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코리 May 05. 2022

모르고 보는 것 vs. 알고 보는 것

작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보는 것과 알고 보는 . 무엇이 더 좋은 방법일?



#작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 감상할 수 없을까?

땡. 작품에 대해 전혀 몰라도 감상할 수 있다. 심지어 감동적으로… 이건 내 경험에서 비롯된 증언이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여름 방학을 보람차게 보내겠다는 야심 반, 해외에 좀 살아보자는 로망 반이 합쳐져 4주 남짓 뉴욕대학교의 여름계절학기를 들으며 맨하탄에 머물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 때 내가 들었던 수업은 “현대미술사”였다. 영어 실력이 탄탄히 받쳐주지 않을 때였지만, 오기로 등록을 했고, 각오했던 것 만큼 고전하고 있었다. 알아는 듣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를 끊임 없이 의심해야 했고, 매 수업마다 내야 하는 에세이의 지옥에서 바등대던 때… 그 압박에서 완전히  해방된 날이  딱 하루 있었다. 바로 현장학습! 미술관에 가는 날이었다. (역시 미술관은 좋다.) 그것도 현대미술의 메카, 뉴욕 현대 미술관…!!! 그 유명한 모마.

지금 모마는 53번가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지만, 2003년 여름에는 퀸즈에 허름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리모델링 때문이었다. 하필 우리가 현장 학습을 가는 날은 비가 주적주적 내렸다. 냄새 나는 지하철을 타고, 우산을 쓰고, 구정물이 샌들 안으로 튀기는 것을 참으며, 미술관에 도착했다. 구질스러운 날씨 때문에 한층 더 어스륵한 초저녁이었다. 덕분에 미술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딘지 성스러운 느낌까지 들던 그 하얀색 미술관에서 운명의 작품을 만났다.

아무 것도 그려지 있지 않은 미색의 캔버스였다. 캔버스의 도돌도돌한 요철이 없는 걸 보니 분명 칠한 거긴 했다. 알아볼 수 없는 형상은 하나도 없을 뿐.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는데, 자꾸만 눈길을 끌었다. 앞에 놓인 (불편한) 나무 벤치에 앉아서 오래도록 쳐다 봤다. 정말 너무 좋았다. 다른 수식어를 찾고 싶지만, 능력 부족이다. 그냥 정말 너무 너무 좋았다. 따뜻하고, 잔잔하고, 고요했다. 포근히 안고 다독여주는 느낌이랄까… 아직 덜 마른 플립플랍을 끌고 걸어가 작품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캡션을 확인했다. 작품 제목은 The Voice 였다. 목소리라니...! 무제가 아니라 감사했다. 정말 잘 어울리는 제목이었으니까. 조용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작품이 너무 좋아서 작가 이름을 열심히 외웠다. B A R N E T T    N E W M A N... T는 두 개고 N은 하나... 이렇게.

이 날 이후, 알아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또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의견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어려워하는 추상화조차... 오히려 알아볼 수 있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더 보편적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그 뒤로 추상 미술 논문을 주구장창 썼나 보다.)

내가   봤던 바넷 뉴먼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는 3년이 지난 대학원 2학기나 되서야 알았다. 작품에 담긴  사람의 숭고의 미학이라든가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라든가 이런 것들도... 바넷 뉴먼이라는 화가에게 내가  작품처럼 부드러운 느낌의 그림은 예외적이라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실 바넷 뉴먼이라는 사람을   알게  수록 다소 실망스럽긴 했다. 내가 작품 앞에서 느낀 따뜻함에 비해  속에서 만나는 그는 너무나 이지적이고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확신을  얻었다. 때로는 몰라서  좋을 수도 있다는 .

Barnett Newman, The Voice, 1950, MoMA



#그러면, 아는 것이 쓸 데 없을까?

그럴 리가. 어찌 아는 것이 쓸모 없을 수 있겠는가. 작품에 대해 아는 것, 아니 보다 정확히 ‘미술사에 대한 교양 수준의 지식’은 작품 감상에 거의 언제나 도움을 준다. 이 경험 역시 그 날의 퀸즈 모마에서 얻은 것이다. 엉터리 에세이를 내던 동양인 여학생이 미색의 추상화를 넋을 놓고 쳐다보던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는 미술사에 대해 꽤 많이 알던 강사 선생님(아마 대학원생이었겠지)도 열심히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금발을 찰랑이던 백인 남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열정적으로 하나의 작품을 보고 있었다. 나도 이름은 들어본 작가의 작품이었다. 그 유명한 잭슨폴록의 거대한 추상화. 그런데 그의 감상 방법이 매우 특이했다. 작품을 ‘앞’이 아니라 ‘옆’에서 보는 거다. 벽에 들어갈 정도로 착 붙어서 캔버스의 옆면을 노려 보았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쭈그려 앉기도 했다. ‘왜 저래?! 하하하. 별나기도 하네.’라고 생각했는데, 오래도록 그의 작품 감상 방법이 머리속에 남았다. 너무 희안해서.

그런데, 그 이유를 역시 대학원 2학기가 되어서야 알았다. 잭슨 폴록 작품의 '평면성'에 대해서 배운 날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잭슨 폴록의 시대, 그러니까 1950년대 미국에서는 ‘납작한 회화’를 최고로 쳤다. 알아볼 수 있는 형상이 하나도 그려지지 않은 추상회화. 그리고 작품에 깊이감도 전혀 없는 납작한 평면.  당시 미국 미술을 견인하던 어마어마한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이 흐름을 이론적으로 탄탄히 뒷받침했다. 그는 평평한 추상회화를 최고라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시대 배경과 관련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철의 장막이 견고히 드리워져 있을 때였다. 미국은 소련에 비해 자유로운 나라라는 점을 자랑하고 싶었고, 이 욕망은 미술에도 적용되었다. 그들에게 스탈린과 밝게 웃는 인민들을 그린, ‘우린 당신과 함께 이렇게 행복해요’라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는 구상 회화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그려지는 교조주의적인 작품이었다. 그보다는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먹겠는 추상회화가 자유롭고 미국적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추상회화 만세’를 외친 거다. 더불어 당시는 분업 사회였다. 돌아가는 컨베이너 벨트에서 각각 맡은 부분만의 나사를 조이는… 그런 시대. 이런 사회에서는 미술 분야도 분업이 마땅했다. 회화는 회화다워야 하고, 조각은 조각다워야 했다. 어떻게 회화가 회화답냐고? 회화와 조각을 나누는 기준을 생각해보면 쉽다. 그 둘을 분류하는 가장 분명한 기준은 평면이냐 입체이냐 이다. 따라서 회화는 무조건 ‘평면’이어야 하는 거다. 이 두 가지 요건-“회화는 추상이어야 하고, 평면적이어야 한다”를 합치면 잭슨 폴록의 납작한 추상 회화가 되는 거다. (음… 많이 줄였는데도 어째 간단해 보이지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잭슨 폴록의 회화는 평면적이라 최고라고 여겨져 왔고, 나와 함께 현장 학습을 갔던 강사는 그것이 정말 평면적인지 자기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거다. 내가 스물 한 살에 잭슨 폴록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나 또한 금발의 강사 옆에 딱 붙어 캔버스에서 물감이 얼마나 튀어 나왔는지를 가늠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잭슨 폴록의 작품을 정면에서 보고 ‘물감을 뿌렸군. 새롭군.’ 이렇게 감상하는 것도 충분히 멋지지만, 그 미술사적 의미를 알고 잭슨 폴록의 작품을 옆에서 보면서 ‘그림이 과연 ‘평면’일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한 발 더 나아간 감상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이렇게 나중에서야 알았다. 알면,     있다는 것을.

Jackson Pollock. One: Number 31, 1950 (photo: MoMA)




#그렇다면, 결론은?

길게 말했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몰라도 충분히 감상할  있다. 그러나, 알면,  깊은 감상이 가능할 때가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시대 미술, 어쩌란 말이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