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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Sep 20. 2023

[별글] 158_ 밤을 새본 경험

  잠을 적게 잔 적은 많아도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밤을 새본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작년엔 지금까지 못 새본 밤을 몰아서 새려는 듯한 한 해를 보냈다. 처음 밤을 새던 날이 기억난다. 분명 라이트하게 놀자고 말했는데 어느 순간 해가 떠 있어서, 그 라이트가 sunlight였냐면서 장난을 쳤다. 


  늘 깜깜할 때 자고, 눈을 뜨면 해가 있었다. 잠을 과하게 자서 일어났을 때 이미 해가 중천인 적은 많아도 해가 뜨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경험한 적은 없었다. 일출을 볼 기회가 있어도, 심지어 일출을 보러 가는 여행에 가서도 나는 일몰만 보곤 아침에는 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막상 경험해보니, 해는 정말 놀라울 만큼 빠르게 떴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 밤을 샌 건 어느 오피스텔 건물이었기 때문에, 창문 밖이 정말 빠르게 실시간으로 밝아졌다. 그 과정을 거의 체감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밝아져서 너무 놀랐다. 나는 어슴푸레함이 오랫동안 머물러있는 시간대가 새벽일 것이라고 막연히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자취방에서 밤을 샐 땐, 암막커텐이 쳐 있는 상태가 기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경이로운 경험은 딱히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신차려 보면 커텐 뒤로 반짝이는 빛이 보이는 건 언제나 신기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렇게 '와! 해다!'라는 별다른 체감은 없이 밤을 새기를 몇 번, 또 다시 해가 뜨는 걸 직접 본 건 얼마 전 포르투갈에서였다. 


  포르투갈에서 나는 WYD(World Youth Day) 행사에 참석했는데, 가톨릭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축제다. 마지막 날은 철야기도와 파견미사로, 철야기도와 파견미사 사이에 쉬는 시간이 있지만 그땐 다같이 밖에서 밤을 샌다. 지난 포르투갈의 행사만 해도 150만 명의 인파가 몰렸기 때문에 해산했다가 다시 모이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밖에서 침낭을 깔고 눈을 붙이긴 했지만 거의 밤을 꼴딱 샌 기분이었다. 야외 취침은 처음인데다가, 등에 언덕의 돌과 잔디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시가 거의 다 되어서 일정이 끝났는데 다섯시에 시끄럽게 우리를 깨우길래 어리둥절 일어나서, 절대적으로 취침시간도 적었기 때문이다. 일어났는데 아직 깜깜하길래 도대체 왜 깨운 거냐며 억울해했는데, 갑자기 동쪽 하늘이 밝아지더니 해가 빼꼼, 이글거리는 고개를 내밀었다. 유럽의 낮은 무지하게 뜨거운 데 비해 밤은 놀랄 만큼 서늘하다. 그런데 새벽에 고개를 내미는 해는 곧 그렇게 뜨거워질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반짝거리기만 했다. 밤의 적막을 뚫고 그렇게 환한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 머쓱해 보이기까지 했다(그리고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믿을 수 없이 뜨거워졌지만.)


  두 번의 제대로 된 새벽을 맞으며 두 번 다 그 급작스러운 변화에 놀랐다. 분명 아무 것도 없이 깜깜했는데 순식간에 온 세상이 밝아졌다. 어쩌면 인생의 밤도 그렇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밤이 길어도 분명 아침은 온다는 건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지만, 그렇게 놀랄 만큼 빠른 변화라는 것도 누구나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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