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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코리 Oct 12. 2020

10월, 몬드리안의 국화

국화의 계절이다. 장례에 쓰이는 꽃이라 죽음이 같이 연상되고, 개인적으로는 입시 미술을 할 때 워낙 정물 소재로 많이 나오던 터라 국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선호를 뒤바꾼 계기는 몬드리안의 국화 그림이다. 

몬드리안의 국화 그림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탁월한 소묘 능력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색의 느낌이 대단히 좋다. 부드럽고 몽환적이다. 두 가지 모두 몬드리안 답지 않은 면이다.

몬드리안은 대표적인 기하 추상 화가다. 추상이라 함은 보이는 세계를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는 뜻이고, 기하 추상이라는 말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 같은 기하학적 무늬(?)를 활용했다는 용어다. 색 또한 빨강, 노랑, 파랑, 흰색, 검정만 사용했다. 그의 대표작과 국화 그림은 사실 잘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 보면 그 둘을 잇는 맥이 있다. 몬드리안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 시켜 표현하는 것을 화두로 삼았다. 그의 정갈한 사각형의 화면은 무질서하고 어지러운 세계를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단순화시켜 파악하고자 했던 결과였다. 몬드리안이 초기에 국화를 주로 그린 것도 국화의 복잡한 구조 때문이었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국화를 꼼꼼히 뜯어 보고, 직접 그리면서 그 구조를 간파하고 싶어 했다. 작은 꽃으로부터 연습한 것이 큰 세상을 파악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리라. 

우리는 그의 추상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시기인 1920년대 중반 이후의 그림을 주로 알고 있고, 그 전 그림은 대표작에 이르는 과정만 편집되어 소개가 되었지만, 사실 몬드리안은 200점 정도의 꽃 그림을 그렸다. 네덜란드 전통에서 비롯한 꽃 정물화의 영향일 것이다. 몬드리안이 다녔던 암스테르담 학교에서는 네덜란드 전통 정물화를 가르쳤기에 몬드리안 역시 수년간 꽃 그림을 훈련 받았다. 

몬드리안이 그린 꽃 그림은 국화가 많은데,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앞서 말한 국화의 복잡한 구조 때문일 수도 있고, 시대적 배경으로 보자면 당시 일본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관심을 꼽을 수도 있다. 19세기 말 무렵 일본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한 유행이었다. 몬드리안보다 앞선 선배들, 예를 들어 마네, 모네, 제임스 티소, 휘슬러 등 정말 많은 화가들이 일본의 문화에 매료되어 기모노, 병풍 등의 소재를 그림에 끌어들였고, 장식성과 평면성을 화면에 도입했다. 일본식 다리를 정원에 설치하기도 했고. 몬드리안이  일본의 나라꽃인 국화를 그린 것은 이런 시대적 배경도 분명 있었을 거다. 

몬드리안의 화력에 있어 꽃그림은 자주 무시되지만, 사실 그의 커리어에 있어 꽃그림은 중요하다. 1921~22년 몬드리안은 미술을 포기하려 했다. 그 때 꽃 그림으로 돈을 벌며 기사회생했다. 예나 지금이나 꽃 그림이 그나마 잘 팔리니까. 몬드리안이 이 때 꽃을 그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위대한 화가 한 명을 잃었을 거다. 미술사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몬드리안 대표작을 보면, 이건 나도 그리겠다는 말을 쉽게들 한다. 그런데 아는가? 몬드리안이 20년 넘게 사실적인 기본기를 연마한 후에서야 비로소 추상을 했다는 것을. 아주 복잡한 국화꽃을 눈, 손, 머리로 그리고 자신을 훈련시킨 후에야 미술사에 남는 걸작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몬드리안의 국화는 소위 말하는 master piece가 나올 때까지의 인고의 시간와 훈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국화, 1908-09


국화, 1906




Chrysanthemum,1925, watercolor on paper , 34 cm X 24 cm ,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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