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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리 Nov 22. 2023

비혼 주의자 이 과장, 청첩장 돌리다

36살 늦은 가을. 팀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는 식사 자리. 김 차장님이 나를 놀린다. 

“자기 비혼식 올릴 때 꼭 초대하겠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청첩장이냐?” 
비혼 주의를 노래 부르며 다니던 내가 입사 11년째 되던 해에 결혼을 결심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남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이 회사에 나는 꽤 만족하고 다니고 있었다. 입사 후에 대리, 과장 승진까지 일사천리로 해왔고, 업무 특성상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CEO 보고도 직접 들어가는 전사에 몇 안 되는 실무자 중 한 명이었다. CEO 지시사항이라는 말 한마디에 관련 부서들은 내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협조해 주었다. 기라성 같은 임원들도 내 말을 적극 지지해 주고 힘을 실어주었다. 재미있었다. 회사 내에서 확실히 인정받고 있다는 만족감이 나를 언제나 고양시켰다. 내 생활의 모든 것이 회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회사가 일이자 취미였고 내 인간관계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 여자 중 부장까지 승진한 사람은 전사에 단 두 명이었다. 모두 50대 미혼. 두 사람은 올드미스의 대명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사람들은 ‘저러니까 결혼 못 했지’를 뒤에서 단골 농담으로 주고받았다. 미혼인 남자가 있으면 서로를 엮어주려는 뻔한 장난도 끊이지 않았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오랫동안 회사에 다닌 여자 선배들도 있었다. 그들의 일은 대부분 메인 직무가 아닌 지원 업무였고, 그저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회사에 오래 다니는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였다. 반복되는 승진 누락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육아휴직 후 돌아온 사람들 중 일부는 회사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화장실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친정 엄마, 어린이집 선생님과 끊임없이 전화를 해댔다. 지친 얼굴로 편한 옷을 입고 다니며 주어진 일을 쳐내는 것에 급급해 보였다. 회사는 그냥 아이 기저귀 값 버는 일터가 된 것 같았다. 젊고 욕심 넘치던 눈빛이, 지치고 목적 잃은 눈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성공한 축에 속했다. 입사 후 만난 내 전임자 최 대리님은 회사를 10년 넘게 다닌 두 아이의 엄마였는데 나는 퇴사 예정인 최 대리님의 후임으로 채용되었다. 그녀가 말해준 퇴사 이유는 이것이었다. 팀장이 면담을 하면서 ‘요즘 회사 생활하는데 힘든 점은 없냐’고 묻길래 ‘요즘 회사일이 많아 애 둘 키우면서 다니는 게 좀 힘들긴 하다’고 했더니 ‘아이고,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야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최 대리님이 퇴사한 후 소문에 의하면 남편분이 돈을 잘 벌어서 프랜차이즈 키즈카페를 차려줬다고 했다.


옆 교육팀에는 민 과장님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여러 후배들의 신망을 받는 굉장히 따뜻한 인품의 여자 선배였다. 신입사원 병아리의 눈에는 과장까지 승진한 여자 선배의 존재가 굉장히 높고 대단해 보였는데 몇 달 지나 민 과장님의 퇴사 소식을 듣게 되었다. 민 과장님은 사내에서 결혼한 CC였는데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이었다. 두 번째 출산휴가를 써야하는 상황이 되면서 사내 부부였던 민 과장님은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이 스스로의 결정이었는지 회사로부터 어떤 권고를 받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제는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조직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지만 사회 초년생 시절 여자 선배들의 출산 후 거취는 회사 생활 내내 마음속 어딘가 깊이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기 위해 결혼은 후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혼자 벌어 혼자 여행도 마음껏 다니고,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혼자의 삶이 꽤 재미있고 만족스럽기도 했다. 결혼보다는 일이 더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로 느껴졌다. 그래서 팀 사람들에게 비혼 주의를 공표하고 다니곤 했다.


하지만 쓸쓸한 올드미스는 되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자존심은 있었나 보다.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하필 그게 사내 연애였다. 회사일 말고는 안중에도 없는 삶을 살았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중간에 한 번 헤어진 적도 있었지만 회사에서 얼굴 마주치며 지내다 보니 결국 재결합하게 됐다. 지금의 남편은 평범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연애보다는 결혼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재결합 후 반년 정도 지나자 결혼 얘기를 한 번씩 툭툭 던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 얘기를 수시로 꺼내고 “근데 우리는?”이라는 농담 아닌 진담을 툭툭 던졌다. 


지금의 남편은 뜨거운 불꽃이기보다는 따뜻한 담요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상당히 불같은 면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라면 내 뜨겁고 불안정한 불꽃을 편안한 담요로 감싸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주는 데서 정신적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친구관계에서나 연애관계에서나 받을 때보다는 줄 때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 결혼이라는 선택지 앞에서도 그동안 지켜왔던 나의 가치관보다는 소중한 사람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맞춰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라면, 결혼을 하고서도 나만의 방향성을 지켜 나가며 내 인생을 잘 꾸려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회사 사람들의 많은 축하를 받으며 결혼이라는 이름의 게이트로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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