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vefaith Jun 24. 2024

너를 보내고



어제 네가 떠났다. 잠시 나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왠지 다른 느낌이었다. 차분히 누워있는 널 보고 어머니는 쉬고 있는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생기가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생각했던 것들을 시작하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애를 썼다. 관을 열고, 천을 펴고, 입에는 가제 수건을 말아주었다. 너를 보내줄 곳을 찾아서 네가 희미하게 사라져 갈 때쯤 나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렇게 태어났다가 돌아가는 게 삶이고, 남아있는 나의 일은 너를 보내고 한동안 슬퍼하다가 아주 오래 그리워하는 것이겠구나.


밤에 뒤척이는 너를 알고도 잠에 취해서 신경 쓰지 못하다가 이상하게 요 며칠은 네 옆에서 잠을 잤다. 네가 아파서 꿍얼거리면 토닥토닥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제 새벽에 너도 나도 잠들지는 못했다. 1시간마다 깨면 너를 다시 쓰다듬어주었다. 숨소리는 차지만 네 눈은 말똥말똥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정말로 마지막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밤을 넘길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아침이 밝아왔다. 두려워하지는 않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너를 보내고 온 날보다 오늘이 조금 더 아리다. 한동안은 계속 그럴 것이다. 집에서 네 물건은 이미 한 다발 쌓아서 밖에 내어 두셨다. 네가 없지만 그게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잘하고 있다. 너는 영영 떠난 게 아니라 내 안에 스며들어 있으니 아쉬워할 일이 아니다. 너는 오래 살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슬퍼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다 아침에 밥을 먹는데 식탁 아래 발밑에 있던 네가 생각났다. 혹은 뒤를 돌아보면 나를 보고 있던 네 얼굴이. 그리고 집을 나서면서 다녀오겠다고 말할 존재가 없다는 걸 느꼈다. 계단에도 여러 모습의 네가 보인다. 어릴 적 계단을 내려오길 무서워하던 네가, 커서 성큼성큼 두 계단씩 뛰어내려오고, 나중엔 다리가 아파 안겨 내려오기도 했다. 집 근처를 산책을 많이 했으니 아마 길을 걸으면서도 네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산책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하던 모습 덕분에 산책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모르는 길을 가도, 길을 잃어도 괜찮다 싶을 만큼.


사고도 많이 쳤다. 병원도 꽤 많이 다녔다. 이런저런 마음고생도 많이 했기에 네가 미울 때도 있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네가 없었다면 내 일상은 심심하고 재미없었을 것이다. 그냥 눈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조금 짧은 주둥이도, 왠지 안되어 보이는 작은 눈썹도, 몇 가닥 안 되는 수염도. 진한 갈색 눈이 어느새 탁하고 까맣게 변해도, 탄탄하던 네 다리가 전보다 말랐어도, 그 다리를 쓰지 못하고 끝내는 주저앉게 되었어도, 네가 아무리 약해져도 나는 그런 네가 좋았다. 사랑이 무엇일지 알쏭달쏭한 내게 이런 게 사랑이겠구나 싶은 걸 가르쳐 준 건 역시나 너였다. 물론 알고 있겠지만. 


고등학교 때 만나서 너를 앉혀두고 문제를 풀고 설명을 해주었고, 대학교 때는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너를 가만히 안고서 '세상엔 너보다 못된 사람이 정말 많다'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 후에도 지금까지 내가 지쳐서 돌아온 밤마다 네 얼굴을 보면 금방 사라졌다. 감정이 널을 뛰던 나를 받아주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아주 힘들 때 곁에 있어줬으니 네가 힘들 때 내가 곁에 있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한편으론 네가 먼저 나를 떠나는 게 다행이다. 너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 다시 청설모를 닮은 꼬리를 흔들면서 신나게 달릴 수 있다. 최근에 집에 들어올 때 발길이 무거웠던 건 아픈 너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걸 보고 무너지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노력하는 게 티가 날까 두려웠다. 처음엔 널 보내고 싶지 않았다가, 나중엔 네가 아프지 않길 바라다가, 마지막엔 네가 부디 편안하게 떠나길 바라게 됐다. 그렇게 마음을 버리고 비우는 와중에 가끔씩 새어 나오는 모습을 보여서 미안했다. 막상 너는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


누리야, 힘이 들 때면 밀보리 빛이 돌던 네 뒤통수를 떠올릴 것이다. 어느새 인자해진 표정으로 바라보던 눈빛도, 쫑긋 서있는 귀도, 따뜻한 품도, 작게 두근거리던 심장소리도, 그리고 말없이 곁을 내어주던 그 마음까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그중에 제일은 힘을 빼고 비우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