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이사를 결정했다.
계약 만료까지는 두 달이 남아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
아파트 계약서를 쓰고,
지금 집은 만료 일주일 전에 비우기로 했다.
짐을 싸며 남은 시간을 버텼다.
가게를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건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모든 걸 버리고 가고 싶었지만
미련은 질겼다.
큰 냉장고를 제외한 대부분의 짐들은 정리됐다.
하지만 손에 익은 작은 도구들은 도무지 놓기 힘들었다.
그 미련이 질기게 남아 있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다 보니 이사는 어느새 코앞이었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솔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면 늘 쓰러지듯 잠들었다.
어지럽고 메스꺼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끔은 친정엄마가 대신 솔이를 데려다줬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약만 처방받았다.
이런 몸으로 짐을 싸는 건 고역이었다.
건물주 이모님께 이사 이야기를 드린 건
두 달 전이었다.
그때는 “이 집이 빨리 안 나가면 어쩌나” 하시며
걱정하셨다.
그래서 부동산에 대신 내놓아드리겠다고 했다.
그 후로는 별말이 없으셨다.
가끔 마주치면
“이사 나가면 리모델링 부분 철거해야 될 텐데…”
정도였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이사 전날, 갑자기 말이 바뀌었다.
“철거를 해야 보증금을 줄 수 있어.”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삿짐은 아직도 절반도 싸지 못했는데,
보증금이 걸린 말 한마디에 숨이 막혔다.
리모델링은 허락받고 한 일이었다.
공사 기간 내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오히려 종종 들러서 공사 잘 되냐 물으셨다.
억울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아이 아빠한테 말씀하세요.”
그 말만 겨우 했다.
솔이 아빠는 펄쩍 뛰며 직접 통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시 걸려온 전화에는
더 어이없는 말이 담겨 있었다.
“허락한 적 없다는데?”
눈물이 터졌다.
내일이면 이사인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잔금을 치를 수도 없었다.
그보다 마음이 더 무너졌다.
그분은 믿을 수 있는 이웃이라 생각했었다.
내 사정을 조금은 털어놓았고,
그분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래서 더욱 서운했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보잘것없는 천만 원은, 내 이혼 위자료였다.
그런데 철거비는 800만 원이란다.
웃음이 났다.
그리고 바로 눈물이 따라왔다.
끝까지, 무언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밤새 울다가 날이 밝았다.
솔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자
이삿짐센터가 도착했다.
짐이 다 싸이지 않으면 추가 요금이 붙을 수도 있다 했다.
죄송하다고 하자 사장님은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그 한마디에 눈물이 또 찔끔 났다.
자잘한 짐을 모으고 있을 때
건물주 이모님이 다시 오셨다.
“솔이 엄마... 생각하면 안쓰러운데..
그래도 철거는 해야 보증금 줄 수 있어. 이해하지?”
나는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건 아이 아빠랑 상의하셔야 해요.”
그 말만 남겼다.
이모님이 돌아가자
결국 눈물이 터졌다.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놀라 물으셨다.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그냥…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
사정 이야기를 듣던 사장님은
대신 화를 내주셨다.
그게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다시 짐을 싸려는데
이번엔 삼성 서비스 기사님이 왔다.
사다리차도 곧 도착한다 했다.
솔이 아빠가 중고업체에 의뢰했다더니
막상 전화를 하니 “모르는 일”이라 했다.
또다시 허탈했다.
‘이젠 그 사람 도움을 받지 말았어야 했나.’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기분 좋게 새 출발하고 싶었다.
이사란 건,
무언가를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일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세상은 끝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제발,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아 주세요.”
그 바람은,
그날에도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