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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Oct 26. 2022

네덜란드 상사와 한국 방문하기

한국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이 생기다

공부를 끝내자마자 운이 좋다면 좋게도 입사하게 된 회사는 한국으로의 진출을 계획 중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로 인해 한국어를 할 줄 알고, 이쪽 분야에 지식이 있으며, 영어도 할 줄 아는 내가 인턴십을 끝마치게 되자 자연스럽게 고용이 되었다.


그게 지난 9월 1일, 딱 한 달 뒤인 9월 30일에 나는 네덜란드인 직장 상사를 데리고 한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데리고'라는 표현이 맞나, 싶은 것이 감사하게도 2천 유로가 넘던 살인적인 비행기표 삯을 회사 측에서 부담해주었기 때문이다. 더 감사한 것은 회사 측에서 내가 어차피 한국에 가니 출장을 끝내고도 2주 정도 더 머무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는 거다. 그렇게 나는 전에는 엄두도 못 내던 네덜란드 국적기 (우리나라로 치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 그렇다고 해도 KLM이 더 저렴하다)인 KLM, 그것도 직항! 을 타고 한국에 가게 되었다. 


유학생 시절엔 고작 몇만 원 아끼려고 온갖 랜덤의 나라들에서 환승을 하며 두세 시간도 아닌 최대 8시간까지의 경유를 겪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깟 5만 원 좀 더 내고 편하게 갈걸, 싶지만 그 당시엔 오천 원도 벌벌 떨며 썼기에 그깟 5만 원이 너무 호화로운 선택이라고 느껴졌었던 것 같다. 


직항이라고 해도 이코노미석에 꾸겨앉아 장장 12시간을 날아 도착한 인천공항은 작년에 비해서는 좀 더 릴랙스 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로도 2020, 2021년 둘 다 한국에 방문해본 내게 2022년의 인천공항 입국장은 생각보다 북적거렸고 아무 검사도 없이 Q코드만 보여준 채로 입국할 수 있다는 게 생소했다. 네덜란드인 상사는 K-ETA라는 비자를 받아야 했는데, 이도 그 코로나 전에는 없던 것이 코로나 이후에 생긴 비자이다. 그 전에는 유럽 국적인들은 한국에 3개월까지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인터넷으로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과정이 복잡한 것은 절대 아니고, 그냥 몇 가지 기본 사항만 입력하면 되기에 무척 간단하다.




나름 업무상 다른 나라들을 수없이도 많이 방문해본 나의 직장상사인 P는 인천공항에서부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바로 물가가 유럽 대비 너무 저렴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일본을 경험해본 그에게 한국의 경치나 높은 빌딩, 깔끔함, 친절함이나 빠른 서비스 등은 별로 인상 깊지 않아 보였다. 나름 자부심이 있었는데 물가가 싸다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존심이 상하려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 것이 인천공항에서 영등포역까지 택시를 탔는데도 30유로가 채 나오지 않았다.  참고로 내가 사는 도시의 중심에서 우리 집까지 약 2k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의 택시비는 이곳에서 10유로가 넘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첫 저녁식사도 둘이 함께해서 한화로 3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나왔다. 물론 비싼 음식을 먹지 않기도 했지만 네덜란드에서 한번 외식을 하면 둘이 합해 5만 원은 무조건 넘는데, 원래 이렇게 한국 물가가 쌌었나?


아니다. 한국 물가는 비싸졌다. 그런데 환율이 올랐다. 유로나 달러에 비해서 한화가 너무 싸졌고 게다가 네덜란드 물가도 올라서 체감상 한국 물가가 상당히 싸게 느껴진 거다.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높아진 환율의 이익을 마음껏 누리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한국 방문이 처음이었던 P가 한국에 있게 될 일정은 고작 일주일. 그중 3일은 고객사의 방문 미팅 일정이 있었기에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서울 관광을 시켜주는 게 나의 임무였다. 누가 시킨 건 아니고, 그래도 뭔가 한국인으로서 나의 출신지를 보여주고 싶은 국뽕이었달까. 북촌 한옥마을이며 경복궁, 쌈지길, 광화문, 홍대 그리고 남산타워, 전통시장 등등 하루에 2만 보는 거뜬히 걷는 엄청난 일정을 소화시켜냈다. 우리는 출장이라는 이름 아래 여행을 누릴 수 있다는 즐거움에 걷는 게 힘든 줄도 모른 채 재미있게 쏘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 재미있는 일주일을 지내던 날들 중 하나인 수요일, 우리는 여느 다른 날들처럼 저녁 메뉴를 선정하기 위해 먹자골목을 걷고 있었다. 수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먹자골목엔 셔츠에 정장 바지 차림인 회사원들이 회식을 하기 위해 많이 모여있었다. 그냥 아무 삼겹살집이나 들어가자 싶어서 이곳저곳 살펴보는데, P가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한국엔 소규모 자영업 및 식당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 이렇게 많은 작은 규모의 식당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을까?" (정말 알고 보니 한 블록마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식당의 개수에 다시 한번 놀랐다.)

"한국에서는 호객행위를 노래를 더 크게 틀어놓는 걸로 경쟁하는 것 같아. 소음공해에 대한 인식이 어때?"

"대체적으로 이곳은 혼돈(Chaos) 속에 질서가 있는 곳처럼 느껴지는데, 특히나 길거리의 쓰레기봉투들이 인상 깊어. 그다음 날이 되면 싹 사라지거든. 이곳의 청소부들은 근무 시간이나 근무 환경이 어떻게 될까?"

등등...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한국에서의 일상 요소들을 P의 시각에서 들어보니 내게도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내 지식이 닿는 한에서 열심히 하나하나 답변을 해주는 와중, 어느 골목 한편에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과

음을 하셨는지 구토를 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대체적으로 술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수요일 저녁부터 만취한 성인 남성들을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신기하면서도 충격인 것 같아."


네덜란드에 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30대 이상의 성별 불문 성인이, 그것도 공공장소에서, 심지어는 평일 저녁에 고주망태가 된 것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통은 그렇게 술에 취해 흐트러지는 경험은 20대 때 충분히 하고 30대에 접어들면 조금 더 품위를 챙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려고 하는 게 디폴트 같다. 네덜란드도 통계상으로 봤을 때 술을 마시지 않는 나라는 전혀 아니다. 알코올 소비량만 따진다면 한국과 비등하리라 여겨질 만큼 거의 매일 맥주 한두 잔, 와인 한두 잔, 반주를 즐기는 나라이다. 그러나 '취하기'까지는 마시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는 게 더 맞는 설명이겠다.




무튼 이 일화를 제외하고도 워낙 천성 호기심이 많은 P가 던지는 무작위 랜덤 질문에 난처하기도 해 보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한국을 바라보는 완전히 다른 시선을 경험해보는 흥미로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한국인이니 한국에 올 때마다 그냥 본가에 가고, 옛 친구들을 만나고, 먹던 음식만 먹고 오기 바빴는데 이번엔 누군가를 '데리고' 관광을 넘어 한국에 '방문'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너무 일상이라 깨닫지도 못했던 부분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는 기회를 갖기도 해서 귀중한 경험을 한 것 같다. 게다가 이번 방문은 특히나 한국으로의 여행이 아닌 '출장'이라는 것 자체에도 개인적으로 큰 의미로 다가왔다. 모쪼록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계속 주어지길 바라며 기분 좋게 다시 귀국할 수 있었던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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