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별일 아닌 대화
아침부터 교실이 시끄러웠다.
새 학기 한 달째.
이제 애들끼리 어느 정도 친해져서,
자리마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노트를 펼쳤다.
옆자리는 도윤.
여전히 말수가 적고, 조용했다.
“야, 도윤. 필통 좀.”
앞자리 남자애가 장난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도윤은 아무 말 없이 필통을 내밀었다.
“야, 말은 좀 하고 줘라.”
“했잖아.”
“했긴 뭘 해.”
애들이 웃었다.
나는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도윤이 작게 내 쪽으로 말했다.
“조용하면 이상해?”
“응. 너무 조용하면 좀 무섭지.”
“그럼 말 많이 해볼까?”
“됐어. 그건 더 무서울 듯.”
도윤이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의외로 따뜻해서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괜히 노트에 집중하는 척했다.
1교시 자습시간.
연필 긁는 소리만 들리던 교실.
그런데 내 연필이 부러졌다.
타이밍 딱 맞게 도윤이 샤프를 내밀었다.
“이거 써.”
“괜찮아.”
“어제도 그랬잖아.”
그 말투가 묘하게 익숙하게 들렸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받았다.
“고마워.”
그 짧은 순간,
손끝이 닿았다.
별일 아닌데도 심장이 툭, 했다.
연필심 하나 바꿨을 뿐인데.
쉬는 시간,
앞자리 애들이 수학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야, 답 32 아니야?”
“아니라니까 28이야.”
도윤이 무심히 말했다.
“28 맞아.”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와, 천재다.”
“그냥 풀면 나와.”
그 말투가 너무 담담해서 웃음이 났다.
나는 턱을 괴고 그를 봤다.
“너 공부 잘하지?”
“그냥 하는 거지.”
“그냥 해도 되면 반칙이지.”
“그럼 너도 그냥 해.”
“어이없다.”
도윤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솔직히 좀 반칙이었다.
점심시간.
급식 줄에 서 있는데
뒤에서 도윤이 내 팔을 톡 쳤다.
“국 흘릴 거 같아.”
“아니거든.”
“흘리면 내가 안 흘린 걸로 해줄게.”
“그게 뭐야.”
“서비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하, 웃어버렸다.
“야, 너 말투 왜 이래.”
“그냥 해봤어.”
“이상해. 웃긴데 이상해.”
“그럼 성공.”
그 애가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생각보다 크고 맑았다.
순간, 급식실의 소음이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밥을 다 먹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친구가 슬쩍 물었다.
“야, 너희 둘 친하냐?”
“아니, 그냥 짝꿍이야.”
“그냥?”
“응, 그냥.”
입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속으론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그냥’이라는 말이
괜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오후 자습시간.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책상 위에 고였다.
도윤은 머리를 괴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집중이 안 돼서 낙서를 했다.
연필로 ‘이도윤’이라고 쓰고,
얼른 지웠다.
‘미쳤냐, 나 진짜.’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그때 도윤이 물었다.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근데 너 아까부터 웃는 거 왜 그래.”
“웃었어?”
“응. 되게 이상하게.”
“그럼 웃지 말까?”
“아니, 웃어도 돼.”
그 말이 그냥 지나갔는데,
이상하게 부드럽게 박혔다.
‘웃어도 돼.’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하교 시간.
교문을 나서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이 없었다.
나는 가방으로 머리를 가렸다.
“야, 너 우산 없어?”
도윤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없는데?”
“같이 써.”
“됐어. 나 금방 갈 건데.”
“거짓말.”
“아니라니까.”
“그럼 뛰지 말고 그냥 같이 가.”
도윤이 내 머리 위로 우산을 들었다.
비 냄새가 가까이서 났다.
우산 아래,
그 애의 어깨와 내 팔이 닿았다.
가까워서 숨이 막혔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빗소리 사이로 심장 소리가 섞였다.
“너, 원래 이렇게 친절했냐?”
“원래는 모르겠고.”
“오늘만 특별한 거야?”
“응. 오늘은 비 오잖아.”
대답은 간단했는데,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집에 도착하니 옷이 반쯤 젖어 있었다.
가방을 풀며 손목을 보니
우산 잡던 손끝이 아직 따뜻했다.
핸드폰을 켜니
단톡방에 누가 사진을 올려놨다.
‘비 맞은 애들 인증ㅋㅋㅋ’
그중에 도윤이 있었다.
머리가 젖은 채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났다.
비 냄새가 여전히 나는 것 같았다.
심장이 천천히 뛰었다.
오늘은 별일 없던 하루였는데,
자꾸 생각났다.
그 짧은 대화, 그 웃음,
그리고 우산 아래의 공기.
별일 아니었는데,
그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