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방에 있던 딸이 피아노 학원을 갔다. 둘째는 30분 전에 미술학원에 갔고 한 시간 동안 누릴 수 있는 귀한 나의 시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른 저녁을 먹어야겠다 싶어 냉동실에서 주꾸미 볶음밥을 꺼내 데우고 그 위에 달걀프라이 두 개를 얹었다. 톡 건드리면 쪼르르 노른자가 흘러나오는 반숙으로.
한 술을 뜨고 휴대폰을 켰는데 딸 친구 엄마에게서 카톡이 와 있다. 아까 학교 앞에서 잠깐 뵌 분인데 무슨 일이지? 하며 카톡을 열어보고는 더 이상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카톡엔 천 원을 받으라는 송금 메시지와 내 딸이 그 엄마의 딸과 주고받은 문자의 캡처 사진, 감정을 절제한 듯 보이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 엄마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ㅁㅁ이가 아까 운동장에서 OO한테 간식 얻어먹었나 보더라고요. 갚으라고 문자가 왔길래 시간이 안될 거 같아서 제가 대신 돈 보냅니다.
친구 : OO야
딸 : 왜
친구 : 심심해서
딸 : 내일 값아. 얻어먹은 거
친구 : 내일 시간이 없는데......
딸 : 왜 시간이 없어. 내일 학교 끝나고 바로 안돼? 응?
친구 : 학원 10분 안에 가야 하는데......
딸 : 밥을 빨리 먹어. 그러면 돼.
친구 : 아님 그냥 돈으로 줄까?
딸 : 안돼. 엄마가 허락을 안 함.
친구 : 음......
딸 : 모야.
친구 : 나 진짜 시간이 없는데......
딸 : 언제 시간이 돼? 그럼 언제? 언제 니가 나 사줘. 귀여운 사진 많이 보내 줄게.
새 학기가 시작되고 딸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쏜다'며 얻어먹고 올 때가 있어 다음에는 네가 꼭 사라고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어준 터였다. 딸이 가지고 있던 돈으로 사이좋게 컵볶이를 사 먹고는 친구가 "다음엔 내가 살게."라고 했다는데...... 아니, 그걸 이렇게 받아?
많이 언짢으셨겠어요, 죄송합니다로 시작해 노여움 푸세요, 뭐가 잘못된 건지 알아듣게 잘 가르치겠습니다라는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다. 천 원은 거둬주시라 말씀드렸지만 취소하기도 그렇고 받아 달라고 하시기에 송금받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딸은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엄마, 천 원 받았어?"라고 묻는다. 위의 문자 대화 이후 딸의 친구가 우리 엄마가 너희 엄마한테 천 원 보냈다고 알려 온 모양이다.
"응, 받았어."라는 대답과 함께 딸을 불러 세웠다. 딸은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저를 부르자 눈치는 빨라서 "엄마, 왜. 엄마 나 혼내지 마."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혼내지 않는다며 너에게 꼭 알려줘야 할 게 있으니 옆에 앉아보라고 했다. 내 마음속은, 내 머릿속은 끓어 넘치는 냄비 속의 내용물과 같이 미쳐 날뛰고 있었지만 이 순간 화를 내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최대한 감정을 숨긴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면 친구가 기분이 나쁠 수 있고 엄마가 만약 ㅁㅁ엄마라면 엄마도 엄청 화가 났을 것 같아.
엄마는 ㅁㅁ엄마가 엄마한테 바로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OO가 이런 문자를 보냈는지도 모른 채 넘어갈 뻔했잖아.
OO가 몰라서 그런 거니까 가르쳐 주는 거야. 문제집 푸는 것만 공부가 아니고 이런 것도 공부야.
울며 안기는 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딸 오늘 큰 공부 했네.
ㅁㅁ이 한테 미안하다고 짧게 쪽지라도 쓰는 건 어때?
문자로 미안하다고 하면 안 되냐고 하는 딸에게 문자보다는 내일 얼굴 보면서 쪽지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라고 말했지만 딸은 내일 학교에 가면 직접 말하겠다고 했다.
딸 모르게 남편에게 카톡으로 이 사실을 전달했고 남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대폰을 괜히 개통해 줬다며 발끈하는 남편을 진정시키며 딸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나눴다. 뭐가 옳고 그른지 당연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자꾸 믿었던 도끼가 발등을 찍는 일이 발생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고민에 고민을 더해봐도 육아에서 정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과연 부모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