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차 원서 덕후가 말하는 영어 독서의 지극한 즐거움

상처 없이 영어를 얻는 최고의 방법

by 하영

대학 졸업 후, 육군 통역장교 시험에 합격했다. '살다 온' '유학파' 지원자들이 주로 붙는,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굉장히 잘해야 하는 까다로운 시험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즐겁게 준비했고 결과도 좋았다.


입교를 포기한 다음엔 영어 라디오 채널에서 객원 리포터로 일했다. 매주 새로운 아이템으로 스크립트를 직접 쓰고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했다. 첫 회사에서는 해외 PR 업무의 기회를 얻었다. 해외 매체를 모니터링하고 보도자료를 작성해 보내는 등의 일이었다.


퇴사 후엔 뮤지컬 수업을 들으러 뉴욕에 다녀왔다. 한 달간 뉴욕에서 생활하며 친구를 사귀고 수업을 들었다. 내레이터로서 미국 출판사의 영어 오디오북을 녹음하기도 했다. 내 목소리로 녹음된 그 책은 지금 아마존 오더블에서 판매되고 있다.


아낌없는 시도들의 배경에는 영어라는 밑천이 있었다. 삶의 관문에서마다 영어는 내가 비빌 구석이 되었다. 같은 일을 시도하더라도 더 큰 선택지를 열어주고 더 다양한 삶의 가능성들을 상상하고 실현하게 해 주었다. 때로는 돈도 벌게 해 주었고.


종종 생각한다. 나중에 자녀가 생겨도 딱히 공부를 많이 하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영어라는 자산만큼은 물려주고 싶다고. 영어 없이는 볼 수 없을 것들을 보고 선택할 수 없을 것들을 선택하며 살게 해 주고 싶다고 말이다. 새로운 언어는 똑같은 세상을 훨씬 더 크게 살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자문했다. 해외에서 살아본 적도, 국제학교나 영어유치원을 다녀본 적도 없는데, 언제 나에게 영어가 벽이 아닌 길이 되기 시작했을까? 돌아보니 그 출발은 약 15년 전, 영어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원서읽기가 내 삶의 일부로 자리잡아 십수 년이 흘렀다. 원서를 읽어서 영어를 늘려보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어' 본 적은 없다. 나에게 영어 독서는 공부보다 덕질에 가까웠다. 시간과 돈을 아껴 투자할 대상이었다. 누구도 나를 말릴 수 없었다.


나는 인간의 의지도 믿지 않고, 루틴이나 시스템에 대한 환상도 없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믿는다. 돌아보면 좋아하는 세계를 내 안에 품고자 깊이 몰입하는 시간, 그것만이 매번 나에게 유의미한 무언가를 남겼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나의 것이 됐다. 무엇보다 상처 없는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영어에 대한 공포나 죄책감, 부채감 같은 것 없이 영어를 얻었다. 진실로 덕질은 최고의 공부였다.


영어로 읽기 시작한다는 것은 세상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감각기관을 더 얻는 것과 같았다. 또한 나의 사고가 흘러갈 수 있는 새로운 회로를 장착하는 것과도 같았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고, 훨씬 더 넓은 세상에서 나의 취향과 선호를 탐색할 수 있었다. 영어 독서를 통해 내가 몰랐던 세상과 사고방식들을 접했다. 그들은 크게든 작게든 내 삶을 바꾸어놓았다.


이제는 나의 오랜 일부이자 가장 큰 자산 중 하나가 된 영어 독서에 대해 돌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적어 보려 한다. 십수 년차 원서읽기 덕후가 경험해 온 영어 독서의 지극한 즐거움에 대하여. 재미있는 영어책들을 원서로 읽는 취미가 나에게 열어준 세상과, 그 세상을 향한 문을 즐겁게 여는 방법에 대하여.


jessica-ruscello-OQSCtabGkSY-unsplash.jpg Jessica Ruscello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