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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Nov 26. 2024

일렁이는 바람 속에도,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조금은 이르지만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길었던 여름을 지나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한 가을은 아쉽게 찾아왔다. 노란 은행잎을 밟게 되어 반가워하기도 전에 바람이 불어와 나무가 앙상하다. 서늘한 바람과 맑은 하늘을 많이 즐기지 못해서인지 마음이 헛헛하다. 마침 올해의 마지막 연주회도 마쳤다. 이번에 처음 윈드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연주회를 한 친구가 관객으로 볼 때 공연이 참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대에 서서 느끼는 것만큼 관객으로 느끼는 충만함을 느끼고 싶어졌다. 김광석 가수의 음악이라면, 아쉬운 가을을 조금 덜 아쉽게 보낼 수 있을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안고 대학로를 찾았다. 혜화역에 내리면 같은 생각을 한다. 이제는 공연을 거의 예매하고 올 텐데, '예매를 하셨냐'면서 현장 예매를 추천하는 분을 매번 만난다. 누군가 예매를 하지 않았고, 그분을 통해 예매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날이 추운데 그분은 혼자 대답이 없는 말을 하루 종일 하고는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모처럼 이렇게 마음을 먹고 밖에 나왔는데, 이렇게나 늘 사람이 복닥복닥 많은 모습에 놀라면서. 그런 이상한 생각을 무표정하게 하고 있다. 




김광석 가수의 노래는 남녀노소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바람으로의 여행> 공연장에 들어서니 엄청난 비율로 중장년층이 많았다. 바람으로의 여행은 보컬 이풍세, 퍼커션 최고은과 한겨레, 건반 백은영, 기타 김상백, 베이스 홍영후로 이뤄진 서인대학교의 '바람' 밴드로 모인 친구들의 여정이다. '바람으로의 여행'은 다 같이 대학가요제에 나가려고 준비한 곡이었다. 


이들은 여러 상황에 이리저리 휩쓸린다.  특히 풍세는 세상의 풍파는 다 겪었다. 기타를 들고 바람 밴드에 들어온 그는 군대 가기 전 여자친구 고은이를 사귀게 됐고, 대학가요제를 준비하다가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베이스 친구가 있어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퍼커션을 하던 친구가 학생 시위에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말에 별생각 없이 노래를 불렀다가, 눈앞에서 친구가 목숨을 잃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마침 고은이의 아버지는 권력자였고, 그를 조용히 풀어주는 대가로 고은이를 유학 보내면서 그녀와 헤어지라는 것이었다. 그녀와 헤어진 것과 별개로, 그는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바람 밴드의 20주년 공연에 나타나 다시 노래를 하는 모습만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참 기구하다면 기구하다.


  풍세 같은 목소리를 가졌다면, 역시 혼자 노래하는 것도 좋지만 밴드를 꼭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바람 밴드에서는 퍼커션)과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건 상상만 해도 멋지다. 공연에서 실제로 배우들이 노래와 연주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또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 수 있다. 그래도 공연을 보면 기타로는 합주를 해본 적이 없지만, 합주를 해봐도 어렵고, 재밌겠다 싶어 진다.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정말 많아서 그렇지, 막상 둘을 같이 하려고 하면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기타 자판은 어딘가 싶고, 누가 듣는다고 생각하면 혼자 있을 때처럼 노래가 편히 나오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일렉과 베이스가 쉽냐고 하면 그것도 배워보니 어렵다는 측면은 마찬가지다. 키보드와 퍼커션은 리듬이 많아서 되어줘야 하니 그대로 어렵다. 노래도 좋고, 기타도 좋은데, 박자가 흔들린다면? 덜그럭거리는 느낌을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배우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공연에, 연기할 때 흘리는 눈물을 목격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서로를 좋아하던 말간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니 마음이 시큰해진다. 기타를 처음 배우게 되면 그가 있어 몇 개 안 되는 코드로도 칠 수 있는 곡이 생겼다며 좋아하게 된다. 그러다 가사를 보면 스며들게 된다. 김광석 가수의 노래는 신기하게도 때마다 와닿는 곡과 가사가 다르다.  언젠가는 <그날들>의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이었고, 때로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의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거리에서>의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였다. 올해는 <흐린 가을에 편지를 써>였다.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 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이 와닿아서 그럴지도.


  상표권 분쟁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제목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비하인드가 있다. 아마 그 제목이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공연이라는 것을 빠르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혜화역에서 내리면 늘 드는 생각처럼, 사람들은 요즘엔 이미 공연을 찾아보고 보는 경우가 많으니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것이다. 바람으로의 여행이라는 제목보다, 김광석 노래의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공연의 소개를, 그리고 바람 밴드로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노래를 보고 찾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누구나 보아도 좋지만, 아마도 중장년층이 많이 찾게 될 공연이다. 중간중간 나오는 하모니카가 불러오는 향수가  있다. 한편으로는 드럼이 추가되면 무대 느낌이 많이 달라질 것 같은데, 소극장이다 보니 무대 전환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 싶기도 하다.  만약 중장년을 타겟으로 한다면 대학로의 특징인, 상대적으로 좁은 좌석 공간과, 인터미션 없이 진행되는 점, 장시간 앉아있기에는 얇은 쿠션의 좌석이 관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앵콜곡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 보면, 광석이 형님이 어렵지 않은, 언제 들어도, 언제 불러도 좋은 노래를 우리에게 나눠주셨구나 싶다. 여태까진 김광석 가수라고 하다가 왜 갑자기 형님이냐고 하면, 멋있으면 다 친근한 존칭으로 형님인 것이다. 잘 모르겠다고? 적어도 <이등병의 편지>랑 <서른 즈음에>는 다 알게 되더라. 첫 소절만 들어도 알다마다. 다른 곡들은? 살면서 하나씩 듣게 된다. 신기하게도. 하나씩 그의 노래를 알게 될수록 아마 이 공연에서 느끼는 바람도 달라지진 않을지.



* 이 리뷰는 ARTinsight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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