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과 비움 사이의 살림을 해나가는 아마추어 살림가.
지난 몇 년간 살림에 도움이 되고자 읽은 도서들을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 살림의 트렌드는 단연 "미니멀리즘"이었다. "비움의 미학"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끝은 "무소유"가 되었다. 단순히 정리 정돈을 하는 것을 떠나 필요하다 생각한 것 중에서의 불필요한 것마저 가려내어 불편함을 편안함으로 만들어내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새 바람은 꽤나 획기적인 혁명이었다. 모두가 솔깃해하지만 큰 용기가 필요한 그러한 일들이었다. 나 역시 미니멀리즘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나와 같은 평범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미니멀리즘이 솔깃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바로 소비를 지양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늘 지출을 줄여야 하는 압박감을 가진 나와 같은 주부들에겐 아예 살림살이나 물건들을 사들이지 않음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란, 두 마리 토끼 잡기와 같은 것이니 말이다. 더구나 쓰레기에 관련한 수많은 문제들이 대두되는 오늘날, 탄소 줄이기나 쓰레기 배출 줄이기 등등과 맞아떨어지면서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도 유기적인 관련이 있으니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유행을 넘어 꽤나 큰 "운동"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꽉 꽉 들어찬 물건들 사이로 잠시 고민을 하다가 흐지부지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여전히 집안 곳곳을 채우기 위해 온라인 세상의 세일 코너를 서성이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미니멀리즘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있고 삶 속에서 그 효과가 증명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미니멀리즘이 나와 지구 환경에 좋다는 것을 아는데도 그동안 많은 시간을 들여 고뇌하며 들였던(최저가 검색 등) 많은 물건들을 비우는 데에 용기가 나지 않아 미니멀리즘이란 그 다섯 글자가 마음의 짐처럼 남아있는 사람도 존재한다. 물건으로 집을 아늑하게 채우길 원하고 물건이 주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에 괜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거대한 혁명을 뒤엎듯 "맥시멀리즘"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우리 사회가 주었던 쓸데없는 죄책감을 벗어던지고 본인의 행복을 채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미니멀이냐 맥시멀이냐, 이것은 기호성의 문제이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이 시대의 궁극의 신념은 아니다. 그렇기에 용기가 부족한 우리 모두는 비움과 채움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즐겨보는 인스타그램 속 세상은 비우라고도 하고 채우라고도 한다. 비우면 비우는 대로 매력 있고, 채우면 채우는 대로 멋지다. 내가 어느 쪽이든 나 자신의 선택이고 또한 모든 것이 의미 있다. 나답게 살면 되는 것인데 굳이 무엇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사실 우린 지금 위기 상황이다. 작년에 미국으로 이사를 오면서 값나가는 가구 및 옷가지 등등 많은 짐들을 가지고 왔지만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그간 한국 집에서의 작았던 살림을 몇 배나 큰 이 미국 집에 맞추느라고 많은 물건을 들였다. 층이 나뉘어 계단이 있고 천장이 높은 미국 집은 비어있는 것이 영 어울리지 않았다. 썰렁하고 곧 떠날 사람들의 집처럼 아늑함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그리 느꼈고 서서히 빈 곳을 채워나갔다. 처음엔 가구들 대부분을 중고로 들였지만 너무 낡거나 살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가구는 이내 치워지고 새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들은 베이스먼트에 방치되어있고 이제는 온 집 곳곳에 물건이 없는 곳이 없다. 채워지고 나니 비로소 비우고 싶어졌다. 사람의 마음이란 대체 왜 이모양인 걸까?
물론 우리의 재정은 바닥이 났다. 이 집에 물건을 채우느라 장보기 비용을 줄이게 생겼다. 차도 3대가 되었다. 우리가 차가 꼭 3대가 필요했었나? 이 쓸데없는 책상은 왜 얻어왔지? 세상에 이 커다랗고 무거운 소파는 대체 왜 우리에게 버린 거람? 당신은 그걸 또 얻어왔어? 대단하다 이 무거운걸. 짜증들과 갖은 스트레스들이 우리 삶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식구가 많다는 핑계로 대형마트에서 사 와 쌓아 둔 음식들, 방치된 낡은 가구들, 빈 벽 없이 들어찬 물건들.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의 이 가득 찬 집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 나는 그럼 미니멀리스트 쪽인 걸까? 아니면 이렇게 가득해질 때까지 물건을 쌓아둔 맥시멀 리스트 쪽일까?
나는 아직도 정하질 못하고 있다. 비울 것인지, 채울 것인지. 항상 꽉 차 있는 것이 좋았던 나다. 살림을 하면서 적재적소 필요한 물품을 들이며 그 편리함에 행복을 느꼈지만 한 편으로 그득그득 물건이 들어차 있는 것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내가 비울 수 있을까? 비우고 나면 또 채우고 싶진 않을까? 비움이라는 행위 자체가 내 삶에 의미가 있을까? 아직 두 아이들이 한창 자라고 있는데 비우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맞는 것일까?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한다. 어느 곳에 나의 행복을 두든 나는 아마 행복할 것이다. 나는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우면 비우는 대로 채우면 채우는 대로의 삶이 다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삶에 문제 될 것이 없다면 말이다. 오직 한 가지의 신념만으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이다. 삶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이분법 적 사고로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은 어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 현실이었다. 살아보니 현실 세계에선 타협이란 것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타협을 하긴 하더라도 굳이 어느 한쪽을 따라야 할 필요를 느낀다면, 나는 60 : 40 정도의 비율로 미니멀리즘 쪽으로 손을 들어보고자 한다. 하여 지금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원하는 것을 적어보기로 했다.
"나는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을 원한다."
"나는 지출을 부르는 소비를 하지 않겠다."
"미니멀리즘 지향으로 인해 함부로 물건을 처분하지 않겠다."
단호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아깝게 비우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허용 가능한 범위까지 해 보는 것이다. 나는 오늘부터 찬찬히 집안 구석구석을 뒤집어엎으며 이 모든 부분들을 생각해볼 예정이다. 어느 것을 비울 것인지, 어디를 채울 것인지, 정리와 수납으로 커버할 것인지, 아님 그냥 이대로 살든지. 무어든 맘껏 즐기며 신명 나게 해 볼 작정이다. 이 복잡하고 먼지 풀풀 날리는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