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너를 좋아하지 않으려던 날들
봄이 끝나가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길게 교실 바닥을 덮었다.
칠판 위엔 ‘5월 25일 금요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날따라 모든 게 느리게 흘렀다.
종소리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심지어 내 호흡까지도.
며칠 전,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장난처럼 말했다.
“야, 도윤 전학 간대.”
“진짜야? 언제?”
“이번 주 금요일이래. 외국으로.”
그 말은 금세 교실을 돌았다.
누군가는 부럽다고, 누군가는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책상만 바라봤다.
그때 시선이 느껴졌다.
수아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오래 붙잡을 수 없었다.
그 애의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한 장면이
그날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굣길,
수아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너, 전학 간다며.”
“응.”
“언제?”
“금요일.”
“갑자기네.”
“갑자기 정해진 건 아니야.”
“근데 왜 말 안 했어.”
“말하면… 더 힘들까 봐.”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입안이 말라붙었다.
거짓이었다.
진짜 이유는,
그 애가 울 것 같아서였다.
“그럼, 우리…”
수아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햇살이 그 애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은
수아에게 한 것도, 나에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버티기 위한 말이었다.
어젯밤,
짐을 싸다 말고 창문을 열었다.
늦은 바람이 천천히 커튼을 흔들었다.
그 바람 사이로
수아가 웃던 목소리가 스쳤다.
그때 알았다.
이별은 준비가 되어서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이 다 됐을 때 오는 거라는 걸.
그리고 오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복도로 나갔고,
교실엔 우리 둘만 남았다.
“너 언제 출발해?”
“오늘 저녁.”
“그래.”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안에 모든 게 담겨 있었다.
나는 가방을 열고
샤프를 꺼냈다.
수아가 자주 빌려 쓰던,
손끝의 힘이 닿아 있던 그 샤프.
그 샤프를 수아에게 내밀었다.
“이거 네 거잖아.”
“아니, 이제 네 거.”
“왜.”
“그냥… 나 대신 써.”
그 애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너는 왜 항상 조용하게 이런 말 해.”
“그게 나니까.”
“진짜 치사하다.”
“그래도 지금 웃었잖아.”
“아니, 안 웃었어.”
“지금 웃고 있잖아.”
그 웃음은
눈물이 섞인 미소였다.
그 순간,
모든 소리가 멈춘 것 같았다.
햇살이 교실 안으로 스며들고,
그 애의 눈동자에 작은 빛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눈에 새기듯 바라봤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으니까.
아이들이 모두 떠난 후,
나는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책상 위엔 수아의 노트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노트 첫 장을 펼치고,
볼펜으로 조용히 글을 썼다.
“피하려고 해도, 너무 가까웠던 시간.”
그리고 그 옆에
수아가 자주 쓰던 샤프를 올려두었다.
햇살이 그 위로 내려앉았다.
은빛 금속 부분이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그 애의 웃음처럼 보였다.
나는 복도를 걸어 나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정말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
창밖의 하늘이 저녁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손바닥 위엔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마음이 번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수첩을 꺼내
마지막 문장을 썼다.
“오늘 하루가,
내가 네 옆에 있었던 마지막 날이었다.”
“너를 좋아하지 않으려던 날들,
그게 내 하루의 전부였다.”
<END &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