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의 자격, 다시 배우는 사회 』

나의 바람

by 가을꽃나무

다시 돌아가는 아이들


책도 글도 손에 잡히지 않던 하루였다.

무언가에 마음이 붙지 않았다.

그 이유는 대전 유성구 가정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보도 때문이었다.

아이를 믿고 맡긴 공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멍먹해졌다.


아이를 향한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반복된다.

83일 된 아기를 떨어뜨리고도 이틀이 지나서야 병원에 데려간 부모.

형의 다리 골절로 드러난 학대 의심 사례.

울고 잔다고 한 살배기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엄마.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뉴스를 보며 문득 솔이의 아기 때가 떠올랐다.

솔이가 기기 시작하고, 침대에서 두 번이나 떨어진 적이 있었다.

초보 엄마였던 나는 매번 아이를 품에 안고 울면서 응급실로 달려갔다.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 생각 하나에 온몸이 떨렸다.


그래서인지 이번 사건을 보며 마음이 더 복잡했다.

비슷한 시기의 아이가 그렇게 다쳤다는 소식 앞에서

나는 그저 분노만 할 수 없었다.

‘어쩌다 그들은 그렇게까지 되었을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솔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때렸다.

등짝과 엉덩이를.

그때 아이는 당황하며 놀란 두 눈이 커다랗게 흔들렸다.

곧 울음이 터졌고, 그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약을 꾸준히 먹기 시작했다.

예민한 날이면 스스로를 점검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혹시 빼먹은 약은 없는지 다시 확인한다.


그런데도 솔이는 감정이 아주 섬세한 아이다.

“이 놈 할 거야”라고 말만 해도

아니야” 하며 온몸을 떨곤 금세 울음을 터뜨린다.

그럴 때면 나도 함께 아파진다.

세 살의 그날, 내가 준 두려움이

아직도 아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아이의 문제는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기질, 부모의 요인, 부부의 관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둘러싼 상황적 요인이 얽혀 있다.

결국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 얽힘을 하나씩 풀어내는 일이다.


나는 결핍과 상처, 폭력의 대물림 속에서 자란 엄마였다.

내가 싫어했던 모습이 내 안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마주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부모교육과 심리공부를 시작했다.

그건 결국 나를 구하고, 아이를 지켜내는 길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노력조차 하지 않는 부모들이 존재한다.

아이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감정을 폭력으로 푸는 사람들.

그들이 아무 처벌 없이 다시 아이 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나는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법은 아직도 약하다.

아이의 생명보다 부모의 회복 가능성을 더 믿는다.

학대가 의심되어도,

분리조치가 끝나면 아이는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간다.

그게 지금의 현실이다.


나는 이제 생각한다.

아이를 지키기 위한 사회의 첫걸음은

사건 이후의 처벌이 아니라,

사건 이전의 예방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예방의 시작은

부모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부모의 자격, 다시 배우는 사회


나는 이 글이 비난이 아니라, 제안이 되길 바란다.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히 법이 약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분리조치, 처벌, 상담, 교육이 이루어져도

다시 같은 문제가 생긴다.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또 다치고,

우리는 같은 뉴스를 또 보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부모성찰 프로그램이 의무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생명을 이어가는 일이 아니라,

그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부모가 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하지만 ‘처음이라 몰랐다’는 말로

아이의 상처가 지워지진 않는다.

부모는 완벽할 수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돌아볼 준비는 해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결핍과 상처, 폭력 속에서 자라왔다.

그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용기를 내 그 기억을 직면했을 때,

나는 비로소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성찰 프로그램이란 바로 그런 과정이다.


이건 기술을 배우는 수업이 아니다.

아이를 훈육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과도 아니다.

이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왜 어떤 순간엔 두려움이 먼저 오는지를 알아차리는 시간이다.


의무화의 핵심은 통제에 있지 않다.

사회가 부모를 감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회복하기 위한 구조를 세우자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건 개인의 영역 아니냐”라고 말하겠지만,

이제는 개인의 영역으로 두기엔

너무 많은 아이들이 다치고 있다.


부모교육을 넘어, 부모성찰은

한 사회의 인식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아동학대 예방정책의 핵심은 ‘벌’이 아니라 ‘이해’여야 한다.

그 이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첫 제도가

바로 부모성찰 프로그램이다.


나는 바라고 있다.

출산이나 입양을 앞둔 예비 부모들이

의무적으로 심리진단과 자기 이해 프로그램을 받는 사회.

이미 부모가 된 사람들도

주기적으로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회.

그 시스템이 자리 잡기를.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을 잠시 맡는 일이다.

그 무게는 너무 크고, 너무 무겁다.

그러니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사회가 부모를 돕는 장치가 필요하다.


나는 믿고 있다.

부모가 바뀌면 아이가 바뀌고,

아이가 바뀌면 사회가 달라진다.

그 시작은,

부모가 자신을 마주 보는 순간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부모성찰 프로그램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어야 한다.

그건 통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이어야 한다.





작가노트


『착각하지 마, 함께 자랄 수 있어』의 글을 쓰며 부모교육과 상담 공부를 이어가던 중,

이 사회의 문제도 결국 개인의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걸 자주 느낀다.

누구나 부모가 될 수 있지만,

모든 부모가 준비된 건 아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야말로

아이와 사회를 함께 바꾸는 첫걸음이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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