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선명한 '처음'의 기억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할 프라이 부르크는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35일간의 유럽여행의 첫 도시였다. 프랑크 푸르트 공항을 통해 유럽에 도착했지만 나는 공항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바로 기차를 타고 2시간 거리인 프라이 부르크로 향했다.
프라이 부르크는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대학도시로 검은 숲 기슭에 인접해있다. 나는 대학교 시절에 독어독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고, 원어민 교수님 중 한 분이 바로 이 프라이 부르크 출신이었다. 이름 모를 낯선 도시는 교수님이 이곳이 자신의 고향이라며 수업시간에 들려준 이야기들과 보여준 사진들로 자연스레 낯설지 않은 도시가 되었고, 마침 검은 숲에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는 프라이 부르크에서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시작은 설레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멘 채로 지도를 들고 도시를 걸었다. 우선 숙소에 짐을 풀려고 했지만, 내가 예약한 숙소는 꽤 변두리에 있어서 어쨌든 시내를 가로질러서 한참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프라이 부르크는 친환경 도시나 대학 도시로 유명했지 관광도시는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호스텔에 단 1개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호기심으로 가득 찬 유럽여행의 첫 도시였기 때문에 나는 숙소까지 가는 동안 마주치는 평범하고 작은 가게 간판들, 가게 앞 가판에서 파는 잡동사니들, 심지어 바닥에 깔린 타일 하나마저 모두 신기해서 짐의 무게는 완전히 잊힌 상태였다.
프라이 부르크에서는 인도 곳곳에서 이런 작은 수로를 쉽게 볼 수 있다. 베힐레(Bächle)라고 부르는 이 인공 수로를 따라 검은 숲 일대에서 온 물이 도시 곳곳을 흐르고 있다. 베힐레에는 전설이 하나 숨어 있는데, 바로 외지인이 이곳에 빠지면 프라이 부르크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고의로 빠진 것은 포함되지 않는단다. 나는 프라이 부르크에 머무는 3일 내내 이곳에 실수로 빠져보고자 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베힐레에 발을 헛디뎌 빠졌더라면 나는 수로에 깃든 전설처럼 독일 사람을 만나 독일에 살게 되었을까.
나는 모든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성격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몇 년 전에는 더더욱 그랬다. 당연히 여행의 ‘첫 도시’가 주는 의미는 나에게 있어 엄청난 것이었다. 12월 중순의 프라이 부르크 거리는 분명 추웠지만 도무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주변은 온통 신선한 경험 투성이었다. 처음 먹은 소시지빵과 처음 가 본 유럽의 교회와 꽃시장, 크리스마스 마켓, 처음 묵어 본 호스텔 도미토리에서의 숙박, 처음으로 짧은 영어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 등등 나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프라이 부르크 자체는 관광도시도 아니고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여행 시작의 첫 도시로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