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좋아하지 않으려던 날들

〈1화. 그 봄, 네가 내 옆에 앉았다〉

by 담치씨

입학한 지 일주일쯤 됐을 때였다.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웠고,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엔 겨울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교실 안은 떠드는 목소리와 분필 가루, 그리고 갓 세탁한 교복 셔츠 냄새로 가득했다.

나는 창가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노트를 펴서 날짜를 적으며, 이번 학기엔 조용히 지내자고 다짐했다.
괜히 나서거나, 누군가와 얽히는 일 없이,
평범하게, 눈에 띄지 않게.
그게 내가 살아가는 법이었으니까.

그때 담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학생이 왔어. 인사해.”

문이 열리고, 조용한 발소리가 바닥을 스쳤다.
아이들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남자애 한 명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도윤이에요.”

그 애는 말이 적고 표정이 단정했다.
낯선 공기가 따라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햇살에 살짝 비치며 반짝였고,
눈은 깊었지만, 그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저기 비었지? 도윤아, 거기 앉아.”
담임의 말에 그 애가 내 옆으로 걸어왔다.
가방끈을 느슨하게 잡은 손,
단정하게 구겨진 셔츠,
잠깐 마주친 시선.
아무 일도 아닌 순간이었는데, 이상하게 공기가 달라졌다.

“안녕.”
그 애가 내 옆에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응.”
짧은 대화, 그게 전부였다.

그 후로 수업이 시작됐고,
칠판에 분필이 긁히는 소리, 창가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
그리고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연필 긁는 소리.
그 리듬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나는 괜히 노트를 넘기며 집중하려 했지만,
손끝이 자꾸 어딘가 어색하게 떨렸다.

점심시간이 되어 교실이 시끄러워졌다.
친구가 급식실로 가자며 내 팔을 잡아끌었을 때,
뒤에서 누군가의 트레이가 내 팔에 닿았다.
“미안.”
고개를 돌리니 도윤이었다.
그 애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트레이를 잡아줬다.
그 손끝이 잠깐 내 손등에 닿았다.
아주 짧게, 정전기처럼.

나는 아무렇지 않게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그 순간부터 어딘가 머릿속이 멍해졌다.
급식이 무슨 맛이었는지, 누구와 앉았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오후,
도윤은 수학 시간에 연필을 떨어뜨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여 그걸 주웠다.
“이거.”
“아, 고마워.”
그 애가 미소를 지었다.
그게 처음이었다.
조용히 웃는 얼굴이었는데,
햇빛이 교과서 위를 스치며 그의 옆모습을 밝혀줬다.
그게 이상하게 예뻐 보였다.

나는 괜히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빨리 뛰어서가 아니라,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조금 낯설었기 때문이다.
설렘이라는 감정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는 건가.
평범한 하루 속에서 갑자기 생긴 작은 사고처럼.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길,
복도 끝 창문 너머로 오후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도윤은 친구 몇 명과 웃으며 복도를 지나가고,
나는 그 장면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그 애가 웃으면, 이상하게 나도 웃고 싶어졌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우연히 그 애를 다시 봤다.
같은 노선, 몇 칸 앞자리.
그 애는 이어폰을 한쪽만 꽂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햇빛이 유리창을 타고 얼굴에 닿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마음 한켠이 간질거렸다.

버스가 급정거하는 순간,
그 애의 가방이 내 팔에 닿았다.
짧은 순간이었는데,
그 접촉이 남긴 열기가 오래갔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풀며,
오늘은 그냥 그런 하루였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친구가 생기지도,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도윤의 얼굴이 자꾸 생각났다.
그 애가 웃던 얼굴, 필통을 건네던 손끝,
햇살 아래 반짝이던 교실의 공기까지.
모든 게 어쩐지 내 안에 남았다.

나는 그런 걸 믿지 않는다.
첫눈에 반한다거나,
하루 만에 마음이 흔들린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믿고 싶었다.

그날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마치 봄 햇살이 책상 위에 머무르듯,
그날의 공기와 온도가 내 안에 잠시 머물렀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주 조용히 시작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