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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Sep 21. 2023

[별글] 160_ 영원히 떠들 수도 있어.

  나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누구와 이야기하더라도 20분 정도는 떠들 수 있을 만큼 잡지식도 좋아하는 것도 많다는 것이다. 일단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찾기만 하면 그것이 뮤지컬이건 애니메이션이건 문학이건 천문학이건 해외살이건(무수히 나열할 수 있지만 참겠다) 간에 어느 정도는 할말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게 다방면인 만큼 밑천도 금방 드러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음의 세 가지에 대해서라면 밤을 새서라도, 매일매일이라도 떠들 수 있다. 


1. 케이팝

  요즘의 대중가요는 마냥 가볍지는 않다고, 그저 가벼운 유행가가 아니라 예술과 실험의 장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겠다. R&B도, 힙합도, 발라드도, 락도, 한국의 걸그룹이나 보이그룹, 또는 솔로 가수가 부르면 케이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마법이 일어난다. 사실 장르 구분에 의미가 없을 정도로 짬뽕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요즘은 아예 믹스팝이 대세라는데, 요즘 말하는 믹스팝은 브릿지도 없이 느닷없이 테마가 바뀌어 뭐야? 하는 감정을 유발하는 곡들을 말한다(잘 모르겠으면 '요즘' 믹스팝의 조상님 격인 소녀시대의 'I got a boy'를 떠올리면 된다. 그 곡이 나왔을 때는 모두가 혼란스러워했다. 시대를 쬐끔 앞서갔음). 하지만 그 이전에도 발라드 사이에 느닷없이 랩이 나오고, 이게 팝인지 락인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곡인지 헷갈리는 곡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처럼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케이팝은 4분 안에 실험을 한다. 사실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가 절정에 이르는 교향곡도 대단하지만, 4분 안에 기승전결을 꽉꽉 우겨넣는 일도 그것대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체가 꽤나 한국적이다. 최근에는 클래식을 전공하는 분들도 케이팝 작곡에 많이 진입해서, 전조와 감동적인 화성에 어질어질해지는 곡들이 많다. 그런 곡을 만나면 곡 하나로도 두시간을 떠들 수 있을 정도이다. 


2. 정치

  사실 많은 분야를 포괄하는 게 정치다. 어떤 사람들은 이념과 그에 따른 당쟁만 떠올리지만, 사실 그 이념에 기반해서 수립되는 정책이나 법은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있어서 어떤 국가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우리 또래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매우 우려스럽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와 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어느 분야에서 예산이 삭감되었다거나 소수자를 위한 새로운 정책이 생겼다거나 하는 소식에 늘 귀를 쫑긋 열고 있다. 사실 정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지 않고, 좋아하더라도 숨어서 좋아하게 된다. 정치 이야기를 하면 싸우게만 된다며 자기는 정치 이야기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한다는 말을 자랑처럼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평소에 정치 이야기는 굶주려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더 입이 터져서 신나게 떠들게 된다. 물론 미짱과 만짱이 정치적 이념이 같아서 결혼했기에 그들에게 받은 영향인 것도 어느 정도는 부정할 수 없다. 


3. 타인에 대한 분석

  이건 뒷담화와는 다르다. 나는 아는 사람을 매우 흥미로워하고,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유를 붙이기를 좋아한다. 나는 관심 있는 친구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어떤 인생의 업적을 이루었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어제는 왜 퇴근하고 집에 곧장 가지 않고 카페로 가기로 결정했는지,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왜 10분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는지에 관심이 있다. 그보다도 더 궁금하고 나를 흥분하게 하는 건 중요한 타인들의 감정에 대한 이유이다. 누군가가 특정한 무언가에 화가 났다면, 왜 화가 났는지, 그를 화나게 하는 맥락이나 과거에 있던 사건은 무엇인지, 앞으로 비슷한 맥락이 생기면 또 화가 날 것 같은지 등등이 궁금하다. 기쁘게 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딱히 악의는 없고, 더 많이 이해하고 싶어서 열심히 고찰하는 편이다. 그 평가는 당시 순간의 판단을 반영하며, 사람이란 당연히 바뀌기 마련이기 때문에 판단과 분석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면 새로운 해석의 틀을 만든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랑 둘이 있을 때 엄청 웃겼는데 단체로 있는 자리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단순히 '웃긴 사람'에서 '일대일 관계에 특히나 강한 웃긴 사람'이 된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은 나에게 영원히 흥미로운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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