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구병모 - 한 스푼의 시간

사람으로 태어나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하여

by 벼르


확증편향으로 질주하는 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나와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쓰여진 소설을 보면 반갑다. 사람은 꼭 관계를 맺어야 행복한가? 관계를 맺는 대상은 꼭 다른 '사람'이어야 하는가? 두 질문에 나의 답은 각각 예스, 노다. 다른 존재와의 연결감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는다. 그 결과값이 흡족스럽기만 하다면 대상이 타인이건 사람을 닮은 어떤 존재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학기에 HRI(Human-Robot Interaction) 수업을 들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독거노인인 할머니에게 인공지능 스피커를 선물해드렸더니 말동무가 생겨서 너무 기뻐하셨다는 미담을 들었기에, 나도 할머니께 클로바를 사드린 참이었다. 할머니는 클로바에게 노래도 요청하시고 우리가 여행하고 있는 국가의 시간도 물어보셨다. 확신을 얻은 나는 휴머노이드 기술이 인간관계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혜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낙관론을 펼쳤다. 비록 아직은 로봇의 대화 기술이 미숙할지라도 아예 고립되어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그런데 의외로 반대의견이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할머니를 직접 찾아뵈면 훨씬 기뻐하실텐데 그깟 말하는 기계로 무마하려는 거냐는 핀잔도 들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가장 이상적일까? 그럴 수도 있다. 두 인간만큼의 정서적 상호작용을 나눈 인간과 로봇의 케이스를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모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이상적인가?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여전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난무하며 많은 관계는 좋았다가도 비틀어진다.




관계란 물에 적시면 어느 틈에 조직이 풀려 끊어지고 마는 낱장의 휴지에 불과하다.


한 스푼의 시간 중






다정한 로봇과 난폭한 인간 중 '그래도' 인간이니까 난폭한 인간이 낫다고 어떻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난 언젠가는 로봇과 인간 사이에도 좋은 관계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는 어느 시점까지는 인간이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규정될 것이고(상대가 인간이건 로봇이건 인간이 행복하면 됐다는 식으로), 어느 시점부터는, 그러니까 로봇이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고 감정 표현의 주체가 되는 순간부터는 두 존재가 함께 만들어가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 시점이 오면 '로봇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님은 '로봇의 감정 발생 서사'가 수도 없이 되풀이되어 온 터라 거기에 하나를 보태도 되는지 고민했다고 하시는데, 나는 이런 서사를 좋아한다. 인간성에 대한 조금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기에. 우리가 기계에서 어느 순간 인간성을 느끼게 된다면 바로 그 지점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본질적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인간 아닌 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서도 인간성을 유추할 수 있다. 영원히 은결이가 인간성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인간 소년을 닮은 은결이의 모습 때문에, 인간 소년의 이름인 '은결'이라는 이름 자체 때문에, 사람들은 아마 은결이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정을 너무 쉽게 준다. 내가 사람이 가진 특징 중에 가장 좋아하면서도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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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학과 비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군가는 비문학을 더 좋아하고 누군가는 문학을 더 좋아하지만, 결국 편독하지 않고 골고루 읽는 게 가치있지 않을까 싶다. 서로 따라가면서 계속 배우니까. 업데이트되지 않는 비문학은 진리에서 점점 멀어져 가치를 상실한다면 업데이트되지 않는 문학은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작가님들의 인권의식이 점점 업데이트되길 기대하는 것처럼 소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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