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고민이다.
무얼 해야할지 심히 고민이다.
성의가 없으면 실망하고 센스가 없으면 더더욱 실망한다.
연인 관계가 아닌 결혼한 사이에 경제권마져 빼앗긴 이로써는 더더욱 답답하다.
나의 여가를 위해 비상금 주머니를 조금 찼지만 결국엔 그 비상금을 온전히 선물로 사다가 끝난다. 올해도 나머지 비상금이 크리스마스로 빠져나갈 기세다.
엇 그런데...
비상금으로 무엇을 살지도 고민이다. 이제까진 그래도 백화점에 가서 고르고 골라 하나씩 샀었는데, 아이가 둘 있다보니 옷이나 악세사리는 잘 착용하지 않는다. 꽃은 내가 봐도 실용성이 없다. 특히나 아이가 어린 집에서는 보관자체가 어렵다.
12월 24일 퇴근 시간이 다가 오고 있고, 선물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무얼 살까 고민하던 찰나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다. 유부남에게만 물어보았다.
" 현금. "
대부분 유부남들은 현금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카드.
'그래, 시간에 쫒겨 골라봐야 뭘 고르겠어. '
카카오톡으로 용돈을 쐈다. '캐묻지 않을 용돈.' 답변은 바로 왔다. ' 고마워. 그런데 괜찮은데... '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아무것도 못받을텐데.. 그것보단 낫지.
퇴근 길에 집 앞 문방구에 들려 크리스마스 카드와 반짝이 펜을 샀다. 대부분 어른스러운 카드들은 품절 됐고 캐릭터가 아지자기한 카드만 남아 있었다. ' 쓰는데 의의를 두자. '
문방구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글을 적어 내려갔다. 캐릭터가 엄청 크게 그려진 탓에 많이 적지 않아도 카드는 꽉 차보였다. 끝에는 ' 메리크리스마스 '
문방구에서 나와 집으로 가려는데 옆집 아이스크림 가게엔 사람들이 케잌을 사기 위해 줄섰다. 코로나라 다들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내겠구나. 다들 가족이랑 보내서 좋겠군. 나는 어제 미리 사놓았기 때문에 줄은 서지 않아도 된다. 패스.
집에 도착했다. 떡두껍이 같은 아들이 뛰어나오고 한명은 아내에 메달려 있다. 내가 사왔던 케잌은 벌써 몇조각을 먹었다. 로맨스가 사라져 다행이다 싶었다. 나만 둔감해지고 있는게 아니라 아내도 이벤트 데이에 둔감해져 가는구나. 신혼초기만해도 이 것 저 것 꾸미고 와인도 먹고 했었는데.. 시간 참 빠르다.
카드를 전해주었다. 몇자 적지 않았기에 금새 읽었다.
" 이건 카드가 아니라 불만사항을 적은거 같은데? "
그래도 웃으면서 읽는 걸 보니, 나쁘지는 않은가 보다.
코로나 때문인지 몰라도 내 인생에서 가장 크리스마스 답지 않은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있다. 내 선물은 아이를 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못샀다는 말에 더 크리스마스가 아닌 것 같다. 조금 서운했다. 하지만 뭐.. 육아는 쉽지 않기에 이해는 한다.
밖은 조용하고 집안은 크리스마스와 상관없이 시끄럽다.
무얼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피곤하다. 오늘 맥주한잔이라도 같이 마실 시간이 있을까?
" 아빠 ~! 기차 만들어줘. "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잘 몰라도, 육아는 지금부터 시작인거 같다.
" 알았어. 얼른 갈게. 메리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