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에서 다시 쉼표로

by 헤이즐

수차례의 실패와 깡통 끝에 나는 내 인생에서 주식투자를 완전히 지우기로 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차트를 보며 밤을 새우고, 손실에 잠 못 이루던 날들을 끝내고 싶었다. 주식투자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주식투자로 깡통을 몇 번 경험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실패와 손실이 쌓여갈수록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처음엔 "괜찮다, 다시 하면 돼"라고 위로해 주던 사람들도 점점 한심한 듯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또 잃었어?"

"그러게 왜 주식을 해?"


이런 말들이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점점 나를 피하는 것 같았고, 가족과도 갈등이 생겼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며 원망하고, 세상의 모든 일을 탓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문제는 주식투자 자체가 아니라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것은 20대 후반, 한 회사의 우리 사주제도에서 시작되었다.




첫 번째 만남


20대 후반, 입사한 회사에서 우리 사주제도가 시작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주식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접했다'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내 증권계좌에 주식이 들어오긴 했지만, 직접 매매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주는 취득 후 1년간 의무적으로 예탁해야 하는 제도였다.


그때만 해도 주식이 뭔지, 투자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냥 회사에서 "우리 회사 주식을 사면 좋다"라고 하니까 따라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1년 동안, 나는 매일 회사 주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는데, 어느새 그것이 습관이 되어있었다. 주가가 오르면 기분이 좋아지고, 내리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찾아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이미 내 안에서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 같다.




달콤한 착각


1년이 지났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회사 주식이 무려 100% 이상 수익을 기록한 것이다.


"야, 이거 완전 대박이잖아!"

"1년 만에 돈이 두 배가 됐어!"


사무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주변 동료들은 우리 사주를 매도하면서 입을 모아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식투자 해보자!"


마침 회사 주거래은행에서도 절묘한 타이밍에 임직원 특별대출 상품을 내놨다. "투자자금이 부족하시죠? 특별금리로 대출해 드립니다." 마치 우리의 투자 열정을 부채질하듯이.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주식투자는 어려운 게 아니구나. 그냥 좋은 회사 주식을 사서 기다리면 되는 거구나. 1년 만에 100% 수익. 이보다 쉬운 돈벌이가 또 있을까? 나는 이미 다음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었다.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의 15년 투자 여정이 시작되었다.




15년의 롤러코스터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내 인생에서 가장 격동의 시간이었다.


짜릿한 수익에 환호하며 술잔을 들기도 하고, 끝없는 폭락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며칠 만에 수익이 천만 원을 넘나들 때의 희열과, 마이너스 통장을 바라보며 느꼈던 절망감. 그 모든 희로애락의 끝에서 나는 3번의 깡통을 경험했다.


세 번째 깡통을 맞았을 때,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다시는 주식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이번엔 정말이다. 그렇게 나는 주식시장을 떠났다.


"새롭게 출발해 보자!" 스스로에게 외쳤지만, 막상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참 막막했다. 15년 동안 주식에만 매달려 살았던 내게 '새로운 출발'이라는 건 너무나 낯선 개념이었다.


가족들의 반응은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제야 정신 차렸구나. 제발 평범하게, 성실하게 살아라." "더 이상 우리 마음 아프게 하지 마라." 신신당부하는 가족들에게 "알겠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기운이 나지 않았다. 15년간 쌓인 실패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고,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은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뭔가 해야 했다.




치유의 시간


동기부여라도 받을까 싶어 유튜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자존감 회복', '실패 극복', '새로운 시작' 같은 키워드로 영상을 찾아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자기 계발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중에서도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이 특히 큰 도움이 되었다.


주식투자로 몇 번의 실패를 겪다 보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불평과 비난이 일상이 되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왜 나만 이런 일이 생기지?" "세상이 불공평해." "운이 나빴을 뿐이야."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카네기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그때부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집중했다. 회사에 출근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 조금씩, 정말 조금씩 나를 회복해 나갔다.


변화는 생각보다 느렸다. 어떤 날은 괜찮다가도, 문득 과거의 실패가 떠올라 다시 우울해지곤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운명 같은 재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15년 전 내가 주식을 처음 접했을 때 만났던 그 전문가였다. 세월이 흘러 머리는 희끗해졌지만, 여전히 예리한 눈빛으로 시장을 분석하고 있었다.


'아, 이분이 아직도 활동하고 계시네.' 옛 추억이 떠올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깐이었다.


"저도 사실 5번이나 깡통을 경험한 후에야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나는 멈춰 섰다. 5번이나? 나와 똑같네. 아니, 나보다 더 많이 실패했네.


요즘 유튜브에는 수많은 주식 전문가들이 나와서 방송을 한다. 솔직히 그중 대다수를 나는 믿지 않는다. 너무 쉽게, 너무 당당하게 성공담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하지만 이분은 달랐다. 자신의 실패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한참을 혼자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실패했을까?' '몇 번을 다시 했는데도 왜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혹시 내가 놓친 게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는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다시 해볼까?'


아니다. 떠나기로 했으니까 떠나자.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분명히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만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마침표를 지우고 쉼표를 찍다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거였다. 이미 바닥을 쳤고, 이제 조금씩 회복하며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주식투자를 시작한다는 게 과연 옳은 생각일까?


며칠을 고민한 끝에 가족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가족들의 눈에는 여전히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다. "또 시작하려고?" "제발 그만해라.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15년간 주식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가족들이 겪었는가. 나 혼자만의 실패가 아니었다. 온 가족이 함께 상처받고 힘들어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나는 차근차근 설득했다. "이번엔 정말 다를 거야. 작은 돈으로 시작할게. 그동안 배운 게 있어."


긴 대화 끝에, 가족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단, 조건이 있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 중에서 200만 원만. 딱 200만 원만."


두렵기도 했다. 또 실패하면 어쩌지? 가족들에게 또 실망을 안겨주면 어쩌지?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했다.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과거의 실패를 경험 삼아 이번엔 하나씩 차근차근해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렇게 나는 내 주식인생의 마침표를 지우고, 쉼표를 찍었다. 끝이 아니라 잠깐의 휴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었다.


15년간의 실패가 헛되지 않기를. 이제야 진짜 시작이라고 믿으며, 나는 다시 첫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