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찍은 사진

부모님이 담긴 사진 남겨 놓기

by 글이랑

아이들이 종종 친정에서 1박을 하곤 한다. 1박을 해야 하는 이유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라고 주장하지만 이면에는 엄마, 아빠의 눈을 피해 마음대로 텔레비전을 보겠다는 속셈이 있다. 부모님이 힘들진 않으실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자는 건 안 된다고 일단 강경한 자세를 취하지만 부모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나도 꿀맛 같은 자유를 가질 거란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사실이다.


얼마 전에도 갑자기 외가에서 자겠다는 아이들 덕분에 다음 날 아침 늦은 시간까지 침대에 늘어져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다 남편이랑 나가서 브런치를 먹기로 했고 어디로 갈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외출 준비를 마쳤을 때 전화가 울렸다.

"애들 차도 태워줄 겸 칼국수 먹으러 갈까?"

아빠의 전화였다. 아빠가 최근에 차를 새로 사셨는데 아이들이 할아버지 차를 타고 싶다고 몇 번 말했던 터였다.

"남편이랑 브런치 먹으러 나가려던 참이에요. 애들만 태우고 다녀오세요."라는 말을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어 친정으로 향했다.

우리 차는 세워 두고 아빠 차로 옮겨 탄 뒤 옆 동네 대공원 근처로 향했다.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 중 눈에 띄는 커다란 식당으로 들어가 칼국수와 짬뽕 순두부 등 각자의 메뉴를 배불리 먹었다. 근처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먹자고 했지만 아빠는 소화도 시킬 겸 대공원 산책을 제안하셨다. 내리쬐는 뙤약볕에도 높디높게 자라고 있는 쭉 뻗은 나무들 덕분에 그늘 아래로 걷기 좋은 길이 죽 이어졌다. 아빠와 나란히 걷는데 문득 사진을 남겨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따라오고 있던 남편에게 수신호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전날 비가 내리기도 했고 더욱 푸르게 느껴지는 이 길을 다섯이 함께 걷고 있노라니 마음속으로 싱글한 표정이 절로 지어졌다. 매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도 하나씩 마시고 힘들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떡볶이와 번데기로 충전시키며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둘째의 요구로 코로나 전에 마지막으로 갔던 동물원에도 들렀다.



아빠의 새 차를 처음 타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아빠가 종이에 손수 쓰신 게 분명한 차창의 전화번호였다. 평소 쿠팡 주문을 잘하시지만 '전화번호판 구입하실 생각은 못하셨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내가 너무 무심했네.' 하는 죄책감에 마음이 구겨졌다. 차 안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에 오자마자 친정 주소로 전화번호판부터 주문했다. 단톡방에 내일 도착할 거라는 사실을 알리고 남편이 찍어 준 것 사진을 포함한 몇 장을 더 보내드리며 다음에는 엄마도 함께 하자고 했다.(엄마는 주말에 꼭 출근해야 하는 일이라 평일에 이틀을 쉬신다.)


문경민 작가의 <브릿지>라는 소설을 읽고 '엄마, 아빠와의 시시콜콜한 대화를 녹음해 둬야겠다'라고 적어둔 게 지난 4월이었다. 아직 실천하지만 못했는데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사진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내 식구 건사하며 사는 것도 다행이다 싶은 삶이지만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부모님께도 눈을 좀 돌려야 나중에 후회가 덜 할 것 같다. 아빠의 말속에 숨어 있는 '너도 함께 가자'를 모른 척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다. 마음 편하자고, 이기심으로 시작된 이 작은 행동 하나가 부모님의 마음에 안착해 따스한 무언가를 느끼실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