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삶에 대한 애착이 낳은 공간 채움
나는 조금은 완벽주의자다.
완벽주의(完璧主義, 영어: Perfectionism)는 이루기를 원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보다 완벽한 상태가 존재한다고 믿는 신념이다. 완벽주의는 자신을 향해 높은 기준을 설정하여 보다 높은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것을 중심으로, 질서와 정돈을 원하는 성향으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사상을 가지거나, 그런 심리 상태의 사람을 완벽주의자(完璧主義者)라고 한다. (위키백과)
질서와 정돈을 원하는 성향으로 정의되어 있으며, 자신을 향해 높은 기준을 설정하여 보다 높은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것. 이러한 사상을 가지거나 그런 심리상태의 사람.
와 세상에 이처럼 나를 완벽하게 표현할 단어는 또 없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 시절에 숙제로 "보고서 쓰기"를 자주 했었다. 한 가지 주어진 주제에 대한 조사를 한 뒤 그것을 써서 내는 것이었는데, 당시 프린터가 가정마다 보급되어있지 않고 컴퓨터가 있는 집도 몇 가구 되지 않아서 우린 전부 백과사전 사진을 복사해서 오려 붙이고 새하얀 A4용지에 연필로 빼곡하게 글을 적어 내야만 했다. 조사 내용이 많을수록 보고서는 두꺼워질 수밖에 없어서 이만큼씩 두꺼운 보고서를 내는 것이 자랑스러운 그런 숙제였다. 내 기억에 그 숙제는 "달"에 관한 보고서였다. 겉면에 크게 "보고서"라고 적은 뒤 아래에 제목과 부제를 넣고 오른쪽 하단에 반, 번호, 이름을 적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몇 날 며칠 열심히 조사하고 써서 다음 날이 바로 숙제를 내는 날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엄마에게 컨펌을 받기 위해 식탁 위에 올려두고 손을 씻으러 간 사이 엄마가 밥을 차리다가 그만 김치 국물을 튀기고 만 것이다. 하필이면 종이가 겹쳐져 있어서 장마다 전부 조금씩 빨간 김치 국물이 묻게 되었다. 열한 살, 어린 시절의 나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 물론 밤을 새워 전부 다시 썼다. 날이 밝고 동이 트도록 보고서를 다시 쓰고 꼴딱 밤을 새우고 완성하여 숙제를 냈다. 당시엔 그저 선생님께 김치 국물이 묻은 숙제를 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살다 보니 어려서부터 방 구조를 자주 바꾸고 정리를 했고 그 일들은 내 맘에 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결혼을 하고 살림을 꾸렸을 땐 더더욱이 그랬다. 가구 옮기는 일 정도는 남편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제는 어느덧 능숙해졌다. 나는 정말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정리에 정리를 했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처럼 빈 곳이 없거나 각이 딱딱 맞아야 맘이 편했다. 원하는 위치에 물건이 있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여서 남편이 병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은 자족이란 것을 느끼기가 힘든 사람이다. 왜냐하면 내려놓는걸 잘하지 못한다. 마음을 내려놓고 일부 포기하면 쉬울 텐데 끝까지 노력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야 직성이 풀리니 말이다.
자족하다
(自足하다)
- 스스로 넉넉함을 느끼다.
- 필요한 물건을 자기 스스로 충족시키다.
스스로 넉넉함을 느끼는 상태.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충족시키는 상태. 굉장히 어려운 말인 것 같다. 요즘 시대에 자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자족 뒤에 오는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은 참 동화와 같은 이야기다. 완벽하고 싶어서, 빈 곳을 못 견뎌해서 자꾸만 물건을 들이며 물건으로 만족해오던 나는 마음 훈련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다행히 나는 나의 삶이 특별해서 많은 훈련을 받았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여러 번 이사를 해야 했고 (싸고 푸르기를 9번) 그 과정에서 버리고 채우고를 반복해서 했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있던 작은 집마저 잃었고 좌절한 적도 있었지만 잃으면 잃을수록 채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채웠을 때 오는 불편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한 때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며 짐을 많이 버린 적이 있었다. 아까워서 못 버리는 것도 많았지만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사라진 시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순간의 편리함을 위한 것이었지, 근본적으로 내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안정된 삶을 살면 나는 본능적으로 물건을 채운다.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계속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비애다. (라고 믿고 싶다.)
나는 불편함이 싫고 적재적소에 내가 필요한 물건들이 항상 손 닿는 곳에 있어야 참 마음이 편하다. 살림도 장비빨이라는 말이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물건들이 많지만 잘 사용만 한다면, 그것이 육아에 지친 나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준다면 미니멀이 대수냐 싶다.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물건을 버리고 비우는 행위는 나는 하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을 잘하는 아주 훌륭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배우고 싶고 그 접근 방식을 내게도 적용해보고 싶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 초등학생 때까지는, 그저 완벽주의라는 나의 성향에 기대어 내 집에 즐비한 많은 물건들을 즐겨 보기로 했다. 집안을 둘러보면 참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있다. 그거면 되었다. 물건을 더 이상 사들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굵직한 소비들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이미 나는 자족하는 사람이다. 이미 있는 물건들을 오래오래 잘 사용하고 불편치않게 잘 정돈해 놓는 것을 목표로 나는 더 이상 소비를 하지 않기로 한다.
여러 가지의 모양으로 적용된 삶의 대한 애착이 나 자신과 나의 공간을 채운다. 지금보다 풍성하게 더 잘 살고 싶고,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고, 내 공간이 그저 사는 집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고심하고 고심하여 들인 나의 물건들을 정리한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자신의 공간에 좀 더 애착이 생기고 본인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확고해지면 거실에 즐비해있는 아이들의 물건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본다. 아직은 나의 색깔을 온전히 입히지 못한 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상자를 개조해 집을 만들고, 색종이를 오리고, 오늘도 그만큼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괜찮아, 맥시멀이지만 괜찮아. 지금을 누리자. 나는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해."를 읊조린다.
그래, 살림이 미니멀이 아니어도, 내 집이 아니어도, 새로 뜯어고친 멋진 집이 아니어도, 화이트 일색에 베이지톤 가구들로 정갈하고 깔끔하게 꾸민 남들과 똑같은 집이 아니어도, 난 이대로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