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의 역사

나는 왜 물건에 열광하는가.

by 오해이

"관심사"


이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린 스트레스가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혼자 은밀히 즐길 수 있는 것들도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은밀히 즐기는 것을 타자에게 공유함으로 인해 공감을 받아내는 것 또한 우리네 관심사가 되었다. 캠핑을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낚시를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우린 우리의 관심사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많은 것들을 선택하여 살아나간다. 심지어 육아를 하는 나에게도 절대적으로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이 생겨났는데, 날이 추워지면 보이차를 마신다거나, 기분이 그저 그런 날엔 커피 원두를 손수 갈아 푸어 오버 방식으로 즐겨본다거나, 저녁에 매콤한 떡볶이에 맥주 한 잔을 즐기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그 "절대적"인 즐거움을 즐기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 바로 "물건"이다. 우리는 "물건"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인 셈이다. 캠핑족들에게 필요한 캠핑용품들,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도구들, 보이차 다구세트... 혼자 취미생활을 하는데도 우리가 가져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어려운 세상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전보다 먹고살기 수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자라올 때보다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사를 하면 전화기 한대와 수도, 가스, 전기만 들어오면 되었던 시대에서 인터넷, 와이파이가 추가적으로 늘어났고, 인터넷의 파급력은 매우 강해서 시시때때로 물건을 소개하고 구매욕구를 조장하는 그러한 시대가 되었다.


우리 어머니의 세대를 보면 이러한 것들은 스스로 진화되어 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새마을 운동 이후에 태어나 아주 꼬맹이 때는 88 올림픽이 개최되었고 학교에 들어간 이후엔 IMF를 겪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금을 모으고 학교에서는 수요일마다 폐품을 모았다. "아나바다 운동"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때의 물건이란 그런 것이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 어머님들은 그렇게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쓰면서 평안함을 되찾아갔다. 평안을 되찾은 이후부터 다시 시작된 것은 "수집"이었다. 살만해질 무렵부터 엄마들은 물건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고급 접시 세트나 새로 나온 신박한 녹즙기, 아버지는 술을 모으시고 둘 곳이 없어서 "양주장"이라는 쇼케이스를 들이셨다. 자주 듣지 않아도 집에 멋진 전축을 들이고, 마사지 의자를 들이고, 고급 물소가죽 소파를 들였다. 그 당시 고급 물건으로 채워진 집들은 곧 "살만한 집"이었다. 손님이 오시면 멋진 수집품에 찬사를 보내고 그로 인해 어깨가 으쓱해지는 우리네 부모님들이 계셨다. 우리는 그렇게 어려움 가운데 살아남았다. 그 덕분에 우리 세대는 현재 어렵다 힘들다 하면서도 모든 걸 누리며 살고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흰 봉투에 담긴 만 원짜리들을 모아 나는 엠피쓰리를 샀다. 처음 해본 일이 힘들었지만 소비로 인해, 채움으로 인해 나는 두고두고 정말 행복하였다. 나는 안다. 우리 사회는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사회다. 집이 얼마나 넓은지, 넓은 집에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있는지, 명품백은 몇 개인지, 예물로 받은 다이아반지는 몇 캐럿인지. 크고 좋은 것, 가득 채워진 것이 그 사람의 수준을 대변하는 사회다. 아주 예전부터 곳간을 채우고 광에서 인심 난다는 이야기들을 해온 것을 보면 "채움의 역사"는 수백 년 전부터, 아니 어쩌면 저 먼 시대부터 우리에게 고스란히 내려온 본능적인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채움"은 단연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니멀리즘"에 매료되는 이유는 어찌 보면 상당히 철학적인 이유이다. 채움은 유한하지 않다는 것을 익히 보아 알아왔기에.


우리는, 아니 "나"는 물건에 열광해왔다. 아직도 예쁘고 감각적인 쓸모없는 것들에 열광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고 새로운 것은 너무 예쁘다. 물건은 쌓여가고 마음속에 짐도 늘어간다. 나의 마음은 병들어 간다.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채움으로 즐거움을 느꼈던, 좋은 물건들을 가짐으로 어깨가 으쓱하였던 경험들이 쌓여 사회가 원하는 대로, 남이 보기 좋은 대로 나를 맞춰가고 있었다면 나는 분명 잘못된 것이 확실하니까. 사회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들이 참 많다. 이 사회야말로 궁극의 "맥시멀 리스트"인 듯하다. 나의 포지션에 따른 지켜야 할 것들, 가져야 할 것들이 정말로 참말로 많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나의 나의 영역을 소극적으로나마 지켜나가고 싶을 뿐이다. 발버둥 치며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트렌디하고 완벽하진 않아도 나의 공간, 나의 이 앉은자리는 독특했으면 좋겠다. 나의 색깔이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다 가진 것 한 두 개 가지면서도 나의 색깔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사회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따라갈 수 없다면 나는 나의 길을 잘 구축해서 조금은 독단적으로 걷길 원한다. 하여 나는 미니멀리스트도 맥시멀 리스트도 되지 않겠다. 채움의 역사를 경험한 한 사람으로, 혹은 조금은 더 건강하고 멀끔해지길 원하는 한 사람으로 나는 이곳에 적당하게 타협한 매력 있는, 심지 굳은 사람으로 남길 원한다. 나의 서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을 때가 시작 점일 테니까. 방법적인 것을 함께 논해보자. 마음 씀에 관한 것을 함께 고민해보자.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 0의 지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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