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아프기 위해 아이와 함께하는 작은 여정”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은 선택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갑자기 세상에 던져져 검정 도화지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검정색뿐이라,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다른 색이 있다는 걸 알기까지는 조금 오래 걸렸다.
너무 진하게 스며든 검정은 다른 색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했다.
날카롭고 거칠게 살아야 했고, 깨지고 부서지길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더욱 힘든 길을 걸어왔다.
그렇게 걷고 걷다 만난 나의 아이는, 뜻밖에도 검정색이 아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그리고 태어난 그 자체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다른 색.
어쩌면 나 또한 다른 색으로 태어났던 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나의 색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아이의 색을 지켜주기 위한 여정을 함께 걷고 있다.
이 책은 그 여정의 기록이다.
혹시 나처럼 아픔 속에서 길을 잃은 이가 있다면,
나의 이야기가 그들의 색을 비춰주는 또 다른 빛이 되어주길 바란다.
솔이는 과자를 일부러 흩뿌려놓고 정리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순간 “나가”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곧바로 “하... 우리 엄마 같네..” 라는 생각이 스쳤고, 미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아이는 상처가 된 듯 울음을 터뜨리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상황상 “미안하다”는 말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나는 급히 말을 정정했다.
“엄마는 네가 치울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러자 솔이는 더 크게 울며, 억지로 헛구역질까지 하며 회피하려 했다.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순간, ‘이러다 아이가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이 몰려왔고,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고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단호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서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멈췄다.
숨을 고르고, 가슴 뛰는 소리조차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숨죽였다.
엄마로서 처음 내리는 단호한 각오였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솔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나 또한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작은 텐트 안으로 들어가 지퍼를 모두 올려버렸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참으며 다른 생각을 했다.
‘아이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작은 과자 조각들을 하나씩 담기는 힘들 텐데… 그렇다면 방법을 가르쳐줘야겠구나.’
얼마 후, 아이는 보란 듯이 더 크게 악을 쓰며 텐트를 흔들었다.
나는 꾹 참고 차분하게 말했다.
“솔이, 지금 난폭하게 행동하는 건 나쁜 짓이야. 엄마는 네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릴 거야.”
하지만 아이는 더욱 격렬해졌다.
결국 나는 텐트 문을 열고 단호히 바라보며 “하지 마”라고 말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이는 애처롭게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말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뚝 하고 울음이 그쳤다.
“이제 다 울었어?” 하고 묻자, 아이는 히끅거리며 다시 눈물을 훔쳤다.
조용히 기다리자 조금씩 진정되었고, 나는 다시 물었다.
“이제 괜찮아?”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차분히 말했다.
“솔이가 난폭하게 텐트를 흔든 건 텐트가 부서질 수도 있었어. 그건 나쁜 행동이야.”
아이는 “응” 하고 대답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치우러 갈까?”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잡았다.
방으로 들어간 뒤, 나는 치우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작은 과자는 도구를 이용해 쓸어 모으는 법을 알려주자 아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치우기 시작했다.
정리가 끝난 뒤, 나는 아이를 세우고 눈을 맞췄다.
“또 이렇게 할 거야?”
“아니…”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솔이가 잘못한 건 맞아.
하지만 엄마랑 같이 치운 건 잘했어.”
내 말에 아이는 안기듯 다가왔고, 나는 꼭 안아주었다.
나는 다시 한번 확인하듯 말했다.
“엄마는 네가 말을 안 듣고 정리하지 않으면 속상하고 화가 나.
그렇다고 해서 솔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는 건 아니야. 알았지?”
아이는 “응” 하며 나를 꼭 껴안았다.
그날 밤, 나는 늘 하던 대로 이마에 뽀뽀하며 말했다.
“사랑해.”
오늘의 숨죽인 기다림과 단호함, 그리고 포옹이
아이의 마음속에 오래 남기를 바란다.
작은 빛이 되어 남은 한마디
❝ 사랑은 흔들림 없는 확신이 아니라, 흔들리며 지켜낸 과정 속에서 빛난다. ❞
아이를 꼭 안아주며 문득 깨달았다.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무리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부모의 품 안에서는 그래도 되는 거다.
울어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고, 주저앉아도 괜찮고,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곳.
그게 바로 부모의 품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품은 아이에게 기댈 수 있는 안정감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힘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
서툰 것을 연습하고, 익숙해질 때까지 다시 해보고,
실수 속에서 배워나갈 수 있는 공간.
아이는 바로 그 ‘부모’라는 공간 안에서 연습하고, 배우고,
언젠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러니까 부모란, 결과를 바라보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과정을 견뎌주는 자리다.
오늘, 솔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부모교육이 있었다.
제목은 ‘자녀에게 주는 귀한 선물’.
그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나는 강의를 들으며 깨달았다.
그림책 오늘은 미용실 가는 날을 통해 전해진 메시지는 단순했다.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올바른 소통.
그 단어들은 이미 너무 익숙했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내가 자주 놓치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늘 크다.
그래서 더 많이 가르치려 하고, 더 잘해주고 싶고,
실수하지 않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하지만 오늘 나는 깨달았다.
그 모든 마음이 사실은 ‘아이의 시선이 아닌 부모의 시선’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를 위한 마음이 때론 아이를 숨 막히게 할 수도 있다는 것.
아이를 위한 말이 때론 아이를 외롭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아이의 입장, 아이의 눈높이.’
그 당연한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프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부모의 자리는 늘 아이보다 높아지기 쉬운 자리다.
그래서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아이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그래서 오늘 나는 다짐했다.
이제는 내 시선보다 아이의 시선에서 먼저 바라보자고.
내 기준보다 아이의 마음을 먼저 묻자고.
가정은 아이에게 가장 안전한 배움터이기를.
사랑은 아이에게 가장 따뜻한 언어이기를.
그리고 나는, 그 따뜻한 언어를 매일 연습하는 사람이기를.
작은 빛이 되어 남은 한마디
❝ 아이의 눈높이는 부모가 낮아질 때 비로소 따뜻하게 열린다. ❞
아이는 산만해 보였다. 편식도 심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두 가지 메뉴를 준비했다.
하나는 안 먹을 수도 있으니, 다른 하나라도 먹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가만히 앉아서 먹지 않았다.
내가 힘들게 만든 음식을 먹지 않으면 화가 났고, 컵이라도 쏟는 날이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솔이, 누가 쏟으래?”
“정신없게 이럴 거야?”
“왜 또 안 먹어?”
“엄마가 아침부터 힘들게 만들었는데 안 먹을 거야?”
“먹어야 건강해지고 쑥쑥 크지.”
그때의 나는,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을 받고 난 뒤,
나는 산만한 아이가 아니라 호기심 많은 아이를 보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 다른 게 보이면 그쪽으로 기어가는 것,
그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른도 자기 통제가 어려운데, 이제 네 살인 아이는 얼마나 더 어려울까.
편식도 마찬가지였다.
‘입 안에 닿는 식감’이 중요한 촉각 예민 기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 입장에서는 음식이 낯설고 불편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일부러 쏟았다고 믿었던 행동조차, 사실은 실수였다.
상담을 받고 나서야 나는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가 아니라, 그저 자기 속도대로 성장 중인 아이로.
그리고 욱하는 화는 약의 도움을 받으며 조절할 수 있었다.
내 감정을 조절하니, 아이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건 나에게 정말 큰 선물이었다.
작은 빛이 되어 남은 한마디
❝ 아이의 행동을 바꾸는 것보다, 내 시선을 바꾸는 것이 먼저였다. ❞
에필로그 · 나는 느린 엄마입니다
내 아이를 위해 다시 말하는 법을 배웁니다.
나는 말도 더듬고, 많은 단어를 알고 있지도 않으며, 흔히 말하는 근사한 외모도, 말재주도, 글재주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잘하는 게 있다면,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나는 매번, 매 순간 나와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머리가 특별히 좋지도 않고, 기억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그 어떤 것도 “잘하는 게 많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끊임없이 하려는 게 있다.
내 아이가 나처럼 자라지 않도록 돕는 것.
아이의 타고난 기질대로 자연스럽게 자라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
그게 부모의 역할이니까, 나는 그렇게 노력하려 한다.
내가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노력해주는 일’이다.
모르는 것은 배워서라도, 틀린 것은 고쳐서라도, 부족한 점은 채워서라도—
아이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나씩 배우고 있다.
많이 어렵고, 그래서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나는 생각이 느리다. 타고난 건지, 환경 때문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런데도 괜찮다. 왜냐하면 내 아이는 나를 기다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적절한 단어, 적절한 행동을 전해주기 위해
하나하나 다시 생각하고, 다시 표현하려고 애쓴다.
처음엔 말이 느린 내가 바보 같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나 자신이 좋다.
왜냐하면 그 느림 덕분에 더 신중해졌고, 더 좋은 단어를 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순간의 대화에서는 밀릴 수 있다.
하지만 거듭되는 생각 속에서 아이에게 전할 말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하나씩, 천천히. 그렇게 나는 내 아이에게 중요한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보다 느리게 걷는 나를 보고 아이가 말한다.
“엄마보다 빨리가”
그럴 땐 이렇게 바꿔 말한다.
“엄마보다 먼저 가는 거야?”
아이가 “내가 1등이야!”라고 외칠 땐 이렇게 말해준다.
“우와~ 엄마랑 끝까지 달렸어. 멋진걸!”
사소한 말 하나라도 신중히 골라 전하고 싶다.
그 말들이 스며들어 아이의 마음과 삶이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자라나길 바란다.
오늘도 나는 조금 어리숙하지만, 계속 노력하고 있다.
작은 빛이 되어 남은 한마디
❝ 느린 엄마의 걸음은 아이에게 더 단단한 사랑으로 스며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