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들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일

by 오해이

굳이 물건을 버려가며 미니멀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더 이상 집에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으므로 나는 그 이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으로 어떻게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 모든 과정이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 즉,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삶의 기준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관한 문제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순히 필요 없는 지출을 멈추고 집 안 물건들이 늘어나는 것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남보기 좋아 보일 것"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물건으로 집을 꾸미고 나를 보기 좋게 꾸미기 위해 수없이 해 온 거짓말 (이것은 단순히 나의 만족만을 위한 것이다라는) 들이 먼저 떠올랐다. 무언가를 "꾸민다"라는 말을 찾아보면,


꾸미다


- 모양이 나게 매만져 차리거나 손질하다.

- 거짓이나 없는 것을 사실인 것처럼 지어내다.

- 바느질을 하여 만들다.

유의어 > 가장하다 / 날조하다/ 공작하다



모양이 나게 매만지고 차리거나 손질하는 것 이외에 "거짓이나 없는 것을 사실인 것처럼 지어내다."라는 뜻이 있다. 좋아 보이는 것에는 분명 그림자가 존재한다. 누군가의 SNS에 올라오는 멋진 사진의 이면에는 숨겨진 것들이 있다. 스스로 만족할만한 사진 한 컷을 얻기 위한 어떤 이의 무수한 시간과 수많은 고뇌와, 찰나를 위해 참아낸 여러 숨들이 깃들어있을 것이다. 우리가 집을, 혹은 나 자신을 "꾸미는 일" 은 지금의 현실보다 훨씬 더 좋아 보이기 위한 노력과 스스로가 간절히 바라는 모양을 억지로 흉내 냄의 콜라보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내가 나로서 행복하려면 겉모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사실 그 말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모양새가 좋은 것들에 끌리는 사람이다.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이 좋고, 촌스럽지 않은 것이 좋다. 결혼 전 한참 나를 꾸미고 다닐 20대의 어느 날, 차림새가 맘에 들지 않는 날에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지만, 반대로 나의 착장이 맘에 들어 보기에 퍽 좋아 보이는 날에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자신감이 생기고 출근하는 발걸음도 가벼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화장품과 옷들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며 포지션이 바뀌고 살림이 직업인 집사람이 되다 보니 그것의 영역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집에 손님이 드나들고 나의 집의 모습이 나와 나의 살림을 대변하는 것이 되고 보니 일관성 없고 엉망으로 사는 모양새보다는 손질되고 매만져진, 보기 좋은 것들이 나의 만족으로 다가왔다. 하여 또다시 많은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가 없었다. 어떠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나는 꾸준히 많은 것들을 샀다. 집안 분위기에 어우러지지 않거나 비어 보이는 것을 허용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내 살림들이 단정하여 보기 좋아 보이는 순간이 있었을 텐데 딱 거기까지가 나의 만족인 것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나의 만족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스타에 남길 사진을 찍기 위해" 들였던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집안 곳곳에 들어차 있는 물건들을 보며 어느 날 나는 괜히 한숨이 나왔다. '아. 나는 나의 만족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문제였구나. 남에게 어찌 보일까 상관하지 않고 단순히 나만의 만족을 위한 일로 그쳤어야 했구나.' 다시 한번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 놓여있는 쓸데없는 장식품들, 먼지가 뽀얗게 쌓여가는 보기 좋은 물건들이 짐짝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옷 입기를 좋아하여 유행하는 아이템들을 사서 모으면 금방 시들해졌다. 가령,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통이 널따란 바지나, 조금 불편하지만 보기에 좋은 옷들은 결국 나의 "보관 박스"로 들어가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청바지 몇 벌과 흰색 반팔 티셔츠, 후디와 나이키 운동복 바지 몇 벌이 다였다. 사실 도심이 아닌 미국 어딘가에 살다 보면 옷차림은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동복차림이고 다소 간결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다닌다. 과하게 꾸민 사람들보단 편하게 다니는 사람들이 더 좋아 보이게 되는 순간이 온다. 처음 미국에 와서 세일 가격이 꽤나 좋아 이런저런 물건들을 샀다. 살림살이는 두고두고 잘 쓰고 있는데 (냄비나 그릇, 주방용품들) 세일한다고 산 옷들은 생각보다 많이 입게 되지 않았다. 결국 난 후디 몇 벌이랑 운동복 바지 두어 벌로 일 년을 지낸다. 그런데 이게 너무 좋다. 뭐랄까, 약간의 자유랄까. 맞다. 나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느꼈다. 대부분의 옷들을 처분하고 왔는데도 코트며 바지며 종류별로 너무 많았다. 아마도 이 집에서 이사를 가기 전까진 크게 뒤집어엎어 정리하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한 번 나의 상자들을 열게 되면 나는 가차 없이 버릴 생각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살이 찌기 전에 입었던 작아져 불편한 옷들이 대부분이니 쉬울듯하다) 미니멀리스트들이 물건을 버리며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자유가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아직까지도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처분하기란 참 쉽지가 않다. 앞으로의 숙제는 더 다양한 부분에서 자유함을 느끼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권한다면 나는 처음엔 "선택적 미니멀리즘"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먼저 아이들의 옷과 장난감, 신발들을 처분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서랍". 집에서 서랍을 되도록 없애는 것이 시급하다. 생각보다 많은 물건들이 서랍 안에 있었다. 그 안엔 다 늘어난 머리 고무줄이나, 오래된 건전지 같은 쓰레기도 있고, 동전들 (다 모아보니 6불 정도 되었다.) 혹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충전 케이블, 오래되어 나오지 않는 볼펜 같은 것들이 이것저것 섞여 나뒹굴고 있었다. 큰 서랍 두 개를 치우는데 3시간이 걸렸다. 서랍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다 비우고 정리하고 일주일 뒤에 보면 다시 그대로다. 무슨 마법의 상자도 아니고. 돈을 넣어두면 돈이 물건처럼 불어나 있으면 좋으련만. 먼저 책상 서랍을 없앴다. 그리고 침대 협탁에 있는 서랍. 와. 여기가 가관이다. 각종 약들, 안 쓰는 지갑, 유효기간 지난 카드, 혹은 포인트카드, 역시나 충전 케이블, 면봉은 또 왜 들어있는 것인지. 나처럼 물건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은 먼저 서랍을 비워보기를 추천한다. 서랍만 정리해도 꽤 많은 물건들을 비울 수 있다. 그리고 미리 사서 쟁여두는 습관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천천히 물건들을 정리할수록 비로소 나 자신을 찾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내 삶 속에서 가장 필요 없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색깔은 어떤 색인지, 나의 스타일은 무엇인지, 혹은 나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이 과정을 아주 자주는 아니더라도 더러 해 나갈 생각이다. 주부로 살아나가며 자꾸만 나를 잊는다. 나 자신보다는 남편의 안위가 먼저가 되고, 아이들의 옷차림과 물건들이 소중해졌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애들 사주고 남은 적은 돈으로 자꾸만 세일하는 물건들로 공허함을 채웠다. 물건을 정리하며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은 바로 "쓸데없는 꾸밈" 즉, 남의 기준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물건이 없으면 마치 "좀 없어 보이는 것"만 같았던 나의 아주 일차원 적이고 유치하고 단순한 생각들이 집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늘어나게 했다. 대표적으로 옷방이 꽉 차서 옷 꺼내어 입기가 힘들고, 옷을 관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비되었다. 필요 없는 옷과 서랍만 정리했는데도 참 개운하였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결국은 시대의 기준에 "저가"로 맞춰나가느라 들인 싸구려 물건들 속에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는 지금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 위에 놓여있다. 꼭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진, 나만의 색깔을 가진 공간과 또한 나 자신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발걸음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물건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겠지. 참으로 감사히 여길 수밖에 없는 귀한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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