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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Mar 26. 2024

[별글] 232_ 페스티벌

  축제만큼이나 내가 관념적으로만 좋아하는 대상이 또 있을까 싶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놀러간 공주에서는 겨울에 군밤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공주가 그리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가 아닌데도, 주차장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라고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군밤 하나 때문에 와글와글 모여 있는 광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흥미롭다. 게다가 지역 특산물 축제라고 하면 군밤 몇 개 구워서 먹고, 알밤으로 만든 막걸리 정도나 판매하겠지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3일 동안 진행되는 축제 타임테이블엔 온갖 행사가 빽빽했고, 심지어 체험과 판매는 따로 적혀 있었다. 군밤 퀴즈에 지역 예술인 공연, 관광객 이벤트, 어린이 글짓기 대회까지. 만만하게 볼 이벤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군밤축제를 재미있게 만들겠다고 공을 들였을지 생각하면 귀엽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지역 축제나 행사에는 필연적으로 인파가 몰리고, 나는 사람 멀미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행사를 준비하는 데 공을 들이는 정도와 많은 사람이 오기를 바라 널리널리 홍보하는 정도는 비례할 수밖에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산물과 관련된 축제가 되었건 어떤 테마가 있는 행사가 되었건,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우와, 재밌겠다!' 생각했다가도 막상 갈 기회가 생기면 백 걸음쯤 뒤로 물러나게 된다. 


  사람 멀미 하나 때문에 그렇게 재미있는 컨텐츠를 놓친다는 게 너무 억울하지만 사람 멀미를 극복할 생각도 없던 나는 이제서야 다짐한다. 우리 집에서 축제를 열겠다고. 마침 집도 넓어졌겠다, 테마를 정하고 사람을 불러야겠다. 관람객은 다섯 명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지역 축제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겠다. 친구들 불러서 집에서 축제를 여는 건데 누가 저작권을 위반했다고 시비를 걸지는 않겠지. 


  방금 다짐했다. 첫 행사는 카레 축제로 하겠다. 인도 카레, 일본식 카레, 태국 카레로 세 가지 종류의 음식을 준비하고, 카레를 주제로 한 퀴즈 쇼도 열겠다. 간략하게나마 개막식도 열고 이벤트 게임도 주최하겠다. 온갖 재료를 구비해 두고 판매하는 판까지 벌이지는 못하겠지만(그러려면 다섯 명의 관람객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페스티벌의 기분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사람은 많지 않고, 컨텐츠는 차고 넘치는 하루라면 나는 만족할 수 있다. 


  4월에 진짜로 카레 축제를 열고 후기를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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