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도서관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려면 모름지기 동네 슈퍼와 도서관 발도장 찍기가 첫 단계니까. 2층 출입구를 향해 오르다 벽면을 힐끗 보니 바닥에 책 한 무더기 쌓아두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벽돌책 더미 위로 촛불까지 밝히고 진지하게 책을 응시하고 있는 검냥이라니. 이 동네, 어째 낙서에서부터 품격이 느껴진다. 도서관을 들어서기도 전, 이미 양서 한 권을 독파한 듯 마음이 풍족해진 것은 오롯이 고양이 낙서범 덕분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동네 초딩의 패기 넘치는 장난쯤으로 치부했던 낙서를 다시 접한 건 이틀 뒤였다. 지도에서 슈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처음 들어선 으슥한 골목. 영국에서 제법 안전한 곳으로 알려진 마을에 살지만 그래도 성인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에는 턱없이 좁고도 긴 골목을 지나자니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골목 중간쯤 오니 담장에 낯익은 고양이가 친구 둘을 대동한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독서냥, 또 너구나!
동네 일진이 모냥 빠지게 고양이 앞에서 행인 검문검색할 일은 없을 것 같아 순간 안도했다. 다신 들어서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골목에 빛이 드리운다.
이후 동네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고양이 친구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책 대신 보랏빛 팬지꽃을 들고 마중 나와 있었고, 파란 풍선을 두고 친구와 아웅다웅거리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매일 나서는 산책길이 어느새 포켓몬고를 하듯 검냥이를 찾아 나서는 퀘스트로 변해있었다. 집에 오면 구글맵을 켜고 고양이 도장깨기 지점들을 표시하며 낙서범의 주거지는 어디일까, 궁금해하기도 했다.
방심하다 뒤늦게 고양이를 발견한 날도 있었다. 매일 오가는 슈퍼 앞. 주차장 지붕 위에 보호색을 띤 채 나를 내려다보는 검냥이는 뭐하다 이제 알아봤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깨알 같은 입체 눈깔 디테일이라니! 큭큭,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언제 어디서든 날 지켜보는 수호냥이 있으니 이방인의 동네 탐험에 유쾌한 탄력이 붙는다.
바람이 거세지면서 우리의 검냥이도 겨울옷을 단다이 꺼내 입기 시작했다. 보랏빛으로 깔맞춤 한 니트 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 길목을 지키기도 하고, 생크림 잔뜩 얹은 카페 모카 한잔에 맵싸한 추위를 견뎌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산타냥이로 변신하기도 했는데, 연말연시에 이어진 송년회 때문인지 눈이 풀린 채 바닥에 웅크린 모습이었다. 영국 냥이들은 뭘로 해장할까? 뜬금없는 상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쩐지 즐겁고도 든든했다.
동네 갤러리 옆에는 밥 로스 아저씨의 환생 인양 어때요, 참 쉽죠?를 눈빛으로 쏘아대는 냥이도 발견할 수 있었고, 뱅크시와 견줄만한 스웩 넘치는 그래피티 작품도 있었다. 이쯤 되니 호기심을 넘어 점차 팬심이 용솟음친다.
2대째 동네 토박이라는 집주인에게도, 친척들까지 이 동네에 모여산다는 앞집 이웃에게도 고양이 연쇄낙서범의 정체를 묻고 다닌 건 이때부터였다. 설마 힙스터냥 옆에 청바지 차림으로 앉아있는 모습이 작가의 자화상은 아니겠지? 궁금증은 증폭되고 팬심은 익어만 갔다. 대체 누구세요, 넌?
남편에게 그동안 모아 온 고양이 낙서 컬렉션을 자랑스레 보여주니 자신도 한때 영국 전역에 출몰한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 그래피티에 꽂혔었노라 고백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니, 왕년에 오락실 사장님께 용돈깨나 상납했다는 아동이라면 다 알만한 게임 아닌가? 겜알못인 나조차도 흥분시키는 추억의 캐릭터 등장에 남편과 랜선으로나마 스페이스 인베이더 도장깨기에 나섰다.
프랑스의 길거리 아티스트 인베이더(Invader)의 작품인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특이하게도 스프레이 페인트가 아닌 타일을 조각조각 붙인 모자이크 형태로 전 세계에 불시착했다. 작가의 고국인 프랑스는 물론 33개국에 4천 개가 넘는 작품을 착륙시켰는데, 우리나라에는 노잼 도시로 귀여운 명성을 떨치고 있는 대전에 나타났다. 칼국수 뚝딱 비우고 성심당 돌기 전 배 꺼뜨릴 코스로 제격이지 싶다.
미술관에 곱게 전시되어 있는 예술품을 해방시키기 위해 스페이스 인베이더들을 거리 곳곳에 풀어놓았다는 작가. 자신의 작품을 즐기는 대중들과 자연스럽게 스미기 위해 전시장에서는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하고, 본명이 아닌 활동명 인베이더를 사용하는 그에게서 자유를 향한 갈망이 느껴진다.
미술관이라는 엄숙한 공간을 탈출함은 물론, 디지털 공간에 박제되어있는 게임 캐릭터를 현실 세계로 소환한 그의 작품들은 일상을 탈피해 오히려 메타버스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그가 보낸 외계인들은 우리의 획일화된 공간 개념을 공격하고, 딱딱하게 굳어진 고정관념을 신나게 파괴한다. 코로나로 인해 락다운을 겪었던 이라면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 도심 곳곳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들에게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리 동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앙증맞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포스터 아래 다 잘될 거야라는 팻말을 수줍게 들고서. 코로나로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어도 낯선 도시의 누군가가 건네준 그 한마디가 이방인의 마음을 이어준다. 반항기 가득한 십 대들의 분노 표출 수단이라고만 여겼던 그래피티가 그 어떤 명작 못지않게 가슴에 스며든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