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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Dec 10. 2023

(60) 삶에 관하여 -(1)

생명의 래칫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르빈 슈뢰딩거의 1944 년 저서의 제목



생명체의 경계

생명체는 독특하다. 그렇기에 아주 어린 아이들을 비롯하여 우리는 손쉽게 생명체를 비-생명체로부터 분간해 낸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일상적 질문도 엄밀한 과학의 잣대를 들이대면 불가사의한 문제가 되곤 한다. 생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생명체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어떤 분자 더미를 보고, 이것이 살아 있는지 또는 죽어 있는지를 가르는 그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가?


그림 1. 바이러스는 복잡한 분자 기계다. 이들은 맹목적으로 흘러 다니며 자신을 복제하는 작은 핵산-단백질 덩어리이다. 그러나 통상적 의미의 생명은 아니다.


방대한 생명의 스펙트럼은 물리학 법칙처럼 선이 그어진 명료한 것이 아니기에(글 51, 미주 1), 우리는 단순한 하나의 조건으로 생명을 정의할 수는 없다. 교과서에선, 생명체를 '물질 대사를 하고(즉 무언가를 먹고 소화시키고 뱉어내면서) 에너지를 생산하며', '성장하고 번식하고 복제하며', '진화하는', '세포로 이루어진 것'. 이라고 거칠게 정의한다. 어느 하나의 단순한 조건만으로 생명을 정의할 수 없었기에, 조건들의 교집합을 이용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단순한 화학 물질의 혼합물도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대사 체인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결정과 같은 무생물들도 자라날 수 있으며, 언젠가는 로봇이 자신과 똑같은 로봇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미주 1).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생명이라 불리기는 부족하다(그림 1).

이런 생명들은 어떻게 태어났는가라는 주제는 수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생명은 다른 무생물과는 다를 만큼 너무나 복잡하게 조직화되어 있고, 이것은 단순히 우연을 통해 태어나기엔 불가능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복잡성을 신의 존재를 증거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미주 2), 여러 실험들은 생명의 탄생에 대한 증거를 보이고 있다(글 58, 미주 1도 참고하라).


그림 2. (풍부한 질소 때문에) 비료로 사용되는 요소는 생명체의 물질 대사를 통해서만 합성될 수 있다고 여겨졌으나, 1828년 이 가정은 흔들리게 된다.

관찰해 보면, 생명은 생명으로부터 번식을 통해 태어난다. 따라서, 생명을 가능케 하는 모종의 <생명 에너지> 가 생명으로부터 생명으로 전해지고, 생물체를 구성하는 요소는 생물체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생기론). 그러나, 프레드리히 뵐러가 유기물인 요소를 합성해 낸 이후 단순한 화학 반응으로도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생기론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그림 2). 예컨대, 지구 상 모든 생명체의 기초를 이루는 단백질과 유전 물질은 그 기초 물질인 아미노산과 핵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는 고전이 된 밀러-유레이의 실험에서는(해럴드 유레이는 지도 교수였고, 스탠리 밀러는 유레이의 학생이었다) 지구의 초창기에 존재했으리라 생각된 메테인, 암모니아와 같은 물질들을 플라스크에 채워 넣고, 번개가 치는 것을 모사한 고에너지 전기 방전을 지속적으로 가해 주었다. 지속된 전기 방전을 가하자, 플라스크에는 점차 침전된 물질들이 쌓였고, 이것을 다양한 연구진이 분석한 결과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물질들인 아미노산과 핵산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그림 3). 즉, 지구상의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초적인 '블럭' 들은 초창기 지구에서 아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미주 3).


그림 3. 나사 우주생물학 연구소의 밀러-유레이 실험. 최근의 보고에서는 플라스크의 <유리> 성분이 촉매 작용을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 일부 연구자들은 그래서 유리와 같은 규소 재질이 풍부한 진흙탕에서 생명이 처음 생겨났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일명 진흙탕 가설(community clay hypothesis).


그러나, 우리에게 레고 블럭 한 무더기가 주어져 있다고 하여 그것이 완성된 멋진 작품인 것은 아니며, 잉크와 멋들어진 펜, 양피지 무더기가 있다고 하여 그것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아니듯, 물질 그 자체는 생명이 아니다. 아주 간단한 다른 예시로 바꾸어 보자: 살아 있는 동물에게 산소를 몇 분만 공급하지 않으면 그 동물은 죽은 동물이 된다. 그러나 이 동물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 그 자체는 몇 분 전이나 별 차이가 없다. 이 사이에서 사라진 생명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왜 몇 분 사이에 생명은 사라지고, 삶은 죽음이 되었는가?



생명 = 물질 + 정보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는 최근의 저술 <기계 속의 악마> (바다출판사, 류운 역, 2023) 에서 "생명=물질+정보" 라는 새로운 생명의 패러다임을 제시한다(그림 4). 우리가 이전 '창발' 에 대해 알아보며(글 31), 요소들이 갖는 배열과 규칙이 곧 잃어버린 틈새를 채우는 것들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즉, 물질들이 구성되고 이동하고 반응하는 일사분란한 그 규칙 자체가 곧 생명이며, 생명이란 물질이 아니라 반응하는 패턴, 곧 그 속에 담긴 정보 자체라는 것이다. 혈액을 잃거나, 산소가 떨어지거나, 뇌의 특정 부위를 다침으로써 생명체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생명의 요소들이 규칙을 따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더 이상 아무런 법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한다면 그 국가 공동체는 즉각적으로 해체될 것이다(그 구성 요소는 그대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죽음이란 곧 생명 현상을 일으키는 반응의 패턴들이 비가역적으로 지속되지 못하게 변화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그림 4. 폴 데이비스의 <기계 속의 악마>. 본 글은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작성되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그러나, 일견 간단히 정의한 <죽음> 이 무엇인지는 사실 인간의 기술 발전에 의해 다르게 정의되어 왔는데, 앞서 말한 '생명 활동이 비가역적으로 정지되는 것' 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우리가 마치 배터리 잔량처럼 생명량 잔량을 디스플레이에 띄우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대개 죽음이라는 것은 심장과 폐 기능의 정지, 곧 맥박이 멈추고 호흡을 하지 않는 것으로 짐작되어 왔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심폐 기능이 멈추어도 이를 보완하거나 유지시킬 수 있게 되었고(대표적으로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는 혈액을 뽑아내고, 혈액에 산소를 채워 넣어서, 다시 주입함으로써 폐와 심장의 기능을 보완한다), 이에 따라 명백히 어느 순간이 '죽음' 인 것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점점 회색지대로 옮겨 가고 있다(그림 5). 극단적인 사고 실험으로, 목이 잘려나갔더라도 먼 미래에는 뇌를 보존하여 기억과 의식을 유지시킬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죽음인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이 사망했는지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을 일부 전문가에게 위임하여 해결하고 있다.


그림 5. 조영제를 이용한 뇌 혈관조영술. 뇌사한 환자들에게는 뇌 혈관에서의 혈액 흐름이 관찰되지 않는다. 이들을 사망으로 보아야 하나? 장기기증에 있어 이는 중요하다.*

* M. Pan, Nat. Comm, 2021.


생명의 래칫


차치하고, 이러한 복잡한 생명의 패턴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우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아주 원시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대장균 한 마리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화학/물질적 상호 작용의 일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대장균 5경 마리(5*10^16) 의 무게에 달하는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우리가 알 리 만무하다. 양자 역학, 블랙홀, 우주의 탄생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원자핵을 쪼개고 융합하며 에너지를 얻는 우리의 이해로도 아직 생명의 이해는 초라할 정도인데(커버 사진, 알려진 인간에서의 물질 대사 과정에 대한 간단한 도식), 이러한 복잡성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림 6. 래칫 구조. 팔(2번)의 존재와 비대칭적으로 생긴 톱니 덕분에 이 래칫은 시계 방향으로는 돌 수 없지만 반시계 방향으로는 자유롭게 회전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래칫 효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래칫이라는 것은 기계 부품 중 하나로, 한쪽 방향으로 톱니가 난 톱니바퀴와 걸림쇠 구조를 가지고 있다(그림 6). 톱니가 비대칭성을 가지고 나 있기 때문에, 이 톱니바퀴는 한쪽 방향으로는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지만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려고 하면 걸림쇠가 막아선다. 따라서, 래칫 구조는 앞뒤 방향으로 자극이 주어지더라도 한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을 가능케 한다. 생명체는 이전 글에서 다룬 것과 같이, 스스로를 똑 닮은 복제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따라서, 한 번 자기를 복제하는 생명체가 생겨났다면, 이 생명체가 한 번 구축해 낸 유용한 상호작용은 절대로 그저 사라지지 않는다(미주 4). 이들이 끊임없이 복제하며 대를 건너 물려주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 세대의 복제를 거치다가 생명에 좀 더 유용한 상호작용을 만들어 내면 그것은 복제를 통해 개체군 안에 퍼져 나갈 것이다. 이와 같은 진화의 일방적 회전을 통해, 래칫은 끔찍하게도 느리지만 한쪽 방향으로 돌아 나갔고,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물질 대사와 정보의 패턴들은 지금의 우리를 이루게 된 것일 테다.


그렇다면, 이러한 물질 대사는, 즉 생명을 특징짓는 복잡한 화학적 활동은 어떤 조건에서 일어날까? 그것이 보편적이기는 할까? 지구 상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조건들은 범-우주적인 것일까? 다르게 말해, 우주 모든 곳에 적용되는 보편적 생물학은 존재할까? 이 질문은 일견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첫째로 지구상에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을지를 답하기 위해 중요하다. 두 번째로, 이 광활하고 드넓은 우주에 다른 생명이 있을지, 있다면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답하기 위해 중요하다(이러한 주제를 연구하는 학문을 우주생물학astrobiology 라고 부른다). 생명이 어디서 나타나는지 알아야, 그곳을 찾아볼 것이 아닌가? 다음 글에서는, 이와 같은 질문을 다룬다.



미주 Endnote

미주 1. 프리온이라고 하는 단백질 구조는 주변의 다른 단백질을 자신의 모양대로 전환시켜 마치 번식을 하는 것과 비슷한 양태를 보인다. 또한 일부 핵산들은 자기 자신을 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물질이 물질을 낳은 것 뿐, 이것을 생명의 일환인 번식으로 보지는 않는다.

미주 2. 그러나 이러한 '설명으로서의 신' 은 다른 모순적 질문을 불러온다. 아주 복잡한 생명체를 설계할 만큼 복잡한 신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 신을 그렇다면 다른 더 높은 신이 설계하였을까? 이와 같은 논증은 무한한 재귀적 굴레에 빠진다. 신은 그 복잡함성에도 불구하고 그냥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플라스는 우주에 대한 책에서 왜 창조주를 논하지 않았냐는 나폴레옹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폐하, 저에게는 그 가정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미주 3. 사실 이는 당연한데, 우리도 무언가를 지어야 한다면 주변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것을 이용할 것이지 않겠는가? 숲에서는 나무 오두막을, 벌판에서는 돌로 지은 집을, 북극에서는 눈과 얼음으로 집을 짓듯이, 초기의 생명체들도 자신에게 가용한 가장 많은 물질들로 스스로를 빚어냈을 것이다. 그래야 쉽게 유지보수하고, 자신을 복제할 수 있을 것이므로-누구도 다이아몬드로 집을 짓진 않는다!

미주 4. 이 생명체가 절멸하지 않는 이상은. 그러나 가끔씩은 그런 일도 생기며, 우연한 사건사고로 인해 유전자와 유전 형질이 싹 사라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라고 부르는데, 간단한 예시를 들자면 한 집단에서 일부 사람들이 떨어져 나와 새 집단을 이룰 때, 이들이 우연한 계기로 다 동일한 유전 형질을 가지고 있다면 이 다양성은 사라지게 된다. 대표적으로, 유라시아를 떠나 북미에 정착한 사람들은 우연한 계기로 모두 혈액형이 O 형이었고 따라서 북미 원주민은 모두 O 형의 혈액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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