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걸 나는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지금까지 Villehardouin의 연대기를 최소 두 번, 아니 세 번은 읽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내용에 대해 기억나는대로 적어보라 한다면 페이지가 넘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생각은 내가 내 서재의 책들을 보면 불안한 기분이 들게 한다. 별로 기억남는 것도 없다면 지금까지 읽어온 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몇 달 전, 나는 Constant Reid가 쓴 Hilbert 자서전을 읽으며 이 질문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줄 대답을 발견했다:
"Hilbert는 학생들에게 수학적 지식만 주입하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게 하는가를 가르치지 않는 수업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종종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문제의 절반이상을 푼 것이라고 말하고는 하였다."
나 또한 이런 사고방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늘 생각을 했고, Hilbert도 동일한 생각을 했다는데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어떻게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내 개인적인 경험과 그동안 읽어온 것들을 통해서였다. 정작 그 당시에는 기억도 하지 못했으면거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Hilbert가 이에 공감했다는 사실조차 까먹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내가 나중에 이런 사실을 배웠다는 사실을 잊어먹은 뒤에도 내 안에 남아있게 될 것이다.
독서과 경험은 인생의 프레임을 장착하는데 도움을 준다. 심지어 내가 읽은 내용이나 경험한 일들을 잊어버린다 하여도, 내 세계관 형성에 끼친 기여는 남아있게 된다. 사람의 뇌는 출처를 잃어버린 축적된 프로그램 같아서 프로그램이 돌아가지만 왜 돌아 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Villehardouin의 연대기로부터 얻은 것은 내 기억 속에 남은 사실들이 아니라, 크루세이드, 베니스, 중세문화, 포위전 등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나 하는 것 따위다. 말인즉슨, 내가 주의 깊게 읽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내 생각만큼 독서가 소용이 없지는 않았단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훗날 반추할 때나 더 명확해지는 사실들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읽은 것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기억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것도 진실이다.
이런 사실은 인지하는 건 그래도 잊어버리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이에 대해 시사하는 몇 가지 바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독서와 경험은 주로 행위가 발생하는 시점에 "축적"되어 그 당시의 뇌의 상태를 기반으로 한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인생의 다른 시점에 읽으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과 같다. 이는 좋은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나는 늘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에 대한 의혹이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재독을 목수 일과 연관지어 생각하여, 한가지 책을 다시 읽는 걸 애초에 무언가 잘못하여 반복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읽음"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로 들린다.
흥미롭게도, 이런 점은 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술은 나날이 우리의 경험을 다시 살아가도록 해줄 것이다. 현재 사람들이 기술로 경험을 다시 겪는 건 주로 즐거운 경험을 다시 느끼기 위함이다 (여행 가서 찍었던 사진을 들춰본다던가). 아니면 잘못된 코드의 버그를 해제하기 위함이라던가 (Stephen Fry가 자신이 노래를 하지 못하게 막은 어릴적 트라우마를 기억해낸다 던가). 하지만 인생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왔던 경험을 특정한 목적없이 다시 경험하는 건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 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살아온 경험을 재경험할 뿐만 아니라 편집하거나 색인을 달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폴 그램 Paul Graham
실리콘 밸리에서 "스타트업의 대부"라고 불리는 전직 와이 콤비네이터 (Y Combinator, "YC")의 파운더. 연쇄 창업자, 프로그래머, 벤처 캐피탈리스트, 그리고 에세이 등 여러가지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그는 10여년이 가까운 세월을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그 견고한 명성을 쌓아왔다. 그의 스타트업 학교인 YC 는 창간 이래 특히 미국에서는 전국민의 생활의 일부가 된 Airbnb, Stripe, Dropbox, Coinbase, Twitch, Scribd, 등의 회사를 초기에 발굴했다. YC는 전세계 가장 명성이 높은 창업자 교육 엑셀러레이터이자 스타트업 투자자 교육소이다.
위 기사는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 폴 그램의 에세이 시리즈를 한글로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본의 저작권은 번역가에게 있으며, 폴 그램의 영어 원문 에세이("How You Know")는 http://www.paulgraham.com/know.html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번역글 공유시 출처는 반드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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