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거리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당신에겐 어느 만큼의 감수성이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충분히 오글거릴 만큼"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고, 하늘, 바람, 별, 구름 이런 것들, 웃음소리, 휘파람 소리 모든 게 다 삶의 기쁨이고 아름다움이다. 사람들에게 이런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을 정도다. 누군가가 이 마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었는데, 바로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라는 문장이다. -하오 체도 너무너무 매력적이다. -하오 체를 쓰는 시절엔 분명 타자에 대한 존중과 예의란 것이 공존하던 시대였을 것이다. 높임말도 낮춤말도 아닌 그런 말이 좋았다. 허나 이처럼 사람 그 자체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엔 돈이 들지 않지만,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의 중심에는 재화와 물질이 필수적으로 존재한다.
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몇 개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나의 공간이다. 인스타그램 속 세상은 정말 아름답기만 했다. 어쩌면 그리도 멋진 감각을 지닌 이들이 많은지, 사진 한 장에 그 사람의 모든 히스토리가 보일 정도였다. 멋진 사진을 보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싶고, 이야기가 매력적이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나도 한 번 저런 사람이 되어볼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마음 표면으로 올라왔다. 나도 아이를 키우며 육아가 가장 중요했을 때는 아이들 이야기만 올렸다. 그리고 육아가 힘에 부쳐 혼자 슬쩍 센치해진 날에는 같이 공감할 사람을 찾기 위해 와인 사진도 올리고 그랬다. 지금은 주로 살림살이를 올린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만든 음식, 내가 꾸민 공간, 내가 정리한 내 집의 한 부분... 그러다보니 인스타그램 계정도 몇 개가 되었다. 우리집에 물건이 많아진 이유가 이것인걸까? 이렇게 나는 타인에게 보여지기위한 살림을하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은 올해로 둘 다 초등학생이 됐다. 2년 넘게 기러기 생활을 하다가, 코로나가 막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을 때 기다리던 영주권이 나와서 아주 좋은 타이밍에 미국에 왔고 그 전후로 약 2년정도를 유치원에 보내지않고 아이들과 내내 함께였는데 지난 9월부터 둘 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씩 하루에 몇시간 정도의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얼마나 그 시간 동안 자유로운지 정말이지 울뻔했다. 아이들이 집을 비우자 집이 정돈되고 말끔해지기 시작했고, 그 무렵 나는 집을 좀 더 멋지게 꾸미고 싶었다. 낡은 가구들을 처분하고 새 가구를 들이고 구조도 좀 바꾸고 싶었다. 하여 처음엔 쇼핑을 갔다. 징징대는 애들 없이 혼자 주어진 시간 동안 맘껏 둘러보면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사 내려간 쇼핑 리스트들은 이러하다.
"의자"
"전골냄비"
"플렉서블 한 뒤집개"
"두꺼운 유리 맥주잔"
"빈티지 접시"
"화분"
나는 확실하게 살림하는 여자였다. 나는 나를 위해 돈 쓰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등허리가 아파도 마사지 한 번 받지 않았다. 미용실은 거의 1년에 한 번, 파마는 2년에 한 번 정도 했다. 가방은 에코백이 편하고 좋았다. 액세서리는 사치품이라서 싫었다. 이러한 저러한 돈들을 아껴서(아꼈다고 생각한) 냄비와 뒤집개를 샀다고 생각하니 엄청 웃겼다. 게다가 남편한테 싫은 소리까지 들었다.
"냄비가 집에 많은데 또 샀어? 뒤집개는 나무로 된 게 좋은데 왜 이런 걸..."
이러한 일들이 자꾸만 반복되다 보니 이내 싫증이 났다.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내가 나를 위해 샀어? 다 애들이랑 당신 맛난 거 해주려고 샀지. 나를 위해 산 게 있으면 하나라도 말해봐! 라고 외치고 싶지만 사실 나는 안다. 이 모든 게 전부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나의 욕심은 내가 봐도 너무 없어 보이고 모양 빠지는 일이었다. 아 난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우리 가정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정이다. 외벌이로 아이 둘을 기르는 집. 소비와 지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그런 집. 항상 바쁜 남편 뒤에 홀로 살림을 꾸려나가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돈을 쓰는 입장에 서있는 나의 자리는 그리 편안한 자리가 못됐다. 늘 남편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 누구보다 쓸데없는 지출을 싫어하는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 잔소리를 해댔다. 나는 아주 지겨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움"을 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매일 아마존에 들어가서 세일 품목을 체크하고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싼 값에 사서 창고에 쌓아두었다. 이게 문제라는 것을 이제야 느꼈다는 게 문제다. 남편은 이미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에 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계속 나를 "돈 쓰는 여자"로 보았고 나는 남편을 "쫌팽이"로 보았다. 우린 하루하루 점점 예민해져 갔고 어느 날부터는 서로에게 감흥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물건들을 채움으로 생겨났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이 상황이 우습고 나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나가며 나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현금지출"이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부터 짚어보니 나는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한다. 나오는 대사들이 아름답고 적나라한 애정신이 없어서 좋고 흔한 키스신 하나 나오지 않는데도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 나오는 "김희성"이라는 사내의 대사가 내 마음에 돌을 던졌는데 그것이 바로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들이구려.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바람... 그러한 이유로 그이들과 한 패로 묶인다면 영광이오."라는 대사였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참을 수 없이 오글거리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다. 정말 이렇게까지 오글거릴 수가 없는데 얼마나 내게 그 대사가 좋았으면 대강 외우기까지 했을까. 오글거림 안에 중심과 메시지가 있는 것이 참 좋다. 낯간지러운 것들로부터 너무나 멀어진 세상이다. 낯간지럽고 오글거리는 마음 한 페이지만 있다면 살아가기가 좀 덜 퍽퍽할 텐데. 아무튼 극 중 김희성이라는 사람은 조선에서 왕 다음으로 부자라 할 수 있는 집안의 삼대독자다. 물건에 대한, 돈에 대한 아무런 고민과 걱정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는 쉬이 이해가 가는 대사다. 이 대사는 여러 번 그 사내의 입에서 나온다. 이 사람의 가치관인 셈이다. 돈이 많아 물건에 대한 아쉬움이 없으니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지. 나는 돈이 늘 부족하여 아름답고 쓸모 있는 게 좋은데. 거기에 가격까지 싸다면 더 좋고.
인생은 드라마가 아닌데 나는 드라마처럼 살고 싶었나 보다. 그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우아한 단어들이 내 삶에 적용되자마자 되게 싸구려로 변한다.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해서 아름답고 쓸모 있는 것을 사고, 한 달만 지나도 그것은 결국 쓸모없는, 다시 말해 없어도 살 수 있는 유행에 지나지 않는 물건들이었던 것임을 깨닫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렇게 하나둘 물건이 쌓여나가는 우리 집. 염증을 느끼면서도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보면 가지고 싶은 여자의 마음. 나는 중심이란 게 하나도 없이 바람에 나부끼는 돛단배처럼 위험하고 쓸쓸한 항해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래서 나는 현금지출이라는 방법과 동시에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로 나만의 색깔을 담은 살림을 해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더는 위험하고 쓸쓸한 항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속 많은 집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감각이 전문가 수준들이다. 그런데 내가 팔로우한 사람들의 집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전부 "새 것"이다. 새로이 이사를 하였거나, 새롭게 리노베이션을 한 집. 새로운 물건, 유행하는 물건들로 채워진 그들의 집은 왜인지 전부 비슷하게 보인다. 정갈하고 깔끔하고 적재적소 조화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이 집이 저 집인지, 저 집이 이 집인지 내 눈에는 다 같은 집, 같은 공간으로 보인다. 오래된 것들로 주인의 색깔을 나타내는 그런 집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런 것에 열광하는 이들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접한 기사에서 "무과수"라는 젊은 여성의 집을 보게 되었는데 나는 참 그 여성의 집이 마음에 들었다. 널찍하고 고운 새 아파트에 새로운 인테리어에 새로운 가구들로 꾸며진 완벽한 집들보다 이상하게도 더 애정이 갔다. 집에서 느껴지는 본인의 색깔이 확고하고, 조금 낡은듯한, 정리되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어쩌면 내가 추구해온 그 이상의 것들이 실현된 느낌이랄까.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해왔지만 결국엔 나도 너무나 완벽한 것들로 가득 찬 집으로 인해 싫증을 느껴왔던 모양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나답게 이 살림을 꾸려나갈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명한 소비와 지출로. 트렌디함과 혹은 낡고 오래된 것들이 한 데로 묶여 보면 볼수록 좋아 보이는 그런 공간, 그런 살림들로 내 집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인스타그램 공구로 남들과 똑같은 물건을 사지 않고 나 자신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을 알아가고 구별해 나갈 수 있는 눈을 기르려면 나는 더 공부해야만 했다. 나는 더욱더 눈이 빠지게 인스타와 블로그를 뒤지고, 책을 사보았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씩 만족스러워지고 있다.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바람... "
나는 이런 것들로 내 공간을 채우고 싶다. 물건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