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좋아하지 않으려던 날들

9화. 말하지 못한 마음의 무게

by 담치씨

요즘 수아는 나를 자꾸 본다.
그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애의 시선이 닿는 순간,
심장이 괜히 요동쳤다.

예전엔 쉬는 시간마다 이야기하던 사이였는데
요즘은 말 한마디가 어렵다.
같이 있던 시간도 줄었다.


“물 마시고 올게.”
“잠깐 복도 다녀올게.”


이런 말들이 내 하루의 습관이 됐다.

거짓말이었다.
진짜 이유는,
그 애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곧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걸 눈치채면 어쩌나 싶었다.


며칠 전,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비행기표 끊었다. 5월 25일이다.”
“이번에도?”
“응. 더 늦으면 안 돼.”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면,
그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수아 얼굴을 마주보는 게 조금 두려워졌다.
같이 웃으면,
더 떠나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물었다.


“야, 도윤. 너 요즘 수아랑 말도 안 하냐?”
“공부 좀 하느라.”
“둘이 싸운 거 아냐?”
“아니야.”


웃으며 대답했지만,
수아가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 애가 고개를 살짝 숙이는 걸 봤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괜히 피했는데,
그게 상처로 전해졌을까 봐.


수업이 끝난 오후,
교실엔 우리 둘만 남았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고,
분필가루가 공기 속에 반짝였다.


“도윤아.”
“응.”
“요즘 왜 그래?”
“나?”
“응, 요즘은 네가 나를 좀… 피하는 것 같아.”


그 말에 손끝이 떨렸다.


“그럴 리가 있나.”


억지로 웃었다.


“괜히 그런 기분이 들어.”
“기분 탓이야.”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목소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그 애가 눈을 마주치려 하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마주치면,
마음이 다 들켜버릴 것 같았다.


하교길.
교문 앞에서 친구들이 또 장난을 쳤다.


“야, 지난번에 우산 같이 썼다며?”
“둘이 뭐야~ 분위기 이상하던데.”
“야, 그런 거 아니야.”


수아가 말했지만
목소리가 작았다.

그 애의 귀끝이 빨갰다.
그 모습을 보는데
괜히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아팠다.


‘그날 비 오는 날 이후로,
그 애의 눈빛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그걸 생각하니까,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책상 위에 쪽지가 하나 있었다.


“도윤아,
나는 네가 요즘 멀어지는 게 싫어.”


짧고 반듯한 글씨체.
수아였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누가 볼까 봐 얼른 종이를 접었다.
가슴이 이상하게 답답했다.

지금이라도 뭐라도 쓰고 싶었다.


“사실 나도 네가 멀어지는 게 싫어.”


그 말을 적고 싶었지만,
적는 순간 떠나는 게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종이를 가방에 넣고
하루 종일 그 안을 만지작거렸다.


하교 종이 울렸다.
창밖이 어둑해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폈다.
교문 앞에 수아가 서 있었다.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가자.”
“괜찮아. 나 그냥 뛸게.”
“비 오잖아.”
“오늘은 혼자 가고 싶어.”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찔렀다.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우산을 내밀었다.


“그래도 이거 써.”
“그럼 넌?”
“괜찮아. 나 금방 갈 거야.”


수아가 고개를 숙이며
작게 고맙다고 했다.

그 애는 우산을 펴고 천천히 걸었다.
나는 그 우산이 멀어지는 걸
한참 동안 바라봤다.


집에 와서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았다.
가방을 열자
수아가 남긴 쪽지가 손끝에 닿았다.


“나는 네가 요즘 멀어지는 게 싫어.”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글씨를 따라 손가락이 멈췄다.
글자마다
내가 하지 못한 말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나는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너에게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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