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s Journal} 부식(腐蝕)의 퇴근길

by 헤이박 HAYPARK



일이 끝나고 버스를 기다렸다. 퇴근길 버스는 원래 한산한데 오늘은 사람이 많았다. 이게 심기에 거슬렸다.


한산한 퇴근길의 버스에서는 나름의 하루를 끝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적막이 있다. 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집까지 실려가면서 쌓인 피로를 얼마간 내려놓는다. 그런 버스에 사람이 많아지니 적막은 찾아오지 못했다. 뭔가가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받아야할 쉼을 못 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버스에 타면 항상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뒤에서 두번째 창가자리다. 매일 타고 다니는 버스이다보니 자연스레 습관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오늘은 그 자리가 차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자리에 앉았다. 익숙함에서 벗어난 자리는 묘하게 몸에 맞지 않았다. 맞지않는 자리는 나를 숨겨주지 못했다. 적은 피로나마 풀었던 내 퇴근길이 더럽혀졌다. 엉망이 되어버렸다.


기분이 좋지않은 상태로 버스를 타고 갔다. 두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귀를 막아 세상과 나를 분리하고 싶었다. 그런 내 바람과는 반대로 옆자리에 새 사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옆의 일행과 큰 손짓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 큰 말소리가 틀어놓은 노래를 뚫고 들어왔다. 노래의 볼륨을 올렸다. 그제서야 불필요한 소음은 사라지고 그녀의 무언의 손짓만 남았다. 훨씬 견딜만해졌다. 시선을 버스 밖으로 돌렸다. 뭔가가 어긋난 기분은 가시질 않았지만 내 공간은 생겼다. 그대로 멍하니 버스에 쭉 앉아있고 싶었다.


하지만 집 근처의 정경이 보이자 반사적으로 몸이 내릴 준비를 했다. 내릴 정류장이 시야에 들어오자 버스 뒷문 앞에 섰다.


하차 준비를 하는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내 앞에는 한 남자 아이가 서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고학년 쯤일까. 마른 몸과 얼굴이 아직 아이같았다. 안경을 쓰고 짧게 깎은 머리에, 자기보다 큰 배낭을 맸다. 정류장으로 버스가 들어서자 그 애는 목을 길게 빼고 정류장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을 응시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듯 했다. 버스가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뛰었다. 뒤를 따라내린 나는 그 애가 어딜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나 궁금했다.


어린아이 특유의 환호소리를 내면서 와아아, 뛰어간 곳에는 아이 엄마와 아이보다 더 어려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와 남동생인듯 했다. 남동생은 엄마 옆에 딱 붙어서서, 귀가하는 형의 포옹을 기다리는 듯 양팔을 벌리고 서있었다. 형은 두 사람 쪽으로 달려가다 장난스럽게 방향을 틀어 동생과 짧은 술래잡기를 했다. 동생은 그런 형 뒤를 조바심 내며 쫓아뛰었다. 잠시 후 형은 뒤를 돌아 남동생을 꼭 안아줬다. 동생도 형을 꼭 안았다. 포옹을 풀고 형은 엄마 손을 잡고 동생은 그 옆에서 재잘거리며 걸어갔다.


이 풍경은 갑작스럽게 내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다. 하루종일 나를 휘감고있던 묘한 불쾌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줬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기쁨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가족애를 목격했기 때문일까.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멀어져가는 그 세 사람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뜨거워진 눈 주변을 느끼며 걸었다. 쌀쌀해진 밤 날씨에 팔짱을 낀채 어깨를 웅크리고 걸어가면서 방금 목도한 가슴 따뜻한 정경을 눈에 아른거리게 내버려뒀다.


요즘 여러가지를 포기하고 산다. 기쁨이랄지, 행복이랄지, 따뜻함이랄지, 하는 것들을.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을. 나를 들뜨게 하는 것들을. 포기한다기보다 억지로 피하면서 산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들뜨는 마음은 역시 내 의지에 반해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사라져가면서 내 마음의 한 뭉텅이씩을 가지고 떠난다. 떨어져나간 뭉텅이를 메우는 건 다름 아닌 공허다.


그동안 영감을 주는 것들을 참 많이도 쌓아놨다. 최근 그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더니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차지하던 자리만큼의 큰 공허를 남기고 갔다. 그런 공허는 소화가 안된다. 깨어있는 시간에 시도때도 없이 마음에 들이쳐서 헤집고 떠난다. 지금은 이만큼의 공허도 감당하기 벅차다. 그래서 새로운 빈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새 감정들에게 새로운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형제의 우애, 가족애는 잊으려했던 감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잊어야지, 포기하고 살아야지, 했던 마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게 되니, 그 갑작스러운 따뜻함에 눈물이 났다. 차갑게 내려간 온도에 맞춰진 내 내면에 불씨하나가 떨어졌다가 금방 꺼졌다. 찰나의 따뜻함을 느낀 후 다시 맞는 한기는 더 춥게 느껴진다.


퇴근길의 나는 매일 조금씩 부식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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