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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소리 Nov 15. 2023

혼자만의 약속

지금. 되돌릴 수 없는 순간 #1

 우리는 제법 진지했다. 8월의 마지막 밤, 창문 너머로 스산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바람막이를 걸치고 필요한 장비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고 곧장 왕복 4차선 도로로 뛰었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을 달고 있는 가게들을 지나 이윽고 목적지에 다다랐다. 헤드 라이트를 켜고 쌩쌩 달리는 차들 옆에 오랫동안 서 있었더니 귀가 먹먹해졌고 손으로 양쪽 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길 가에서 우리는 연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쏘아보았지만 반짝임 없이 거뭇할 뿐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는 앞으로 성큼 나아갔고 나는 그 자리를 빙빙 돌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갑자기 마주한 가로등 빛에 눈살을 찌푸려져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때 갑자기 아이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발견했어!!!!!!!"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개학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인터넷 뉴스도 보고 책도 읽으며 한가롭게 오전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잠깐 눈을 붙이고 싶어서 휴대폰 알람을 맞추어놓고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진동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이의 하교 시간이었다. 흐느적 몸을 일으켜서 대충 손에 집히는 대로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집 안에서도 해가 쨍쨍거렸는데 야외에서는 더욱 밝게 내리쬐고 있었다. 한쪽 어깨는 학원 가방을, 반대편 어깨에는 아이 간식을 담은 에코백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이가 또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기대하며 핸드폰 시계를 쳐다보았고 마침 아이의 등하교 상황을 알려주는 어플 알림을 받았다.

'ooo 학생이 8/31 13:48에 교문[후문]으로 하교하였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가 친구랑 손인사를 하고 나에게 달려왔다.

"엄마!! 오늘 슈퍼 블루문이 뜨는 날 이래. 오늘 저녁에 꼭 보러 가야 돼. 이번에 못 보면 14년 뒤에나 볼 수 있대."

 "엄마도 아침에 기사 봤어. 그런데 달이 뜨려면 늦은 저녁이라고 하던데 피곤하지 않겠어?"

 아이는 갑자기 오른쪽 팔을 니은 자로 구부리더니 알통 자랑을 했다.

"나 힘이 얼마나 센데. 엄마 한번 여기 눌러봐."

"우아. 근육이 엄청 생겼네. 그럼 저녁 얼른 먹고 달 보러 가보자."

"오예~~~"

 아이는 신이 나서 가속도를 붙이며 내리막 길을 뛰어갔다.


 이른 저녁을 먹고 식탁을 치우고 있는데 아이가 아우성이다. 얼른 슈퍼 블루문을 찾으러 떠나자고 한다. 14년 뒤에 볼 수 있는 달을 기념하기 위해서 키즈 카메라를 목에 걸었고 손바닥만 한 본인 에코백에는 망원경을 챙겨 신발까지 신은 상태였다. 현관문 앞에 서있는 아이에게 나갈 준비를 하면서 바깥 기온을 체크해 봤다. 여름밤인데도 쌀쌀하여 겉옷을 찾으러 가면서 아이에게 슈퍼 블루문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다. 슈퍼 블루문은 슈퍼문과 블루문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달이 지구 옆을 돌아다니는데 조금 기울어진 상태로 원형 궤도를 그리면서 돌기 때문에 지구와 가장 가까운 거리의 보름달과 가장 먼 거리의 보름달이 발생한다. 가장 가까운 거리의 보름달을 슈퍼문이라고 부른다. 블루문이란 윤달이 있는 해에서 동일한 월의 두 번째로 뜨는 보름달이다. 아이의 눈은 달을 꼭 발견하겠다는 집념으로 활활 떠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아이가 크게 외쳤다.

"드디어 발견했어!!!!!!! 슈퍼 블루문을 실제로 보다니!!!! 나는 정말 운이 좋아!!!"

 내 눈으로 하늘을 샅샅이 뒤져봐도 보이지 않던 슈퍼 블루문을 찾은 아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아이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사진을 찍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점점 커졌고 카메라에 포커스 된 화면을 따라가 쳐다봤다. 그것은 동그란 모양의 가로등 불빛이었다. 황당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애써 침착하게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우와. 대단하네. 달 탐험대 대장이 가장 먼저 발견했네. 멋지다. 어? 그런데 달 아래에 막대기가 있는 것 같아. “

 아이도 어둠 속의 슈퍼 블루문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달이 아니란 사실에 풀이 죽은 듯하더니 갑자기 익살스러운 웃음소리를 냈다.

 “킥킥. 가로등만 클로즈업하면 진짜 달처럼 보이네. 킥킥. 엄마. 여기까지 나왔는데 속임수를 써서라도 기념사진을 남겨야겠어. “

 나는 아이 뒤에 서서 아빠한테 보여주면 진짜 슈퍼 블루문이라고 착각할 것 같다고 바람을 불어넣었다. 달 탐험 원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속상해. 다른 친구들은 슈퍼 블루문을 봤을 텐데.”

 

 달 탐험대 원정을 다녀와서 고단했는지 아이는 일찍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나자 여기저기에서 슈퍼 블루문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가 너무 일찍 달을 맞이하러 가서 볼 수 없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하나 더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4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아이와 반드시 슈퍼 블루문을 보겠다고 다짐했다. 22살의 청년이 되어서도 엄마와 늦은 밤 슈퍼 블루문을 보러 나가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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