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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Sep 20. 2023

[별글] 159_ 효율에 도움이 되는 차림

  고등학교 때 나에게 최고의 작업복은 말할 것도 없이 교복이었다. 솔직히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몸을 딱 맞게 가두는 블라우스와 치마 안에서 그렇게 공부가 잘 되었다. 편하게 공부하라고 학교에서 2학년 때는 생활복까지 만들어줬는데도 나 혼자서 교복을 고수했다. 어떨 때는 반 애들이 전부 생활복을 입고 있고 나 혼자만 블라우스를 입고 있던 적도 있다. 이런 교복을 향한 집착이 얼마나 심했냐면, 때로는 주말에 혼자 집에서 공부할 때도 교복을 차려입고 허리를 곧추세우기도 했다. 


  당연히 편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편해서 잠과 단절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다른 잡생각 없이 문제 풀이에 집중하겠다는 가시적 다짐이었다. 처음부터 교복을 입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교복을 입은 상태와 열심히 공부하는 상태가 결합되어버린 나였다. 아마 일상에 다른 요소가 없이 공부만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쉼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로지 교실 책상에 앉거나 뒤의 스탠딩 책상에 서거나 급식실 식탁에 앉거나, 셋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집에 오면 모든 것을 벗어던졌다. 집에서는 공부하지 않겠다는 선포였다. 


  공부와 불편한 옷의 결합은 대학에 오자 금방 분리되었다. 대학 생활은 공부를 하다 놀다가 갑자기 또 수업을 듣고 알바를 하다가 쉬다가 과제를 하는 뒤죽박죽의 나날이었다. 가만히 있는 정자세를 유지하기에만 적합한 불편한 옷은 금방 손이 안 가게 되었다. 그리고 막상 편한 옷을 입고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해보니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편했다(물론 고등학교 때 벌써 편한 차림으로 공부하는 데에 맛들렸다면 교복을 입어야 하는 날들을 견디지 못했겠지만).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집이 공부가 가장 잘 된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일부러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러 카페에 가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한다는데, 나는 타인의 존재가 너무 방해가 되었다. 공부하고 있는 내 뒤에 누군가 돌아다니거나 시선이 느껴지면 견딜 수 없게 예민해졌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많은 친구들과 공부가 잘 되었던 건 하루종일 모든 일상을 함께하면서 그 친구들이 타인보다는 가족같아졌기 때문이다. 핑계 같겠지만 실제로 1학년 때는 친구들이 낯설어서 다소 성적이 엉망이다가 2학년 때는 과탑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은, 잠옷을 입었을 때 공부가 가장 잘 된다. 몸에 닿는 천은 오로지 순면 소재여야 하고 이는 속옷에도 해당하는 사항이다. 니트도, 폴리도, 합성 섬유도 안 된다. 심지어 상의 속옷은 입지도 않는다. 머리를 질끈 묶거나 귀 뒤로 전부 넘긴다. 앞머리는 한 올도 시야를 방해하면 안 된다. 방해되는 앞머리가 있으면 화장실에 가서 잘라 가면서 공부해서, 시험기간에 내 앞머리는 자꾸만 짧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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