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복도 끝에서 마주친 날
주말이 지나고, 교실 공기가 달라졌다.
누가 단톡에 사진을 올렸다.
‘비 맞은 짝꿍 커플ㅋㅋㅋ’
‘둘이 뭐야?’
그 밑에 웃는 이모티콘이 수십 개.
나는 모른 척 교과서를 폈다.
도윤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평소처럼 조용했지만,
오늘따라 그 조용함이 낯설게 느껴졌다.
“야, 도윤이랑 진짜 뭐야?”
앞자리 애가 물었다.
“뭐긴, 그냥 짝꿍이지.”
“그냥?”
“그냥이라니까.”
“그냥인데 왜 웃어?”
“웃은 게 아니라…”
말을 얼버무렸다.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연필을 굴렸다.
그 무표정이 괜히 신경 쓰였다.
‘그냥 짝꿍이라는데 왜 저렇게 아무렇지 않지?’
‘진짜 아무렇지 않은 건가?’
쉬는 시간,
도윤이 갑자기 내 펜을 집었다.
“이거 네 거야?”
“응. 왜.”
“네 이름이 쓰여 있어서.”
“그건 원래 내 거지.”
“이름을 굳이 쓰는 게 귀엽다.”
“야, 그게 왜 귀여워.”
“그냥 그래 보여서.”
그 말 한마디에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그만 놀려.”
“안 놀렸는데.”
“지금 웃었잖아.”
“그건 네 반응이 웃겨서.”
서로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도윤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빛이 들어왔다.
말없이 웃던 그 표정이,
심장이 잠깐 덜컥할 만큼 진심 같았다.
점심시간.
친구들이 장난쳤다.
“야, 도윤이랑 밥 같이 먹지?”
“아니, 그냥 앉은자리 그대로야.”
“둘이 뭐 있네~”
“진짜 없다니까.”
나는 애써 웃었지만,
도윤이 그 대화를 들었다는 걸 알고
괜히 어색해졌다.
그날 급식은 평소보다 맹맹했다.
숟가락을 들고 있었는데
도윤이 작게 말했다.
“왜 이렇게 말이 없냐.”
“그냥 피곤해서.”
“거짓말.”
“진짜 피곤하다니까.”
“나 때문이야?”
그 말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니.”
“근데 표정이 그래.”
“그냥… 요즘 이상해서 그래.”
“이상해?”
“응. 네가 왜 신경 쓰이는지도 모르겠고.”
도윤은 말없이 밥을 한 숟갈 떴다.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체육 시간.
팀을 나누는데 애들이 장난쳤다.
“야, 도윤이랑 수아 팀 해라~”
“그만하라니까 진짜.”
애들이 웃는 소리 사이로
도윤이 내 쪽을 봤다.
“그럼 진짜 같이 하자. 괜히 피하지 말고.”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누가 피했는데.”
“아까부터 너 눈 안 마주치잖아.”
“눈 마주치면 뭐.”
“그러면 아까처럼 긴장하잖아.”
“… 너 진짜 이상하다.”
도윤이 짧게 웃었다.
“그래도 지금 웃잖아.”
그 말이 나를 잠시 멈추게 했다.
그 애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내 안의 감정을 정확히 건드렸다.
체육이 끝나고 복도에 나왔다.
하늘은 흐렸고,
운동화 밑창에 먼지가 잔뜩 묻었다.
뒤에서 누가 불렀다.
“수아야.”
돌아보니 도윤이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눈앞으로 흘러내려 있었다.
“너 아까 나 화났지?”
“아니.”
“거짓말.”
“진짜 아니라니까.”
“나한테 그런 말 잘 안 하잖아.”
“도윤아, 네가 너무 잘 알아서 싫을 때 있어.”
“싫다고?”
“아니, 그냥… 다 들켜버릴까 봐 불안할 때 있단 말이야.”
도윤이 잠깐 멈췄다.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나도 그래.”
“뭐가?”
“너한테 들킬까 봐 불안할 때.”
그 말이 공기 중에 머물렀다.
누군가 웃거나 장난치지 않는,
완전히 정적의 순간.
멀리서 종이 울렸다.
도윤이 작게 말했다.
“또 타이밍이.”
“맨날 그래.”
둘 다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이상하게 먹먹한 공기가 남았다.
방과 후.
교실 불이 꺼지고,
가방을 메고 나가는 길.
창문 유리에 붉은 노을이 비쳤다.
나는 가만히 멈춰 섰다.
오늘 하루 내내 그 애가 떠올랐다.
장난, 눈빛, 말투, 그리고 복도 끝의 공기까지.
좋아하지 않으려 애쓰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 바쁘게 움직였다.
집에 와서 핸드폰을 켰다.
단톡에 또 사진이 올라왔다.
‘오늘 체육 짝꿍~’
사진 속 도윤이 내 옆에서 웃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사진을 확대했다.
손끝이 화면을 따라 움직였다.
그 옆모습이,
웃는 표정이,
이상하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나, 진짜 왜 이러지.’
괜히 핸드폰을 켰다 껐다 하다가
메시지 하나를 적었다.
‘내일은 그냥 평범하게 지내자.’
보내려다 멈췄다.
그 문장이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진심처럼 들릴까 봐.
결국 보내지 않았다.
그 대신,
눈을 감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좋아하지 않으려던 날들 중에,
오늘이 제일 어려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