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 그리고 하얀 도화지

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by 가을꽃나무

이사를 마친 날, 눈물이 마를 틈이 없었다.
그 집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끝없는 시험 같았다.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짐 속에도, 마음속에도 그곳의 잔해가 남아 있었다.


냉장고는 크기가 맞지 않아 친정집으로 보내기로 했지만
그곳에서도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다시 내려 새집으로 옮겼다.
이사란 게 이렇게나 고단한 일이었나 싶었다.


그 와중에 솔이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은 물건이 있어서 가져다줄게. 주소 알려줘.”
하루 종일 울며 버틴 끝이라 기운이 바닥이었다.
그냥 알려줬다.
그리고 가져온 것은 쓸모없는 것들이었고,
다시 들고 와 쌓아 두고 갔다.


집은 다시 짐으로 가득 찼다.
새집인데, 마음은 하나도 새롭지 않았다.


이삿짐을 옮기던 바로 그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예전에 장학금 신청할 때 함께 신청해 둔 근로장학생 담당자였다.
하지만 사업자 형태가 유지 중이라
“현재는 안 될 것 같네요.”라는 안내를 받았다.


실망스러웠지만, 그게 다인 줄 알았다.

며칠 뒤, 다시 그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때 통화가 기억에 남아서 다시 연락드렸어요.”
그 한마디가 이상할 만큼 고마웠다.
일이 가능할 것 같아 연락 주셨던 거라
나는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솔이 등원과 하원 사이의 시간대,
일을 찾기 쉽지 않았기에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은 절묘한 타이밍의 선물 같았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속의 고요, 바람, 물소리, 새소리.
그런데 도서관에서도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고르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오래된 종이의 냄새.
그건 나에게 산의 고요와 같았다.
그 시간들이 나를 다시 살게 했다.


며칠이 지나도 집은 여전히 짐으로 가득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 집까지 창고가 되어버렸구나.’
버리고 오려던 지난 흔적들이
또다시 나를 따라왔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더 깊이 가라앉았다.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속을 뒤집었다.
‘민사소송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당신도 한번 얼마나 힘든지 느껴보라고
끝까지 가보려 했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며
태풍이 휘몰아치던 마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커다란 파도가 작은 물결로 변하듯,
분노는 서서히 흐려졌다.


그때서야 알았다.
그 감정에 붙잡힌 한,
나는 한 발짝도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스무 번째 상담을 마칠 때쯤,
나는 처음으로 ‘괜찮다’는 마음을 느꼈다.
정말 괜찮아지고 있었다.


나는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
그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
남들이 보면 멀쩡하지만
나에겐 미련 덩어리였다.
그걸 버릴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더 이상
솔이 아빠의 눈치를 볼 이유도,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마음이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이혼을 하고,
나의 상태를 인식하고,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고,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나는 나를 조금씩 회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내 아이가 전보다
더 반짝반짝하게 보인다는 것을.


이젠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걸음에 맞춰
나의 속도를 늦춘다.
자세를 낮추고,
가끔은 이렇게 묻는다.


“솔아, 엄마가 뽀뽀해도 될까?”
“솔아, 엄마가 안아도 돼?”


이런 질문이 내겐 작은 혁명이었다.


아이에게 ‘존중’을 가르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존중을 직접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통제 대신 ‘자유’를 선물하는 엄마가 되었다.


요즘 솔이는 자주 말한다.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입을 쭉 내밀며 뽀뽀를 한다.


“엄마 최고야.”
“엄마 잘했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안의 어린 나도 같이 위로받는 기분이다.


이제 나는
칭찬받는 엄마가 되었다.
드디어 환한 꽃이 피었다.
내 아이를 피워낸,
더없이 행복한 엄마로서.


이제야 진짜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 것 같다.
검은 안개를 지나,
나는 다시 하얀 도화지 위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오늘도,
솔이의 웃음 속에서
새 삶이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안다.
이건 끝이 아니라,
이젠 정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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