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너를 좋아하지 않으려던 날
요즘 도윤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짧게라도 대답해주던 애였는데,
요즘은 고개만 끄덕이고
가끔은 그조차도 없었다.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서 자주 일어났다.
“물 마시고 올게.”
“잠깐 복도 다녀올게.”
그 말이 이제 하루 일과처럼 들렸다.
그냥 잠깐의 습관일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겠게도
그 애의 어깨 끝이 자꾸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모의고사가 다가오면
누구든 예민해지니까.
하지만 도윤은 그런 피곤함과는 달랐다.
어디선가 마음이 잠깐 멈춰 있는 사람 같았다.
공부 시간에 눈을 들어 칠판을 보면,
그 애는 언제나 창밖을 보고 있었다.
햇살 속 먼지들이 반짝이고,
그 사이로 도윤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빛났다.
그게 자꾸 신경 쓰였다.
“야, 너희 요즘 말도 잘 안 하지 않아?”
점심시간에 친구가 물었다.
“무슨 말이야.”
“아니, 도윤이 요즘 분위기 이상하던데.”
“그냥 공부하느라 그런 거야.”
“그거야 다 공부하잖아. 너희 둘은 달랐잖아.”
그 말에 나는 웃었다.
“무슨 소리야. 달라지긴.”
하지만 속으로는 인정하고 있었다.
진짜, 달라진 게 맞았다.
그날 쉬는 시간,
도윤이 자리에 없었다.
창문으로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그 애가 혼자 걷고 있었다.
교복 자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뒷모습이 조금 외로워 보였다.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그 뒷모습을 오래 봤다.
바람이 교실 안으로 스며들어
내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때 문득,
‘아, 나 지금 이 사람 마음이 궁금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수업이 끝난 오후.
교실엔 우리 둘만 남았다.
도윤은 고개를 숙인 채
노트를 덮고 있었다.
햇빛이 교실 안으로 길게 들어와
그 애의 손등을 비췄다.
조용한 공기 속에 분필가루가 흩날렸다.
“도윤아.”
“응.”
“요즘 왜 그래?”
“나?”
“응, 요즘은 네가 나를 좀… 피하는 것 같아.”
그 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고개를 들더니
작게 웃었다.
“그럴 리가 있나.”
“진짜 없어?”
“응.”
그 목소리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어딘가 멀리 있는 사람처럼,
이미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 같았다.
“괜히 그런 기분이 들어.”
“기분 탓이야.”
그 애가 말했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하교길,
교문 앞에서 친구들이 장난을 쳤다.
“야, 지난번에 우산 같이 썼다며?”
“둘이 뭐야~ 분위기 이상해졌어.”
“아니야, 그런 거.”
“그럼 왜 얼굴이 빨개?”
친구들은 웃으며 흩어졌지만,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날부터 이상하더라.’
그 말.
나도 그날부터
뭔가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날 이후,
도윤은 내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 애가 웃던 얼굴을 찾게 됐다.
밤에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었는데
공책 사이에 작은 쪽지가 있었다.
‘숙제 여기까지 했어?’
그 애의 글씨였다.
단순한 메모인데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 글씨만 봐도
도윤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그 쪽지를 손바닥에 쥐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어떤 마음은 글씨로 새겨지는구나.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눈이 시큰해졌다.
다음 날,
학교 가는 길에 바람이 불었다.
햇살은 따뜻했는데
왠지 모르게 공기가 차가웠다.
교실 문을 열자
도윤이 창가 쪽을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고개를 들었지만
눈은 맞추지 않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스르르 멀어지는 소리가 났다.
잡을 수도, 부를 수도 없어서
그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날 따라,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다.
마음이 흔들렸던 이유를,
그 애는 알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