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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Jun 23. 2024

저녁에 다시 와라

설거지는 부부가 같이

도보 15분 거리에 위치한 시부모님 댁에서 점심을 먹고 남편과 이야기를 끝낸 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외출하셨던 시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고 집에 가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화들짝 놀라시며 아이들은 어쩌고 집에 가냐고 하신다.

"아이들은 음료 하나씩 사주고 집에 같이 들어왔었고요, 지금은 남편이 아이들이랑 있어요."

"저녁 먹을 때 다시 와라."

"아니에요, 저는 집에서 먹을게요."

"비닐팩에 반찬 담아가야지."

"어머니, 남편 시키면 엄청 잘해요"

집에 가까워진 발걸음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왜 오라고 하시는 거지? 저녁상 차릴 사람 필요해서? 설거지할 사람 필요해서? 정말 반찬 담을 사람이 나뿐이라서?

그때 난 어떤 표정이었을까? 황당하기 그지없었지 며느리로서 면역이 생긴 터라 저녁은 내 집에서 알아서 먹었다.


시어머니는 4인 가족의 살림을 하루 종일 도맡아 하시며 수십 년을 살아오셨다. 결혼하고 깜짝 놀랐던 게 식사를 준비하거나 뒷정리를 할 시아버지, 남편, 시누이 그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다. 심지어 물 갖다 달라는 말까지 시어머니께 하고 있었고 시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 물을 가져다주셨다. 아! 냉장고가 바로 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물을 달라는 남편의 태도가 그제야 이해가 됐었다. 그런 시어머니는 명절이나 제사 때가 되면 나에게 많이 의지하셨다. 결혼 전까지 큰집에서 전 부치고 만두 빚고 송편 빚던 경험이 결혼하고 빛을 발할 줄이야. 그러면서 조금 민망하셨는지 '내가 안 시켜서 쟈들은 못한다.'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도대체 왜 안 시키셨나요?라고 반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꾹 참는다.)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 상만 좀 치워다오.' 하시던 어머님도 허리가 많이 편찮으신 후로는 내가 고무장갑을 끼어도 별말씀이 없으시다. 남편과 시누이는 당연하다는 듯 앉아 있고 가 최소 6인 이상의 식기를 설거지하고 있는 상황이 모일 때마다 반복됐다. 충분히 좋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손이 느린 나 혼자 하다 보면 허리가 아파온다. 이제는 작전을 수행해도 될 것 같아 지난 설 명절부터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불렀다.

"자기야, 이것 좀 헹궈줘."

시키면 참 잘하는 남편은 연신 그릇을 헹군다. 설거지가 이렇게 많냐는 남편에게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그래, 이렇게 많은지 이제 알았냐?'라고 답했다.


인터넷에 이런 글이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남편한테 버려달라고 했더니 그건 나한테 시킨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어르신이 있었다고. 혹시 시어머니도 그런 생각을 하실까? 며느리 옆에 서서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그릇을 헹구는 아들을 시어머니 본인이라고 치부하시는 일은 절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좁은 주방에 식기세척기 놓을 자리도 없고 어차피 앞으로도 설거지는 내 담당일 테,

"자기야, 이제 내가 부르지 않아도 좀 주방으로 와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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