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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Sep 29. 2022

네덜란드에서 테크노 음악에 정 붙이기

테크노..? 그 테크노 말이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테크노'음악 하면 빠라밤빰빰 빠밤.. 빠라밤 빰빰 빠밤... 왠지 모르게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도 테크노 음악 열풍이 분 적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클론, 구준엽, 이정현 등 이름만 대면 알법한 가수들이 번쩍번쩍하는 조명과 빠른 박자에 맞춰 일명 '도리도리'춤을 추는 모습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일 거다. 그렇게 반짝 인기를 얻은 테크노는 한국시장에서 금방 사그라들었다. 한국의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테크노'음악이 뭔지 잘 모르는 눈치이다. 테크노라고 말하면 "테크노밸리 말하는 거야? 테크노타운?" 아파트 단지 이름이나 여러 가지 가전제품을 파는 곳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테크노(Techno) 음악은 그 역사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Electronic Dance Music - EDM)의 일부로 유럽에서 인기가 아주 대단한 음악 장르이다. 악기로 연주하는 밴드나 가수가 노래를 하는 일반 가요와는 달리 DJ가 세트를 플레이하는 것으로 구성되고, 보통 대체적으로 4/4박자의 리듬에서 125-150 bpm사이를 오가는 반복적인 구성이 특징이다. 이 테크노 음악의 종류도 어마 무시하게 많은데, 멜로디도 없고 그냥 거친 날것의 사운드로 대중과 소통한다는 적이 매력적이다.


애초에 테크노라는 단어 자체가 전자음악 자체를 포괄적으로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하우스든 트랜스 뮤직이든 하드 스타일이든 일렉트로닉 음악들이 다 대체로 테크노로 통상되는 경우도 과거에는 종종 있긴 했었지만, 역사가 깊은 만큼 세월에 걸쳐서 그 종류들이 많이 파생이 되어 현재는 EDM이 그 포괄적인 용어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 대신에 이제는 '테크노'장르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더 깊고 강력하며 묵직한 비트를 칭하는 게 더 맞다고 여겨진다. 아무리 다 비슷한 것 같아도 '하우스'장르는 좀 더 흥겹고 가벼운 반면 '테크노'는 더 기계음이 많이 들어가고 더 반복적인 진동 감과 묵직한 베이스가 특징적이다. (이건 들어보면 알 거다) 


https://www.youtube.com/watch?v=lxWB5bad598

가장 최근에 다녀온 이벤트에서 공연한 DJ Kobosil의 트랙. 이 DJ 진짜 미친것 같았다. 좋은 의미로.


https://www.youtube.com/watch?v=r_wwmmo6UGY

한국 출신 유명 여성 DJ로 인기를 끌고 있는 페기 구(Peggy Gou)는 하우스 장르에 더 가깝다. 유럽에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종종 페기 구 얘기가 나오는데 정말 자랑스럽기가 그지없다. 신기했던 게 한국에서는 유럽에서 만큼 의 인지도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번 연도 초반즘에 배구여제 김연경 선수와의 만남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한 것을 보고 행복의 비명을 지른 적이 있다.




이렇듯 한국인들에겐 어쩌면 생소한 테크노 음악은 내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 그리고 옆동네 독일에서 특히나 폭발적으로 인기를 체감할 수 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위치한 그 악명(?) 높은 클럽 Bergheim - 드레스코드도 딱히 없이 보안요원들의 입맛대로 재량껏 언제든지 펜치를 먹을 수 있는 곳 - 도 테크노 음악의 성지이다. 


왼:Berghain의 내부 모습 / 오: 그 유명한 Berghain의 보안요원 Sven Marquardt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클럽의 내부는 생각만큼 화려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게 바로 테크노 음악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까맣게 어두워야 하며, 거칠고 날것의 느낌이 그대로 나는 장소일수록 인기가 많다. Berghain은 특히나 테크노의 성지인 베를린에서도 들어가기가 힘들기로 입소문이 나서 신비주의가 된 마케팅 덕에 더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ADE 기간 동안의 암스테르담은 삐까뻔쩍 왁자지껄해진다.

한편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선 매년 Amsterdam Dance Event (ADE)가 열려 도시 전체의 웬만한 크기의 클럽들이 모두 일렉트로닉 음악의 장으로 변한다. 하나의 장소에서 하는 이벤트가 아니고 도시 전체에 파티가 열리기 때문에 입맛대로 하우스든 애시드 (acid)이든 인더스트리얼 (industrial)이든 골라가면 된다. 보통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DJ를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테크노 음악 말고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도 선보여지고 현대무용이나 설치미술작품들도 볼 수 있는 페스티벌이다.




고등학생 시절 때부터 이어져오던 음악에 대한 애정 덕에 다양한, 숨겨져 있는 알려지지 않은 원석을 찾아내는 것도 내 취미 중의 하나였으며 핸드폰 없이는 외출해도 MP3 플레이어 없이는 외출하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가장 처음 테크노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호주에 살 때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멜론 탑 100을 줄줄이 꿰며 대중적인 음악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빌보드 차트 또한 즐겨 들었었다. 그 당시 한국에선 Zion T, 프라이머리 음악이 한창 유행이었다.


그러다가 당시 함께 살던 유럽 출신 하우스메이트들의 손에 이끌려 간 어두컴컴한 클럽에 가게 되었다. 기껏해야 힙합클럽만 가본 내게는 너무 충격적인 곳이었다. 반복적인 비트와 귀가 아플 정도의 볼륨,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안 추는 것도 아닌 기괴하면서도 규칙적인 몸짓의 사람들. 흥건한 땀에 머리카락이 다 달라붙을 정도로 음악에 취해 (혹은 마약이나 술일 수도 있고) 빠져있던 사람들이 기억에 난다. 어리둥절해있는 나를 둘러싸고 다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그런 음악이 난생처음이라 무지하게도 삐걱댔었다. 멜로디, 가사에 익숙했던 내게는 영 매력적으로 다가오질 않았었다.


그 후로 수년이 흘러 어쩌다가 네덜란드에 살게 되었다. 살아보니 놀러 나가는 일들도 잦아졌는데, 그때마다 친구들과 몰려 가게 되는 클럽들이 죄다 테크노 장르 음악들을 주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한번, 두 번이 세 번, 네 번이 되고 슬슬 정이 붙더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테크노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다. 이제는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이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테크노 혹은 하우스 음악을 외친다. 




테크노 음악이 왜 좋냐,라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그 장르가 주는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생각이 된다. 


예를 들어, 한때 내가 흠뻑 빠져있었던 힙합 장르는 충분히 흥미롭게도 흔히 말해 '멋'이 꽤나 중요한 장르라고 느껴졌었다. 내게는 번쩍번쩍 빛나는 금으로 된 체인과 차가운 다이아몬드, 쭉쭉빵빵한 언니들을 둘러싸고 새하얀 나이키 조던을 신은 래퍼들이 슈퍼카에 앉아 돈다발을 뿌리는 게 힙합이다. 구찌, 루이뷔통 등 브랜드와 콜라보한 착장은 그 팬덤에게 불티나게 팔린다.


반면에 일렉트로니카, 특히나 테크노 음악 장르 분야는 알게 모르게 '익명성'이 더 멋지게 여겨진다. 제 아무리 잘 나가는 DJ여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억 소리 나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하진 않는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은). 번쩍번쩍한 아웃핏 대신에 무조건 올블랙의 옷을 입고, 까만 선글라스와 심지어 두건을 복면으로 쓰는 사람들도 많다. 왜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테크노 씬에서는 가죽으로 된 옷이나 장식들도 많이 보이는데 아마 성적 취향에 대한 개방성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에서 비롯한 것 같다. 


당연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만큼 공연에서도 그 자유로움 또한 보장된다. 성별, 나이, 국적, 인종에 관계없이 모두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좁디좁은 어두운 공간에 모여 비슷하게 반복되는 비트에 맞춰 춤을 춘다는 것은 꽤나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 누구도 나의 겉모습이나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모두들 음악을 들으러 온 것이지 다른 사람들을 볼 겨를이 없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물론 음악에 국경이나 구분이 있겠냐만은, 나도 내가 이렇게 테크노를 찾아들을 정도의 팬이 될 줄은 몰랐다. 이번에 한국에 가게 되면 서울에 있는 몇 개의 테크노 클럽에 방문해보고 싶다. 유럽의 유명한 DJ들도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종종 하던데, 한국에서도 일렉트로닉 음악의 시장이 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매년 열리는 EDM 페스티벌인 울트라 코리아 (Ultra Korea)는 안타깝게도 내 취향의 음악이 전혀 아니다. 앞서 말했듯 EDM도 장르가 다양한데 난 그중에서도 콕 집어 테크노, 심지어 인더스트리얼 테크노.. 그러니까 쉽게 말해 나는 더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선호한다. 그래도 자랑스러운 건 한국인 출신 그것도 여성!!  DJ들이 몇 명 된다는 거고 - 페기 구, 예지, 혜진 팍 - 종종이나마 한국에서도 테크노 음악의 발달 소식이 들려온다는 거다. 대중화를 바라는 건 아니어도 어디 가서 나 테크노 음악 들어요,라고 하면 도리도리 뱅뱅?이라는 반응은 이제 그만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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