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여동생 한명이 있다. 착하지만 포스가 있고 할말은 해야 하는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 방과 내 방은 마주보는 구조였다. 남매가 친하기 어렵다곤 하지만 우리 관계는 나름 괜찮았다. 정확히 말하면 들쭉날쭐한데 이 당시에는 괜찮았었다.
동생이 저녁에 통화를 하고 있다.
" 벌써? 벌써 선을 본다고? 나이가 몇갠데 선을 봐. 너희 엄마도 너무한다. 나는 생각 없고.. "
동생은 나보다 2살이 어렸고, 나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28살에 다니고 있었다. 여자는 군대라는 제도가 없으니 졸업은 예전에 했고 사회생활도 벌써 2년이나 했다.
동생이 통화를 어느정도 하더니 끊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열려있는 문틈사이로 말을 걸었다.
" 어이 동생님. 친구가 누구길래 벌써 결혼상대를 찾는다고 합디까? "
" 친한 앤데, 엄마도 알걸. 같이 예고나와서 대학도 같이 다녀. 착한데 키가 170이 넘고 여드름이 좀 있어. 너무 착해서 탈인 친구야. "
" 사진 줘 봐봐. 내가 구해줘 볼께. "
" 물어보고 줄게. "
잠시뒤 동생이 사진을 보여줬다. 음, 키가 커서 그런지 기린이 생각 났다. 만화 캐릭터같이 말똥말똥한 눈에 정말정말 순해보이는 친구, 내가 장담컨데 남자와 말 한마디 섞어보지 않았다.
" 얘,연애 안해봤지? "
" 그럴걸? 쑥맥이라 말 잘 못해. "
" 좋았어. 내가 접수 할게. 번호 줘. "
그렇게 받은 번호, 핸드폰에 꾸욱꾸욱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대학시절 나와 친하지만 나를 유독히 괴롭히던 친한 동기 형이 있었다. 나는 재수, 그 형은 삼수. 동기끼리 말을 놓던 시절은 우리 학번부터 없어졌다. 같은 학번인데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며 형과 아우의 선을 지켰다.
형은 군인 집안이었다. 형의 집은 부천 17사단 내에 있었다. 아버지께서 연대장이기에 사단 내에 집이 있었다. 오래되고 좋진 않았지만 정말 넓디 넓었다.
몇번 놀러가서 군인들과 축구도 하고 집 앞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정자에서 수박도 쪼개 먹었었다. 하지만 군인의 특성상 아버님은 몇년 뒤 다른 부대, 지방으로 발령이 나셨다.형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살곳을다시 구해야 했다. 다행이도 군인 가족이라는 혜택을 받아 보라매 쪽, 공군 기숙사에 머물게 되었다.
그 후 공군 기숙사도 몇번 놀러 갔었다. 일인실이 아닌 다인실의 기숙사라 걱정을 하긴 했지만, 룸메로 있던 친구가 너무 착해 눈치를 보지 않고 놀기도 하고 자기도 했다.
매번 학교 동기끼리 늦게까지 술을 마실 때면, 혼자 집에가기 싫은 형은내 뒷목 옷깃을 잡고는끌고 기숙사로 데려 왔다.
그 날도 고주망태가 되어 끌려 왔던 날이었다.
" 형, 이제 놔요. 다왔어요. 안가요 안가. 집에.. 오늘 뭐 할건데요. 그냥 잘거잖아요. "
" ㅋㅋㅋ 있어봐. 한잔 더 하자. 너 낯 안가리자나. 사람 몇명 더 부를께. "
" 누군데요? "
" 연애 한번도 못해본 애 있어. 자격증 공부하고 있는 앤데 착해. 답답하긴 해도 착해. "
기숙사 앞 포장마차에서 기다리는데, 어디서 많이 본듯한 애가 노란 군대 깔깔이를 걸치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왔다.
" 형, 형 룸메잖아요. 알죠.당연히. "
" 인사해. 앤 니코복코야. "
얼굴은 꾀 많이 마주쳤지만 정식으로 인사한건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얼굴 생김새 중 가장 기억에 남는건 코였는데,복스럽게 컸다. 진짜 컸다. 내 나름대로 별명을 니코복코라 지었다.
" 안녕하세요. 정식으로 인사 드리는건 처음입니다. "
" 아, 동갑이라고 들었어요. 말 놓으시죠. "
인사를 하곤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웃는 모습이 착했다. 특히 얘도 형에게 강압적으로 끌려다니는 애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동병상련을 느끼고 금새 친해졌다.
키는 170조금 넘었나? 몸이 다부졌다. 말에는 사투리가 뭍어났고 모든 동작을 천천히 조심스레 했다. 천성이 착한 아이였다. 다만 아쉬운 건 위트라곤 정말 없었다. 무슨 말만 하면 분위기가 싸해지게 만드는 그런 아이였다.
" 프랑스에서 라면은 못 먹는데, 왜 그런지 아나? "
" 왜? 라면을 안 좋아해서? "
" 불어써서. 불어서 못먹는다. 웃기제?.. "
"..... "
워낙 느릿느릿한 말투에 정곡을 찌르는듯한 포인트가 없다보니 정말 농담을 할 땐 심각하게 재미 없었다. 먹과 서예를 꺼내놓고 한복에 훈장모자를 쓰면 정말 잘 어울리는 아이 였다.
그 날 이후에도 만날 때마다 몇번의 개그를 준비해 왔으나 단언컨데 재밌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친해졌다. 중간 매개체인 형 없이도 자주 만났다. 특히 축구를 할때마다 서로가 서로를 불러 만났고, 운동을 같이 하다보니 쉽게 친해졌다.
우리는 자주보는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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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전화번호를 받은 뒤 몇 일이 지났다.
주말이었고 날씨가 좋았다. 니코복코에게 같이 축구하러 가자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 신호음이 가는 동안 소개팅이 생각났다. 쑥맥 둘을 붙인다면? 딱이겠군. 니코복코가 전화를 받자 바로 물었다.
" 오늘 축구는 당연히 하는거지?그리고 소개팅은 옵션으로 할래? "
" 에? 나 한번도 해본적 없는데? "
" 역시, 너한테 딱일거 같아. 결혼각이야 나 믿고 해봐."
" 무슨 결혼이꼬, 알았다. 사진 보고 결정할란다. "
" 오케이, 좀 있다가 만나서 얘기하자. "
축구를 한 날, 만나자 마자 사진을 보여줬고 번호도 넘겼다. 기린과 비슷한 키가 조금은 걱정 됐지만 서로 쑥맥이라 키를 볼 시간도 없겠다 싶었다. 아마 둘다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내겠지?
주말이 지났고, 소개팅을 했다 싶었다. 동생에게 물어보려고 했으나 여자에게 먼저 물어보는 건 실례라 생각되어 친구에게 물었다.
" 소개팅 어떻게 됐어? "
" 진짜 착하더라. 그 후 매일 만났다 안카나. 3일 째 되던 날 사겼다. 고맙데이.. "(내가 사투리를 잘 몰라.. 사투리 억양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
" 그럴줄 알았어. 잘 사겼으면 좋겠다.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친구는 노량진에서 유명한 자격증 강사가 되어 있었다. 돈을 삽으로 푸고 있다는 소리만 얼핏 들었다. 연애는 지속 중이었고 높낮이 없이 평탄하게 연애를 했다.
그 사이, 나도 연애를 했고 결혼을 위해 프로포즈를 했다. 바빠서 니코복코와는 서로 연락을 못했고, 청첩장을 돌릴때가 되어서야 기린과 니코복코에게 연락을 했다.
" 둘이 꼭 왔으면 좋겠어. "
" 뭐 해줄까? 우리 사귄것도 너 덕분인데.. 뭐 해줄 수 있는거 있으면 해줄게. "
" 아냐.. 어? 정말 이지? "
순간 이벤트가 떠올랐다. 재수씨가 졸업 후에 동화삽화작가로 일을 한다고 들었다. 나는 나와 아내가 만나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를 남겨두고 싶었다. 동화 작가는 내가 되고 나와 아내가 주인공, 삽화를 부탁하기로 마음 먹었다.
" 재수씨한테 부탁해도 돼? "
" 그림이가? 직접 물어보거래이. "
전화를 얼른 끊고 이내 재수씨게 전화를 걸었다.
" 저 기린아, 미안한데 부탁하나 해도 돼? "
" 뭐든 부탁하세요. 연애도 오빠덕에 한건데요. "
" 무리한 걸 수도 있는데.. "
" 괜찮아요. "
" 그림값은 내가 치룰테니깐 내가 글을 주면 삽화를 몇개 그려줄 수 있어? "
" 오빠, 그림값 생각보다 비싸요. 40cm×40cm 가 40만원 정도인데, 삽화 사려면 돈 많이 있어야 되요. 그러니깐 돈 줄생각 마시고 축의금이라 생각하고 그려줄게요. "
" 진짜? "
그 날.. 나는 아내와 나의 스토리를 동화로 작성했다. 물론 삽화도 받아 너무 감사히 책으로도 만들었다. 나중에 미대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쉽지 않은 귀한 선물이라고 했다. 너무 고마웠다. 내 그림만 그려주고 헤어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나와 아내가 결혼 하는 해에 그들도 백년가약을 맺었다.
지금도 너무나 감사히 동화책을 간간히 꺼내 읽는다.
그 둘은?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 다만 걱정이 되는건.. 무슨 재미로 살고 있을지 걱정이다. 동화책 삽화를 맡기게 되면서 재수씨와도 얘기할 시간이 많았는데 솔직 담백 그자체였다. 몇번 대화에 정적이 흐르기에 농담도 던져봤는데,
" 아아, 재밌네요. "
무미 건조하게 미소를 띄고는 다시 동화삽화를 그렸었다.
그들의 아이들은.. 정막한 공기를 어떻게 버텨나갈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잘 살겠지? ㅎ
(아래 사진은 둘이 고른 커플 기념 컵이다. 어쩜 저런 표정을 고르는지 ㅎ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