는 말에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으로 인해 무너지고 흔들리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자신도 모를 정도로 마음이 새어 나온 사람이니까. 자신만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그녀를 조종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해준 역시 지독하다. 초밥을 사주었을 때보다 핫도그를 사주었을 때 그는 그녀를 더욱 아프게 사랑하고 있었다. 티 내지 않고 부정하고 싶어 꼭꼭 숨기느라 자신이 상처를 받으면서. 그녀와 다시 만나기 전 402일을 꼬박 세면서. 어느 날 갑자기 그녀를 다시 만나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받기 전까진 반쯤 죽어있는 것처럼 지내며.


경찰로서의 자부심과 품위,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 서래에게 해답은 그녀가 그에게 사건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그녀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바다에 몸을 맡겼다. 그의 말대로 바다에 빠뜨리면 아무도 찾을 수 없을 테니까. 미결 사건이 되면 지금처럼 그가 자신을 무너뜨리며 피의자였고 범인인 그녀를 고통스럽게 사랑하지 않아도 되니까. 피 흘리는 사진들이 가득한 해준의 벽에 서래의 사진은 유일하게 피 흘리지 않은 미결 사건이 될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늙은 한국인 남편이 산에서 떨어져 죽고, 사기로 원한을 사서 칼에 찔려 죽은 중국인 남편이 있었던, 바다에서 실종된 젊은 중국인 여자 사건. 그보다 이렇게 답하는 게 더 간단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싶어서 바다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여자, 그 여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게 사랑이었구나 깨달은 남자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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